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로 심장 멎던 환자에게 새 삶”…부정맥 치료의 대가

[대한민국 베스트 닥터 ④] 고려대 안암병원 순환기내과 김영훈 교수

“응급 환자 발생!”

2016년 12월 25일 일요일 밤 10시. 고려대 안암병원 순환기내과 김영훈 교수(60)는 대한부정맥학회 회장으로서 회의를 마치려다 병원 호출을 받았다. 부랴부랴 중환자실에 도착했더니 20세 청년 A씨가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부정맥 때문에 심장에 장치한 전기 충격기가 듣지 않아 체외 인공 심장을 연결해 생명을 연장한 상태.

김 교수는 부정맥의 원인을 찾으려고 전기 충격을 가했지만 심장에서 특별한 신호가 나타나지 않았다. ‘하늘이시어…’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았는데, ‘혹시…’하는 생각이 떠올랐다.”심장마비 환자를 살리는 저체온 요법을 시행할 때 부정맥이 생기곤 하지. 그래 저체온 요법으로 부정맥 부위를 찾자.”

김 교수가 차가운 생리식염수를 심장 혈관에 넣었더니, 하늘이 도운 걸까, 심장 한 쪽에서 부정맥을 일으키는 신호가 나타났다. 냉(冷)식염수를 한 번 더 투여했더니 같은 곳에서 똑같은 신호가 발생했다. 그 부위를 고주파로 지졌더니 청년은 악몽에서 깨어났다.

A씨는 원인을 모르는 부정맥 때문에 심장에 전기 충격기를 달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심장이 멈추면서 그때마다 전기 충격기가 “파파팍” 작동했다. 도끼로 가슴을 찍는 고통이 이어졌고, 졸도했다가 깨어나기를 되풀이했다. 공포, 고통, 절망 속에 삶의 희망을 찾을 수가 없었다. 가출해서 PC방이나 거리에서 쓰러졌다가 병원에 실려와 부모의 눈망울을 젖게 했다. 전기 충격기 없이 지낼 수 있다는 것은 A씨와 가족에게 새 삶이 펼쳐지는 것을 뜻했다. 김 교수는 응급실에 실려 온 30대 남성 2명에게도 이 방법으로 끔찍한 고통의 짊을 벗게 했다.

김 교수가 지난해 5월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세계부정맥학회에서 응급 심장마비 부정맥을 자신이 고안한 냉식염수로 치료하는 방법을 발표하자 세계의 의학자들은 “이번 학회에서 가장 획기적 케이스”라면서 박수를 보냈다.

김 교수가 이들 환자를 살릴 수 있었던 것은 2013년 병원에 국내 최초로 ’24시간 응급 심장마비 부정맥 시술 시스템’을 도입했기 때문. 부정맥으로 심장에 ‘전기 폭풍(Electrical Storm)’이 불어 일반적인 전기 자극으로 되살아나지 않는 환자에게 인공 심장을 설치해서 생명을 살리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김 교수의 주요 전공은 ‘응급심장 마비 부정맥’이 아니라 심장의 심방이 불규칙하게 빨리 뛰는 ‘심방세동.’ 주특기는 사타구니의 혈관으로 작은 치료 기구를 넣어 심장까지 보낸 뒤 심장의 정상적 전기 흐름을 방해하는 부위를 지져 병의 뿌리를 제거하는 ‘전극도자절제술’이다.

그는 고려대 의대 본과 3학년 때 응급실 실습을 하다 죽은 줄 알았던 부정맥 환자가 극적으로 살아나는 모습을 보고 순환기내과를 선택했다. 고 서순규 교수와 노영무 교수 등 순환기내과의 국내 최고 대가들이 포진해 있어 심장의 ‘ㄱ’에서 ‘ㅎ’까지 철저히 배울 수 있었다. 김 교수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세브란스병원 김성순 교수가 미국 워싱턴 대학교 의과 대학에서 부정맥의 최신 진단법과 치료법을 익혀왔다는 소식을 듣고 ‘개인 과외’를 청해서 공부했다.

김영훈 교수는 1993년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의 시더스 사이나이 병원 부정맥연구소로 연수를 갔다. 밤새워 부정맥 연구에 매달려 한국인 처음으로 미국심장학회와 미국심장협회의 ‘젊은 연구자상’을 연거푸 수상했다.

1998년 김 교수는 이론과 실기를 겸비하고 전극도자절제술을 본격 시행했지만 이론과 실제의 간극은 컸다.

