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당하는 태아가 무슨 죄인가”

[인터뷰] ‘낙태죄’ 폐지 반대하는 구인회 가톨릭대 교수


그 어느 때보다 임신 중절(낙태)을 두고 관심이 뜨겁다.

‘낙태죄’ 폐지와 자연 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화 및 도입을 요청하는 청와대 청원이 23만 명을 돌파했다. 오는 5월 24일에는 ‘낙태죄’ 위헌 여부를 가리는 헌법재판소 공개 변론이 예정되어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8일 전국 대학교수 96명은 ‘낙태죄 폐지 반대’ 탄원서를 제출했다.

탄원서를 대표로 제출한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 구인회 교수를 만나 ‘낙태죄 폐지 반대’ 견해를 들어봤다. 보통 ‘임신 중절’이 ‘태아를 떨어뜨린다’라는 뜻의 ‘낙태’보다 정확한 의학 용어다. 하지만 구인회 교수는 ‘임신 중절’이라는 용어가 태아의 생명권과 존엄을 훼손하는 낙태에 대한 우리의 양심을 흐리게 한다며 ‘낙태’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코메디닷컴’은 낙태죄 폐지 의견의 인터뷰도 준비 중이다.

– 헌법재판소의 공개 변론이 다음 주다. 어떻게 보나.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이 충돌한다면 생명권이 우선이라는 것은 헌법재판소도 인정했다(2012년 판례). 다수의 헌법학자도 낙태 허용 범위가 넓다는 의견이라고 들었다.”

– 현행법은 6가지 예외사항을 두고 있다. 하지만 많은 여성이 이 사항에 해당되어도 임신 중절이 합법임을 증명하는 게 어렵다고 호소한다.

“그런가? 정작 진짜 문제는 현실에서 불법 낙태가 너무나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문가 다수가 연간 30~50만 이상 낙태가 이뤄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광범위하게 낙태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낙태죄를 폐지한다면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를 키울 것이다.”

– 현행법이 임신 중절에 너그럽다는 입장인가.

“해외 사례와 비교했을 때 현행법은 낙태에 너그러운 편이다. 본인이나 배우자가 우생학적·유전학적 정신 장애나 신체 질환, 전염성 질환, 친족 간 임신,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성범죄에 의한 임신 등 6가지 예외를 두고 있다. 해당 시 24주 이내에 낙태가 허용된다. 다수 해외 사례에서는 사안에 따라 달리 정하기도 하지만 낙태 허용 기준을 보통 12주로 정하고 있다.”

– 임신 중절은 태아를 언제부터 인간으로 보느냐의 쟁점과도 연결된다.

“12주 이상은 보통 중기라고 한다. 중기를 넘으면 조산해도 아기를 살릴 수 있기 때문에 보통 12주로 잡는다. 나는 12주도 굉장히 너그럽다고 본다. 어느 시기의 태아든 ‘인간 생명’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 탄원서에도 수정란은 초기 인간 생명이라고 주장했다.

“인간 고유의 유일하고 독특한 개체가 시작되는 것은 수정된 그 순간부터다. 인간의 생명이 시작된다는 말이다. 정자와 난자가 합쳐 이루어지는 수정란은 단순한 하나의 세포가 아니다.”

– 수정란은 어떤 점에서 다른가.

“다른 세포와 달리 수정란은 하나의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길목에 있는 존재라는 특성이 있다. 즉, 한 인간으로서의 여정이 시작되는 초기 인간 생명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세포와는 다르다. 단지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는 인간 생명체로 봐야 한다.”

– 현재 태아는 법적으로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그 또한 같이 논의되어야 할 대상이다. 인간의 형태를 갖추지 않았다고 해서 인간이 아닌 것이 아니다. 인간에 준하는 보호를 받아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민법, 형법 등 개정 논의 또한 필요하다.”

– 여성과 의료진만 처벌하는 현행법에 대한 비판이 많다. 이와 관련해서 미혼모를 위한 ‘히트앤드런 방지법’ 제정 청원이 진행됐다.

“그 점은 정말 잘못됐다. ‘히트앤드런 방지법’을 적극 찬성한다. 여성만을 처벌하고, 모든 책임을 부담케 하는 현행법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남성도 임신과 낙태에 대한 책임을 충분히 져야 한다. 출산 시 양육비를 의무적으로 지급하게 해야 하며, 불가능할 경우 국가가 우선 지급할 것이며 낙태 시에도 같이 처벌해야 한다.

