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약값 너무 싸다는 다국적 제약사, 정말?


[‘스페셜 301조’로 본 제약 ①] 한국 약값, 정말 싼가?

미국제약협회 파마(PhRMA)가 한국 약가 제도의 문제점과 최고 수준의 무역 제재를 요청하는 내용을 담은 스페셜 301조 제안서를 미국 무역대표부(USRT)에 제출했다. 이에 정부와 국내 제약 업계는 우려할 만한 사항은 아니라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파마는 한국 약가 정책이 차별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정 조건(한국서 임상 시험 진행) 충족 시 약가 10% 우대 ▲두 번(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걸친 약가 평가 등으로 미국 제약 산업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합의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차별로 한국에서 판매되는 다국적 제약 회사 의약품 값이 싸다는 것. 사실상 약값을 올려달라는 것이 이들의 요구 사항이다.

실제로 제약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제약협회 주장의 핵심은 한국에서 팔리는 자국 제약사 약값이 싸다는 것”이라며 “무역 제재를 통해 약값을 올려 받길 원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그동안 여러 차례 얘기가 나왔던 것”이라며 “이번 트럼프 정부발 무역 압박 분위기에 편승해 약가 인상을 노리는 전략으로 읽힌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팔리는 다국적 제약사 약값 수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연 미국 측 주장대로 한국 내 약값이 싼 것일까?

다국적 제약사 “한국 약값은 싸다”

“한국 신약 약가 수준은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낮다.” 국내에서 활동 중인 36개 다국적 제약사를 대표하는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는 국내 약가를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KRPIA가 공개한 자료(한국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약가 수준 비교)에 따르면, 2007년~2014년 8월까지 다국적 제약사가 국내 출시한 신약 약가는 OECD 회원국 평균 가격의 45% 수준이었다. 보험이 적용된 신약 가운데 한국 약값이 가장 낮은 품목도 60%로 나타났다. OECD 국가에서 신약 약가가 10만 원이라고 가정했을 경우 한국은 4만5000원 수준이라는 것. 그리고 가장 싸게 팔리고 있는 신약 10개 중 6개가 한국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른 아시아 국가와 비교해서도 국내 신약 가격은 낮은 수준이었다. IMS 데이터(2014년 1분기)를 분석한 결과 특허 의약품 가격은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보다 낮았다. 아시아 지역 평균 약가에 비해 20%가량 낮은 수준. KRPIA는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수준을 고려한다면 한국의 약가 수준은 더욱 낮게 평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국내에 진출한 다국적 제약사는 약가에 대한 불만을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제기해 왔다. 실제로 한 다국적 제약사 관계자는 “미국제약협회가 요구하는 약가 인상은 다국적 제약사가 10년간 정부에 여러 차례 제기한 내용”이라며 “국내에 도입되는 신약 약가는 전 세계에서 바닥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터무니없는 가격 인상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수준에서 인상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국민건강보험공단 “싸지 않다…단순 비교 부적절”

하지만 정부는 국내 약가가 그리 낮은 수준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보건복지부는 “공보험 기반의 한국과 보험 체계가 다른 나라와의 단순 비교는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나라마다 다른 정책과 제도가 있다”며 “외국의 경우도 약값을 환불해주는 제도라든지 여러 장치가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단순 가격 비교가 아닌 이런 여러 부분을 고려하면 미국제약협회나 다국적 제약사 주장처럼 낮은 수준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도 “표시 가격으로만 접근하면 안 된다”라며 “각국 의약품 가격을 정하는 방식은 너무나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객관적인 가격을 비교하려면 나라별 제도와 정책을 다 반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실제 표시된 가격이 있음에도 우리나라 위험 분담제(신약 효능 및 보험 등에 대한 불확실성을 제약사가 일부 분담하는 제도)와 비슷한 제도를 통해 이중 가격 제도를 시행하는 나라도 적지 않다”고 주장했다. 즉, 공개된 가격은 높은 수준의 가격이지만 실질적으로 환자들이 내는 값은 그보다 낮은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제약 업계에서도 국내 다국적 제약사 약값이 낮은 수준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다국적 제약사의 불만은 잘 알지만 그들 말대로 의약품 가격이 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수년간 불평하고 있지만 정말 낮은 가격 때문에 힘들다면 약을 공급 안하거나 국내에서 운영을 안할 텐데 다국적 제약사는 여전히 약을 공급하고 활발한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언급했다.

복지부 관계자도 “약값이 싸다는 것은 다국적 제약사 주장일 뿐”이라며 “정말 약가가 낮아서 회사 운영이 어렵다면 한국 시장에 약을 공급 하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지금 수준으로도 충분히 매출과 수익이 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결국 약가가 낮은 게 문제가 아니라 이윤을 더 추구하고자 하는 전략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송영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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