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DTC 규제 완화 공청회, 찬반 격론

찬성 “민간 유전자 검사 기관 검사 항목 확대해야”
반대 “비과학적이고 시민 건강에 도움 안 되는 졸속 법안”

정부가 민관 협의체 의견을 수렴해 ‘소비자 의뢰 유전자 검사(Direct-To-Consumer, DTC) 제도 개선안’을 공개했다. 하지만 민관 협의체 안에서도 이견이 상당한 비과학적이고 산업계 이해에만 초점을 맞춘 안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30일 보건복지부는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DTC 유전자 검사 제도 개선 공청회를 열고, DTC 유전자 검사 항목을 늘리는 내용의 개선안을 공개했다. DTC 검사는 의료 기관이 아닌 유전자 검사 기관이 소비자에게 직접 검사를 의뢰받아 수행하는 것으로, 산업계는 검사 항목 규제가 과도하다고 지적해 왔다.

개선안은 현재 12개 항목, 46개 유전자 검사를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피부 노화, 비만 등 미용, 건강 분야에 한정됐던 DTC는 ‘웰니스(개인 건강)’ 또 당뇨, 고혈압, 뇌졸중 등 질병까지 확대한다.

다만 신규 허용 항목은 사전에 인증된 기관만 가능하도록 했다. 현재 신고제에서 인증제로 전환하기로 한 것. 인증을 통해 1등급을 받은 기관은 질병 예방 항목까지 허용하고, 2등급 기관은 웰니스 항목을 검사할 수 있다. 3등급은 기존 허용 항목에 대한 검사만 가능하다.

“무책임한 제도 안 되려면 생명윤리법 개정이 우선”

하지만 공청회에서는 개선안에 대한 비판과 우려가 쏟아졌다. 규제 완화에 앞서 생명윤리법 제도 정비가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소윤 연세대학교 의과 대학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는 유전자 검사로 인한 차별 문제를 거론했다. 김 교수는 “현재 생명윤리법에서 유전자 차별 금지 내용은 한 구절뿐, 세밀한 규정이 없다”면서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으면 국민에게 무성의한 제도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개인 정보 및 유전 정보의 수집, 관리, 폐기 등에 관한 규정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나경 성신여자대학교 법과 대학 교수는 유전 상담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유전자 검사는 분석도 정확해야 하지만 해석도 타당해야 한다”며 “해석의 타당성을 충분히 담보하지 않으면 소비자에게 왜곡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김 교수는 “왜 독일이 DTC를 허용하고 있지 않은지 성찰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DTC 검사 과학적 근거 없어”

DTC 규제 완화가 과학적 근거 없이 졸속으로 마련된 것이라는 시각도 나왔다.

민관 협의체 과학계 위원으로 참여했던 이종극 서울아산병원 의생명연구소 교수는 “현재 한국에서 시행하는 DTC 검사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선정된 유전자 검사 항목은 법률이 정한 ‘질병 예방’이라는 검사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과학적 타당성 및 임상적 유용성도 없다”며 “그런데도 산업계는 논문 몇 편을 근거로 무리하게 규제를 완화해 달라고 한다”고 비판했다.

이종극 교수는 “치매(APOE), 유방암(BRCA1/2) 같은 질병과의 관계가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입증된 몇몇 유전자 검사 외에 지금 확대하려는 DTC 항목은 과학자로서 양심을 걸고 말하자면 ‘사기’와 다를 게 없다”며 “이런 규제 완화를 업계가 주문하고 복지부가 받는 모습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시민 대표로 참석한 강양구 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도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DTC 검사의 확대는 무분별한 유전자 검사 상업화를 불러올 뿐만 아니라, 자칫 개인의 질병과 유전자 사이의 왜곡된 사회 관념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강양구 본부장은 DTC 검사를 허용한 미국과 한국의 의료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도 지적했다. 강 본부장은 “미국은 개인 기반의 건강 관리 시스템인 반면, 한국은 공공 기반의 건강 관리 시스템”이라며 “유전자 검사 확대가 한국 환경과 맞는 것인지, 오히려 불필요한 의료비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분열된 협의체, “이래서 국민 설득 하겠나”

정부는 DTC 제도 개선을 위해 지난해 말부터 의료계, 과학계, 윤리법학계, 산업계 전문가들이 참여한 민관협의체를 마련해 11차례 걸쳐 논의를 이어왔다. 이번 공청회는 협의체에서 합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마련된 개선안을 공개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였지만, 협의체 위원들 간 날 선 토론으로 논의가 원점으로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였다.

특히 협의체 구성원이었던 이종극 교수는 “민관 협의체에서 한 번도 논의되지 않은 부분이 최종안에 반영됐다”며 “이건 협의체의 의견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반발하면서 분위기가 격화됐다.

이런 비판에 산업계 위원인 신동직 메디젠휴먼케어 대표는 “답답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신 대표는 “기업들이 열심히 연구 개발을 하고 있는데 응원하기보단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만 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또 다른 산업계 위원인 김경철 테라젠이텍스 바이오연구소 본부장 역시 “웰니스가 과학적 근거가 없거나 학문적으로 완성되지 않았다는 프레임엔 동의하지 못한다”며 “다수의 의견은 개선안에 나온 내용”이라고 말했다.

외부 전문가로 공청회에 참여한 김소윤 교수는 “함께 논의를 해온 민관 협의체 위원도 설득을 못 한 개선안으로 과연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까 싶다”며 “소수 의견도 경청하며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지, 소수 의견이니 무시하고 갈 거라는 방식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강양구 본부장 역시 “산업계의 급한 마음은 알지만, 여전히 논의될 게 많아 보인다”며 “민관 협의체의 과학계 대표 두 명 가운데 한 명이 개선안에 대해 강한 과학적 불신을 표하는 상황에서, 그 개선안을 그대로 진행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제도가 안착하는 데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개선안의 큰 틀은 유지하되 세부 내용을 보완하겠다는 입장이다.

박미라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장은 “속도가 늦어져 시기를 놓치지 않을까 하는 산업계 우려도 충분히 알고 있다”며 “소비자도 납득할 수 있도록 우려되는 부분을 최대한 조율해 하반기엔 시범 사업 및 가이드라인을 확정하고 내년(2019년) 상반기에 진행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사진=shutterstock]

    정새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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