출산율도 너무 낮은데 잉태된 아이를 사라지게 하는 것은 부조리다. 난임·불임 클리닉에 사회적 비용이 낭비되고 있는데 생긴 아이는 잘 낳아서 키울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미혼모의 사회적 시선, 경제적 문제 등이 문제라면 그 점을 개선할 수 있게 바뀌어야 한다.”

– 산모의 두려움과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대책은 도대체 뭔가.

“상담 시설도 늘려야 하고 사회 경제적 지원이 시급하다. 많은 예산이 투입되어야 한다. 서구에서 낙태 허용 범위가 넓은 것은 어린이집 등 시설도 잘되어 있고 양육비 지원, 각종 우선권 등이 뒷받침되어 있기 때문이다. 굳이 낙태하지 않아도 아이를 낳아서 기를 만큼 제도가 되어있으니 사회적 문제가 적다는 말이다.”

– 우리나라는 낙태 금지 정책은 강력한데 낙태율은 OECD 최고 수준이라 유명무실하다는 비판도 많다.

“낙태죄가 유명무실이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법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면, 잘 지켜지도록 관리를 해야지 절대 폐지가 정답은 아니다.”

– 여성 단체에서는 임신 중절과 관련해 ‘마이 바디, 마이 초이스(My body, My choice)’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내 몸은 내 것인데 왜 국가가 개입하느냐는 생각은 상당히 위험하다. 가장 비민주주의적인 발언이다. 아무런 방어 능력도 없는 가장 약한 개체인 태아를 희생시켜 태아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것. 어떻게 보면 집단 이기주의다. 단지 내가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 원천적으로 수정 순간부터 생명이고 생명에 대해서 누구도 결정할 권리가 없다는 것인가.

“그렇다. 극단적으로 보면 강간으로 인한 임신일 때도 낳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아이가 무슨 죄가 있나. 구시대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얼굴도 모른 채 결혼해도 아이를 낳으면 모성이 생기고 가정이 안정을 이뤘다. 아이를 키우면서 고통이 승화될 수도 있다. 나를 힘들게 하기 때문에 생명을 죽일 수 있는 것인가.”

– 하지만 원치 않는 출산은 당사자와 아이 국가 모두에게 비극적인 결말을 낳을 것이다.

“낙태 사유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이 ‘원치 않은 임신’인데 2015년 기준 61.3%가 이에 해당됐다. 사실 이 ‘원치 않는 임신’이라는 게 참 애매모호하다. 어떤 이유든 가져다 붙일 수 있다. 육체적 관계는 원하지만 책임은 지고 싶지 않다는 무책임한 사유도 포함된다.”

– 생명윤리학자들 사이에서는 어떤 의견이 지배적인가.

“찬성과 반대가 비슷한 것 같다. 윤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게 내 입장이다. 예를 들어, 산모의 목숨을 해칠 수 있는 경우에도 산모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아기를 죽이는 게 의무는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산모를 살린다는 것은 산모를 돕는 것인데, 돕는 것은 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의무다. 더 우선시해야 하는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

– 여권에 치명적이라는 의견도 많다. 그래서 여성 교수가 탄원서를 대표 발의했다기에 사실 조금 놀랐다.

“낙태죄가 폐지되면 여성에게 피해가 더 클 것이다.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 남성의 책임감이 더 낮아질 것이다. 피임에 협조하지 않고 계획에 없던 임신을 했을 때, 무책임하게 낙태하라는 상황이 많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낙태를 강요당하는 상황이 여성에게 치명적이라고 본다. 더군다나 이런 저출산 시대에서….”

– 모두를 위해서 현행법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인가.

“현행법이라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도 사안에 따라 다르다. 삶과 죽음의 문제를 자기 결정권이라는 이름으로 결정할 수 있는가. 태아는 당분간 산모의 몸에 의존할 뿐이지 하나의 존재다. 독립적 존재로 살기 위한 준비 단계일 뿐이다. 내 삶에 방해된다고 해서 태아를 죽일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사진=bioethicsobservatory.org]

    연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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