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사람은 ‘우울증’을 모른다

한반도의 평화 기류가 기대되는 가운데, 북한 주민과 탈북민의 정신 건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14일 국립중앙의료원 공공보건의료연구소는 ‘남북한이 하나의 건강 공동체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제목의 심포지엄을 열었다. 남북 의료 전문가들이 모여 북한 이탈 주민과 북한 주민의 건강 상태를 바로 파악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는 특히 북한 주민의 ‘정신 건강’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국립중앙의료원의 북한 이탈 주민 진료 현황 분석에 따르면, 누적 진료 연인원(진료 건수)은 9만8238건이다. 진료 별로 보면 외래 진료 건(전부 누적)은 정형외과 6127건, 정신건강의학과 6051건으로 1위를 다투고, 질환 별로 보면 ‘우울 에피소드’가 2720건으로 단연 1위다. 불안장애도 1020건으로 7위로 집계됐다.

성균관대학교 의과 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김석주 교수는 “북한 이탈 주민에게는 이른바 ‘신체화’ 증상과 비특이적 신체 증상이 흔하다”며 “이는 정신 건강과 아주 연관이 깊다”고 말했다. 2005년의 한 연구에 따르면, 북한 이탈 주민 35.2%는 자신의 건강이 나쁘다고 생각하며 이는 남한 주민의 3배나 되는 수치다.

김석주 교수는 북한 이탈 주민의 30~40%는 의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비특이적 신체 증상’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남한 주민보다 신체 증상과 우울 증상의 관련이 높은 것이 특징인데, 이는 마음이 힘든 것이 몸으로 나타나는 ‘신체화’로 판단된다. 김 교수는 “외래를 찾는 북한 이탈 주민은 불안하거나 우울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이 답답하다’라거나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한다”며 “하지만 검사상으로는 신체 질환을 찾아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북한 이탈 주민의 신체화가 흔한 이유는 사회적 억압의 심리적 내재화로 보인다. 북한은 불안, 우울 등을 ‘나약하다’라고 낙인찍어 표출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따라서 신체적 증상만이 인정되고, 심리적 고통은 억압된다. 증상이 심해져 이상 행동이 나타나야 ’49호’라고 불리는 일종의 정신 병원으로 격리된다.

’49호’에서의 정신적 문제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는지도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에 따르면 북한은 무상 치료제에 대한 자부심은 무척 높지만, 현실적으로는 다 같이 못사는 ‘균빈(均貧)’의 붕괴로 1%만을 위한 공화국이다. 핵이나 미사일 개발 관계자를 위한 특권층 의료 시설만 번듯하게 운영되고 있다.

게다가 북한 이탈 주민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우울증’, ‘스트레스’라는 용어나 개념 자체가 없어 적절한 치료가 진행되고 있는지도 미지수다. 남북 교류가 늘어나고 통일을 대비해야 할지도 모르는 현재 상황에서 북한 주민의 신체 건강과 더불어 ‘정신 건강’ 또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향후 통일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북한 이탈 주민의 정신 건강 문제와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필요하다. 현재는 민간 차원에서 상담 센터 등을 통해 탈북민을 위한 트라우마 치유 상담, 성폭력 상담실 등을 운영하고 있지만 예산 부족으로 전담 상담사 영입은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미래한반도여성협회 윤승비 이사는 “기초적인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위해서라도 정부의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통일보건의료학회 이소희 정책이사는 “북한 이탈 주민을 위한 트라우마 치료에 관심이 필요하며, 의료 상담실은 민간이 아닌 최소한 병원에 위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진=Photographee.eu/shutterstock]

연희진 기자 miro22@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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