한국發 바이오 굴기, 희비 갈린 삼성과 SK

제약 바이오 산업은 특성상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 국내 제약 바이오 산업계도 점차 규모의 경제 실현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를 통해 바이오 산업에 진출한 삼성과 최근 공격적인 바이오 투자에 나선 SK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들 두 기업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삼성 가로막는 부정 회계 꼬리표

삼성은 한국 제약 바이오 역사상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이 지난 2010년 5대 신수종 사업 가운데 하나로 바이오 산업을 선정하고 바로 다음해 2011년 설립한 의약품 위탁 개발 생산 기업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6년간 집중적인 투자를 통해 3개의 공장을 잇달아 건설했다.  제1공장(3만 리터)과 제2공장(15만 리터), 제3공장(18만 리터)을 합한 생산 능력은 총 36만 리터로 스위스 론자와 독일 베링거인겔하임을 뛰어넘는 세계 최대 CMO(위탁 생산)로 성장했다.

그러나 코스닥 상장 당시부터 불거졌던 특혜 의혹과 부정 회계 논란은 지금까지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특히 지난 12일 부정 회계에 대해 금융 당국이 고의로 공시를 누락했다고 판단,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김태한 대표이사를 검찰에 고발하고 담당 임원 해임 권고, 감사인 지정 3년 등 중징계 조치를 내렸다.

고의 공시 누락 혐의로 대표이사가 검찰에 고발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 최근 사업 영역에 의약품 위탁 개발(CDO)을 추가하며 신사업 육성에 나선 삼성바이오로직스로서는 상당히 부담스런 조치다.

더욱이 부정 회계 핵심인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가치를 장부가액이 아닌 공정시장가액으로 잡아 실적을 의도적으로 부풀린 문제에 대해서 증권선물위원회가 판단을 유보한 상태라 불확실성이 여전히 존재한다.

당장 고의 공시 누락으로 인한 대표이사 검찰 고발 조치가 알려지자 삼성바이오로직스 주가는 13일 하루 동안에만 2만7000원(-6.29%)이 하락하는 등 직격탄을 맞았다. 단, 16일 오전 반등에는 성공했지만 손해를 본 투자자들이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려오고 있다.

다행히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업계에 따르면, 당장 이번 사태로 기존 CMO 계약이 해지되는 최악의 상황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금융감독원이 의도적으로 실적을 부풀린 부분에 대해서 재감리를 실시할 것으로 보여 앞으로 삼성이 바이오 사업을 하는데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추측이 업계 일각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공시 누락을 고의로 판단한 것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라며 “증선위 결과를 공식적으로 받아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투자자 손해배상 소송 얘기는 알고 있는 상황이고, 이슈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이어서 불안감이 있다”고 말했다.

입 벌어지는 SK發 바이오 굴기

재계 라이벌이자 바이오 업계 경쟁자인 삼성이 침울한 표정을 짓던 날 SK는 그야말로 입이 쩍 벌어지는 대형 인수합병(M&A)을 단행했다.

SK는 12일 이사회를 열고 미국 바이오 제약 위탁 개발 생산(CDMO) 기업 엠팩(AMPAC Fine Chemicals)의 지분 100% 인수를 결정했다. 이번 인수로 SK의 의약품 생산 능력은 연간 100만 리터까지 늘어나고 추후 증설 작업을 통해 연간 총 160만 리터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엠팩은 항암제와 중추신경계, 심혈관 치료제 등에 쓰이는 원료 의약품을 생산하며 연 15% 이상 고성장 중인 최고 수준의 원료 의약품 제조 기업이다. 미국 제약사가 밀집해 있는 서부 지역에 위치해 글로벌 제약사에 다수의 유망 혁신 신약 제품 임상 및 완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SK의 엠팩 인수를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있다. 국내 제약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인수합병인데다 글로벌 제약 바이오 시장에서 미국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약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미국에서 소비되는 의약품은 자국에서 생산해야 한다는 기조의 규제 강화가 지속되고 있다”며 “이번 인수가 SK뿐 아니라 대한민국 바이오 제약 업계 전체에 큰 의미를 갖는 이유”라고 말했다.

특히 SK가 한국판 화이자 같은 글로벌 종합 제약사로의 도약할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화이자나 노바티스 같은 글로벌 대형 제약사는 신약 연구 개발뿐만 아니라 생산, 유통 판매, 마케팅까지 독자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는 신약 개발부터 유통 마케팅까지 독자적으로 수행 가능한 글로벌 제약사 같은 제약 바이오 기업은 찾아보기 어렵다.

SK의 바이오 사업 확장은 꾸준히 이어져 왔다. 2011년 SK바이오팜을 설립했고 2016년 SK바이오텍을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또 2017년에는 다국적 제약사 BMS의 아일랜드 스워즈 소재 공장을 1700억 원을 들여 인수했다.

2018년 들어서도 백신 전문 기업 SK바이오사이언스를 설립해 프리미엄 백신 개발에 들어갔고, 최근 미국 의약품 위탁 개발 생산 기업 엠팩을 8000억 원을 들여 인수하면서 글로벌 종합 제약사로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그 첫 번째 시험대는 미국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SK바이오팜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혁신 신약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Cenobamate)가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FDA) 신약 승인 신청을 눈 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 조사 업체 데이터모니터에 따르면, 글로벌 뇌전증 치료제 시장 규모는 2014년 49억 달러(약 5조3300억 원)에서 2019년 61억 달러(6조6300억 원)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SK바이오팜은 이미 미국 법인을 통해 마케팅 조직을 설립하는 등 글로벌 판매 및 마케팅에 시동을 건 상황이다. 세노바메이트가 상업화될 경우 미국에서만 연간 1조 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임상 2상 결과 위약 대비 발작 빈도 감소율 31%로 뇌전증 치료제 1위인 UCB 빔팻(18.4%)에 비해 탁월한 효능을 입증했다. 빔팻 매출 규모인 약 1조 원에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통상적인 4~5년보다 단축될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 윤태호 연구원은 “SK는 신약 및 의약 중간체를 연구 개발하고 판매하는 SK바이오팜, 국내/유럽 생산을 맡는 SK바이오텍, 미국 생산을 맡는 엠팩을 100% 자회사로 거느린 사업 구조를 갖춰 2020년 글로벌 종합 바이오 제약사로 도약할 것”이라며 “세노바메이트는 연내 FDA 신약 승인 신청(NDA)을 할 계획이다. 신약 승인이 마무리되면 엠팩 시설을 통해서 현지 생산/판매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돼 자회사 간 시너지도 예상된다”고 말했다.

[사진=Artsanova/gettyimagesbank]

    송영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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