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볼모 약가 협상은 백전백승

[안기종 칼럼] 게르베코리아 리피오돌 수입 중단 사태

프랑스 제약사 게르베코리아가 지난 6월 1일 대한간학회 등 7개 학회에 보낸 공문은 형식적으로는 약 3개월간 수입 중단했던 간암 치료 시 필수 조영제 리피오돌의 수입을 재개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공문의 내용을 하나하나 곱씹어 살펴보면 실질적으로는 정부 당국이 제약사가 원하는 약값까지 인상해 주지 않으면 언제든지 수입이 중단될 수 있음을 알려주는 경고장 내지 협박장과 다름없다.


게르베코리아의 협박장

게르베코리아는 리피오돌의 원료가 천연 양귀비 오일이라서 생산이 제한적인 반면 최근 수요가 세계적으로 급증해 중국의 경우 지난 3년 사이 사용량이 22배 폭증하였고, 이러한 이유로 국가 간 가격 경쟁이 심화되고 있음을 강조했다. 게르베코리아는 중단되었던 리피오돌 수입을 재개하겠다는 사실을 공문을 통해 발표는 하였으나 “합리적 가격을 위한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또 게르베코리아는 당분간 전 세계적 공급 부족 상황으로 국내 수입량이 제한적이라는 이유로 의료진으로 하여금 환자에 대한 리피오돌의 임상적 적용을 중요도에 따라 효율적, 제한적으로 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이는 정부 당국과 약값 협상이 결렬되면 언제든지 수입 중단을 할 수 있다는 경고로 간암 환자의 피해가 예상된다.​​​​

리피오돌은 2012년 11월부터 원가를 반영한 일정 가격 이상으로 약값을 인상할 수 없는 ‘퇴장 방지 의약품’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지난 6월 8일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는 리피오돌에 대한 퇴장 방지 의약품 지정을 해제하는 결정을 하였다. 이제 게르베코리아가 리피오돌에 대해 정부 당국을 상대로 약가 조정 신청을 하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서의 급여 결정과 국민건강보험공단과의 약가 협상을 통해 최종 약값이 결정된다. 최근 외국의 사례를 고려하면 상당한 약값 인상이 예상된다.

다국적 제약사의 ‘벼랑 끝 전술’

오늘(12일)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에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역사적인 북미 정상 회담을 갖는다. 여기서 비핵화 선언, 종전 선언 등 한반도 평화를 위한 획기적인 조치와 반대급부로 북한 체제 보장 약속과 대규모 경제 지원 조치가 발표될 거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에 반해 북한과 미국 모두 ‘벼랑 끝 전술’로 마지막까지 그 결과를 예상할 수 없는 숨 막히는 협상을 할 거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이란 초강수를 두어 협상을 막다른 상황으로 몰고 가 목표한 결과를 얻는 외교적 협상 전략을 말한다. 북한과 미국 모두 벼랑 끝 전술을 잘 쓰는 국가 중 하나다.

벼랑 끝 전술은 북미 정상 회담 등과 같은 외교 협상 외에도 제약사와 정부 당국 간의 약가 협상에서도 종종 등장한다. 일부 글로벌 제약사가 신약을 최초로 국민건강보험에 등재할 때나 이미 등재되어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의약품의 가격을 인상하려고 할 때 약가 협상이나 조정이 진행되는 기간 동안 해당 의약품의 공급을 아예 중단하거나 공급 물량을 줄여 재고분이 바닥나도록 만드는 비인도적인 협상을 하기 때문이다.

생명과 직결된 의약품의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의료진과 환자의 불만과 불안은 극에 달한다. 이는 약가 협상과 조정을 진행하는 정부 당국에 압박이 되어 결국은 제약사가 원하는 약값으로 약가 협상과 조정은 타결된다.

우리나라에서 글로벌 제약사가 약가 협상이나 조정 중에 벼랑 끝 전술을 사용한 최초의 사례는 기적의 항암제로 불리는 만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의 제조사 노바티스다. 2001년 11월 고가의 약값을 받기 위해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가 글리벡을 공급 중단했다가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고 다시 공급했었다.

2011년 8월에는 일본 의료 기기 업체 올림푸스가 내시경 점막하 박리 절제술(ESD)로 위암 수술을 할 때 사용되는 치료 재료 내시경용 칼의 가격을 올려 달라며 약가 조정 신청과 함께 공급을 중단했었다. 2017년 2월에는 미국 의료 기기 업체 고어가 독점 공급하는 치료 재료의 가격을 인상해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아 심장 수술을 하는데 꼭 필요한 ‘인조 혈관’의 국내 공급 사업부를 철수시켜 버렸다.

노바티스, 올림푸스, 고어 모두 이러한 의약품과 치료 재료 공급 중단 조치 이후 기존 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받았다. 이처럼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한 제약사와 의료 기기 업체의 약값 인상 횡포는 계속되어 왔고, 그 결과는 늘 백전백승(百戰百勝)이었다.

게르베코리아의 리피오돌 약값 인상 요구

간암 환자에게 경동맥화학색전술(TACE) 시행 시 항암제와 혼합해 사용되는 조영제 리피오돌을 우리나라에 독점 공급하는 게르베코리아가 공급을 중단한 것은 올해 3월 7일이었다. 2017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요양 급여 비용 청구량을 기준으로 리피오돌 대상 환자수를 계산하면 간암 환자는 약 1만4000명, 간암 이외 환자까지 포함하면 약 1만6000명에 이른다.

