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 끊긴 간암 약, 당신이 간암 환자라면?

경동맥화학색전술(TACE)은 간암 환자에게 꼭 필요한 치료법이다. 간암 치료에 가장 많이 시행되고 있는 치료로 종양에 영양분을 공급하지 못하도록 혈관을 막는 동시에 종양 괴사 효과를 나타낸다.

경동맥화학색전술은 대한간암연구학회와 국립암센터의 간암 진료 가이드라인에 의해 간암 치료법으로 권고되고 있다. 실제 임상 현장에서도 간암 1차 치료법으로 가장 많이 선택되고 있다.

경동맥화학색전술 치료 시 꼭 사용되는 약이 항암제와 조영제다. 항암제는 다양한 종류가 많지만 현재 경도맥화학색전술에 사용되는 조영제는 프랑스 제약사 게르베가 생산하고 있는 리피오돌이 유일하다. 당연히 국내 간암 환자들도 경동맥화학색전술 치료를 받고 있고 여기엔 리피오돌이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반대로 말하면 리피오돌이 없으면 경동맥화학색전술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간암 환자에게 리피오돌이 없는 상황은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났다. 리피오돌을 국내에 공급하는 게르베 코리아가 약가 인상을 이유로 공급을 중단 한 것. 이에 정부는 물론 시민단체와 환자 단체 등 국내 여론은 일제히 게르베 코리아를 향해 날선 비판을 이어갔다.

게르베 코리아는 리피오돌을 생산할 수 있는 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어쩔수 없다는 표면적인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누가봐도 약가 인상을 위한 무언의 항의 제스처였다. 게르베는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 5만2560원인 리피오돌 약가를 5배 높은 26만5000원으로 인상해 줄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약가 인상되도 해결 안돼”

그러나 리피오돌 공급 부족 사태를 바라보는 현장에서의 시각은 상반된다. 결론부터 논하자면, 시민단체나 약학계에서는 게르베의 요구를 들어줘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리피오돌 공급이 절실한 간암 환자 사이에서는 리피오돌 공급이 하루빨리 재개될 수 있도록 약가 인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의견차가 있는 것.

이런 의견차는 3일 국회에서 열린 ‘리피오돌 사태를 통해서 본 필수 의약품 생산 공급 방안’ 긴급 토론회에서 불거졌다. 이날 긴급 토론회에는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와 약업계 단체, 학계, 환자단체 관계자가 참석했다.

이 가운데 상당수의 약학계 교수와 약업계 단체 관계자는 약가 인상이 해결책이 아니라며 좀 더 적극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강아라 정책사무국장은 “미국 FDA(식품의약국) 보고서에 따르면 리피오돌 약가가 100만 원인 미국에서도 공급 불안이 계속되고 있다”며 “리피오돌은 최근 3년간 중국에서 사용량이 22배 증가하고 동남아시아에서도 수요가 급증해 원료 수급 어려움 때문에 약가 인상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아라 국장은 “그렇다면 약가를 올린다고 해서 공급 불안정이 해결 될 수 있는 문제인지 되묻고 싶다”며 “약가 인상이 원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높은 약가만이 공급을 담보할 수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목원대학교 의생명보건학부 권혜영 교수 역시 “과거 글리벡(노바티스), 푸제온(로슈) 등 다국적 제약사가 약가 인상을 이유로 공급을 거부하는 사례가 반복적으로 있었고, 그때마다 정부는 약값 올려주는 방법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화여자대학교 약학 대학 배승진 교수도 “민간 기업이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으면 지속적으로 약가 인상을 요구해 의약품 시장을 교란시킬 우려가 있다”고 언급했다.

“약가 인상 비난, 환자 위한 것 아냐”

하지만 리피오돌 직접 처방 대상인 간암 환자 입장은 달랐다.

리피오돌 약가 협상이 결렬돼 게르베 코리아가 리피오돌을 국내 시장에서 철수시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리피오돌이 없으면 환자들은 고가의 비급여 약을 쓸 수 밖에 없다는 게 윤구현 대표 설명이다.

윤구현 대표는 “리피오돌이 없어지면 환자들은 미세구색전술, 방사선색전술, 표적 항암제 넥사바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런 치료는 다 비급여다. 넥사바도 초기 간경변까지만 급여 적용이 되고 나머지는 비급여”라며 “대부분 간암 환자는 중기 이상의 간경변 환자들이기 때문에 환자들이 몇 십배에서 몇 백배 비싼 치료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넥사바의 경우 한 달에 200만 원 정도 드는데 9개월이면 1800만 원이다. 이 가운데 국민건강보험공단이 95%를 부담한다”며 “넥사바를 환자 몇 명만 쓰더라도 리피오돌 비용을 넘어선다. 리피오돌의 간암 치료 중 가장 저럼한 치료이며 약가 인상이 되더라도 비용이 매우 낮은 편”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윤 대표는 리피오돌 복제약이 나오지 않는 이유를 들며 약가를 인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대표는 “리피오돌이 특허가 있는 약인가, 우리나라에서 독점권을 인정받고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100년이 넘은 특허가 없는 리피오돌 복제약이 나오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만들기가 너무 어렵거나 가격이 너무 낮아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것 둘 중 하나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리피오돌의 약가가 낮아 수익성이 없기 때문에 다른 제약사가 복제약(제네릭)을 만들지 않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2017년 IMS 헬스 데이터 기준(2017년) 허셉틴, 글리벡, 어리툭스, 타시그나 등이 수백억 대의 연간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이 비해 리피오돌은 약 6억 원에 불과한 것이 사실. 즉, 약가 인상을 해야 수익성도 높아져 리피오돌 복제약이 여럿 나오고 이를 통해 원할한 공급을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윤 대표는 “리피오돌 가격 인상으로 보다 안정적인 공급을 기대할 수 있고 전 세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복제약을 만들 동기가 될 수 있다”며 “의약품 가격과 공급 논의는 전체 사용량과 특허 유무에 따라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빠르고 안정적인 공급을 위한다면 공공제약사가 아니라 퇴장 방지 의약품 제도를 취지대로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Jcomp/gettyimagebank]

    송영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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