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수첩] 불법 리베이트 “답 없다”

“솔직히 답이 없습니다. 불법 리베이트는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불법 리베이트를 놓고 복수의 제약 업계 관계자가 공통적으로 내놓은 대답이다.

제약 업계가 전사적으로 불법 리베이트 척결에 나서고 있지만 올해(2018년) 역시 불법 리베이트 문제가 불거졌다.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했던 유유제약 대표는 징역형을 선고 받았고, 올해 초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던 유한양행 자회사이자 수액 영양제 전문 회사 엠지에 대한 리베이트 수사는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제약 업계의 불법 리베이트 문제는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잊을만 하면 터져나오는 불법 리베이트 사태 때문에 제약 기업과 업계, 산업 자체에 대한 이미지는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발 등에 불이 떨어진 제약 업계는 불법 리베이트 자정 운동에 돌입했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 공정 거래 자율 준수 프로그램(CP)을 자발적으로 도입, 불법 리베이트 근절을 선언했다. 하지만 불법 리베이트는 관행이라는 명분하에 계속돼 왔고 급기야 제약 업계 안팎에서 투명 경영 요구가 높아졌다.

실제로 한국컴플라이언스인증원 이원기 원장은 “많은 제약사가 CP를 도입해 준법 경영에 대한 의지를 다지고 CP의 긍정적인 요소를 인식하고 있지만 불법 리베이트와 관련해서는 그리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한국제약바이오협회를 중심으로 제약 업계는 CP보다 강력한 시스템이라 평가받는 국제표준화기구가 제정한 국제 인증 제도 반부패경영시스템 ‘ISO 37001’을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ISO 37001은 조직 내 부패 발생 가능성을 시스템으로 차단하기 위한 정책, 절차 및 통제 시스템을 규정하는 국제 표준이다. 각 부서별로 상이한 정책과 시스템이 요구되며 국내에는 지난해 4월 도입됐다. 현재 한미약품, 유한양행, 코오롱제약, 대원제약, 일동제약, JW중외제약 등이 인증을 받았다.

그렇다면, ISO 37001은 제약 업계의 불법 리베이트 행위를 근절시킬 수 있을까. 기대와는 달리 현장에서는 “쉽지 않을 것”이란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ISO 37001이 강력한 부패 방지 시스템이긴 하나 결국엔 해당 기업의 의지라는 맹점이 있다는 설명이다. 제약 업계 한 관계자는 “ISO 37001이 그 어떤 시스템보다 강력한 건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잘 갖춰진 시스템이라도 해당 기업의 의지가 강하지 않으면 불법 리베이트는 근절 되지 않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일선 제약 업계에서는 불법 리베이트 문제가 한국 제약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한 것이라 획기적인 변화가 없는 당장 불법 리베이트 문제가 사그라지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어떤 구조적인 문제일까. 한국 제약 산업은 제약 선진국인 미국, 유럽, 일본 등에 비해 크지 않다. 신약 개발 성공률이 1%라고 가정하면 500여 개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는 글로벌 제약사는 계산상 5개의 신약 상업화가 가능하다.

반면 신약 개발 파이프라인이 많지 않은 국내 제약사의 신약 개발 성공 확률은 그만큼 떨어진다.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라는 말이 딱이다. 그러다 보니 규모가 작은 국내 제약사는 당장 돈이 되는 복제약(제네릭) 개발이나 도입 품목을 늘릴수 밖에 없고 경쟁 제품이 많다 보니 자사 제품 처방량을 늘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불법 리베이트가 성행할 수 밖에 없다.

몇 년 전 제약 업계도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인식하고, 제약 산업 생태 지형을 바꿔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국내 제약사 간의 적극적인 인수 합병(M&A)이었다. 제약사와 제약사가 합쳐 규모를 키우고, 신약 파이프라인도 확대해 제네릭 중심이 아닌 신약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근본적인 환경 개선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기업 간 인수합병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고, 그렇게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했던 제약업계는 결국 현실과 타협하고 말았다.

불법 리베이트가 터져 나올 때 마다 제약 업계 내부에서는 “방법이 없다”며 답답함을 토로한다. 그러면서도 불법 리베이트의 근절 필요성에 대해 적극 공감하고 의지를 불태운다. 불법 리베이트 문제를 불러일으킨 제약 업계가 불법 리베이트 근절을 말하는 참 아이러니한 상황일 수밖에 없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불법 리베이트 문제는 제약 산업 규모의 문제이자 구조의 문제”라며 “당장 근절은 어렵겠지만 이런 부분이 변화한다면 불법 리베이트가 아닌 연구 개발을 통해 자생할 수 있는 제약 산업이 될 것”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결국 국내 제약 산업이 커져서 파이가 커져야 불법 리베이트 문제가 근절될 수 있다는 것.

현재 정부는 제약 바이오 산업 육성을 위해 다양한 정책 운영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1차에 이어 2차로 진행되고 있는 제약 산업 육성 정책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렇게 정부가 나선다고 해서 제약 산업의 역량이 단기간에 커질 가능성은 적다. 불법 리베이트 문제가 앞으로도 계속되리라고 비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진=gettyimagesbank/MarianVejcik]

    송영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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