인턴 제자를 떠올리면 지금도 식은땀이 난다. 김 교수는 “가슴이 뛴다”며 고통스러워하는 제자를 “인턴 생활 힘들지?”하고 다독거리다가 헉! 부정맥을 발견했다. 의사인 부모에게 병세를 설명하고 시술을 했더니 심장의 떨림이 멈췄다. 부모에게 “시술 잘 마쳤다”고 설명하고 수술실로 돌아오니 제자의 심장이 다시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다시 신호가 오는 부위를 지졌더니 잠시 떨림이 없어졌지만 얼마 뒤 재발했다. 뒷덜미가 찌릿, 아찔했지만 원점으로 돌아갔다. 오른 심장만 봤는데 왼쪽을 자세히 보니 이곳이 문제였다. 고주파열로 지졌더니 재발이 멈췄다. 그 제자는 현재 고려대 안산병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 교수는 “이 치료의 열쇠는 정확한 부위를 찾아서 공격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제대로 찾을 수 있을까에 몰두하자”고 다잡았다.

시행착오를 피할 수는 없었다. 부정맥이 생기는 부위를 찾아서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8~10시간이 걸렸고 17시간 심장과 씨름한 경우도 있었다.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했는데도 거듭 재발해서 5번 시술하기도 했다. 동료 의사들은 “왜 무리하느냐”고 핀잔을 줬고, 일부 제자는 한밤중 지친 몸으로 “이 시술을 꼭 해야 하느냐?”고 원망의 눈초리를 보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부적절한 치료라며 수가를 인정하지 않아 누적 삭감 금액이 10억 원에 육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전의 약 치료로 해결할 수 없던 환자들이 하나둘씩 기적 같이 낫기 시작했다. 응급실에 실려 왔다가 털털 털고 걸어서 나가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한 건설 회사 회장은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새 생명을 얻고 10억 원을 기증했다. 김 교수는 이 돈으로 3차원 영상 시스템을 도입해 시술 정확도를 높였다. 그는 또 심방세동이 재발하거나 심장 근육이 지나치게 두꺼운 환자에게 심장 내막뿐 아니라 심장 바깥쪽으로도 지져서 치료하는 방법을 비롯해서 다양한 치료법을 개발했다. 시술 성공률은 수직 상승했고 재발률과 부작용이 줄어들면서 심평원의 삭감 횟수는 급전직하했다.

김 교수는 2008년 안식년을 맞아 미국 매사추세츠종합병원, 미시간대학병원, 펜실베이니아대학병원, 유타대학병원, UCLA 등 20개 병원을 돌아다니며 대가들과 고민을 나눴고 10곳에서는 특강을 했다. 그는 “세계 최고의 대가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논문과 실제 현황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했다”면서 “실제 모습을 보니까 환자 치료의 길이 더 밝아졌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최근까지 3600여 명의 환자를 시술했다. 시술 시간은 3시간 이내로 줄었다. 3개월 내 재발률은 10% 이하로 떨어졌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시술 중 사망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초기에는 환자들이 시술 뒤 약을 더 많이 먹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은 시술 환자 3명 가운데 1명이 아예 약을 끊고 살고 있다.

그렇다고 진료실에서 환자만 보는 의사는 아니다. 연세대 김성순 교수와 함께 아시아태평양부정맥학회를 설립해 부정맥 분야의 세계 3대 학회로 성장하는 데 기여했다. 심장 전기 충격기 시술이 보험에 적용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응급 상황에 처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다 문제가 생겼을 때 법적 책임을 줄이는 ‘착한 사마리아 인 법’의 입법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공공장소마다 심장충격기(PAD)가 설치된 것도 김 교수의 노력이 컸다. 고려대 안암병원장으로서 병원의 개혁에도 힘썼다. 요즘은 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 운영위원장으로서 남북 협력 시기에 북한 의료인을 교육시키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김 교수는 이토록 바삐 움직이면서도 한때 하루 180명의 환자를 봤다. 병원에서 주어진 진료일에 진료 시간을 몇 시간씩 넘겨 환자를 봐도 환자가 5, 6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병원장 시절에는 환자를 줄이려고 공고했다가 환자들의 아우성 때문에 토요일에도 환자를 봐야만 했다.그는 4, 5년 전부터 환자들의 내원을 줄여 요즘엔 하루 50여 명만 본다. 환자의 부작용을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시술의 정확도가 높아졌고, 빅 데이터 분석으로 약을 끊어도 되는 환자가 명확해졌기 때문. 그는 하루 15~20%의 환자에게 말한다.

“걱정 마세요. 오늘부터 약 끊습니다.”

“멀리 서울까지 안 오셔도 됩니다. 필요하면 동네 병원에서 사진 찍고 스마트 폰으로 보내셔도 됩니다.”

[사진=고려대안암병원]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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