문제는 게르베코리아가 세계적인 물량 부족 현상 및 국내의 낮은 약값 책정으로 리피오돌 수입을 올해 3월 7일 중단하고 나서, 올해 4월 23일에는 원가보전 신청까지 하면서 리피오돌 수급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지난 세 달 동안 의료 현장에서는 리피오돌 재고분으로 환자를 치료해 왔으나 최근 재고분마저 바닥 나 당장 환자 치료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에 대한 시민 단체, 환자 단체 및 관련 학회의 우려와 항의의 목소리가 계속되자 게르베코리아가 지난 6월 1일 공문을 통해 리피오돌 수입 재개를 발표하였다.

리피오돌이 1998년 우리나라에 최초로 국민건강보험에 등재될 때의 가격은 8470원에 불과했다. 2012년 게르베코리아는 약가 조정 신청을 해서 가격을 6배 이상인 5만2560원으로 인상시켰다. 리포오돌의 적응증은 처음에는 림프관이나 침샘 조영이었으나 2015년에는 간암의 경동맥화학색전술까지 확대되었다.

그런데 올해 4월에 또 2015년 이후 수입 원가 상승이 반영되지 않아 손실이 누적되었다며 약가 조정 신청을 하였다. 게르베코리아는 현재 가격 5만2560원의 5배에 해당하는 26만2800원으로 약값을 인상해 달라고 정부 당국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2012년 인상된 약값과 비교하면 5배이지만 1998년 약값과 비교하면 37배 인상된 가격이다.

일반적으로 의약품의 수요가 늘어나면 가격이 인하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인데 리피오돌의 경우에는 반대다. 이러한 무리한 약값 인상 요구에는 최근 중국에서 리피오돌 한 개의 가격을 약 30만 원으로 인상해 주었고, 중국의 리피오돌 수요가 급증한 배경도 있다.

게르베코리아의 비인도적인 벼랑 끝 전술

게르베코리아가 정부 당국을 상대로 약값 인상을 요구하는 약가 조정 신청을 한 것 그 자체에 대해 비난할 생각은 없다. 우리나라 약가 제도는 현행 약값에 불만이 있는 경우 환자나 제약사 모두 약가 조정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해 놓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환자와 환자 가족은 2006년 7월에 영국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를 상대로 폐암 치료제 이레사 약값을, 2008년 6월에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를 상대로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 약값을 인하해 달라는 약가 조정 신청을 했었다.

그러나 게르베코리아가 전 세계적인 공급 부족 상황을 이유로 리피오돌 수입을 중단한 상태에서 정부 당국과 약가 조정을 하는 것은 환자의 생명을 불모로 한 벼랑 끝 약가 협상 전략으로 제약사의 존재 이유를 망각한 비인도적 처사다. 제약사는 의료진과 환자가 간암 치료에 차질이나 불안감이 없도록 한 상태에서 약가 협상을 해야지 간암 환자를 벼랑 끝에 세워 두고 기존 약값의 5배까지 인상해 주지 않으면 확 밀어버리겠다고 정부 당국을 겁박하는 모습은 독점 제약사의 갑질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공공 제약사 설립이 필요하다

제약사의 의약품 독점권으로부터 환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부가 강제 실시, 병행 수입 등의 적극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만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이나 에이즈 치료제 푸제온 강제 실시 청구 사례에서 경험했듯이 한국 정부는 통상 입력에 대한 부담으로 강제 실시, 병행 수입 실시 등에 소극적이다.

결국, 대안은 공공 제약사 설립이다. 리피오돌처럼 퇴장 방지 의약품으로 지정해 일정한 이윤을 보장해 주어도 그 이상의 이윤을 요구하는 제약사가 공급을 중단하거나 물량을 줄이는 방법으로 약값 인상을 요구하면 정부 당국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리피오돌도 특허권이 없는 의약품이기 때문에 국내에서 제조 기술만 보유하면 원료인 양귀비를 수입하거나 재배해 자체 생산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권미혁 의원이 2017년 6월 13일 대표 발의한 ‘국가 필수 의약품의 공급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정안’에는 감염병의 예방에 필요한 백신, 공중보건 위기 대응에 필요한 의약품, 희귀 질환의 진단 또는 치료에 사용되는 의약품 뿐만 아니라 리피오돌처럼 질병의 치료에 필요하나 수익성이 낮거나 원료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는 이유로 민간 제약 회사가 생산 또는 수입을 기피하는 의약품에 대해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공공 제약사 설립을 통해 해결하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번 게르베코리아의 리피오돌 약값 인상 요구 및 공급 중단 사태를 계기로 공공 제약사 설립을 포함하고 있는 ‘국가 필수 의약품의 공급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정안’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국회가 나서야 한다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한 제약사의 약값 인상 폐단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회 차원의 입법적 조치가 선행되어야 한다. 국회에서는 지방 선거가 종료되고 제2기 보건복지위원회가 구성되는대로 ‘국가 필수 의약품의 공급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정안’를 최우선적으로 심의해야 한다.

정부와 제약사는 최근의 리피오돌 공급 부족 사태 관련해 간암 환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와 제약사 간의 약가 조정 줄다리기 때문에 간암 환자의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은 절대 용인될 수 없다. 정부와 게르베코리아 간의 리피오돌 관련 약값 시각차는 타협이 쉽지 않은 수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 당국과 게르베코리아는 환자의 생명에 최우선 가치를 두고, 신속히 약가 조정 절차를 마무리해 치료받는 그 자체만으로도 벅차고 힘든 간암 환자들이 치료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진=JTBC]

    코메디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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