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노동자 ‘임신 중 재해’ 산재법 보호 받아야

부적절한 근무환경에서 일한 임산부가 유산했다면 온전히 개인의 책임일까? 이 질문에 “산업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7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여성노동자 모성보호권 강화를 위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 토론회’가 열렸다. 지난 2009년 제주의료원의 임신한 간호사 15명 중 5명이 완전유산, 출산한 7명의 신생아 중 4명이 선천성 장애를 가지고 있어 산업재해 인정을 요청했던 사례가 바탕이 됐다.

토론은 여성 노동자의 인권과 모성보호를 중심으로 의견이 오갔다. 토론 참여자들은 공통적으로 임신노동자와 태아 등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데에 입을 모았다.

임신 노동자 근무환경 열악해

초저출산 국가. 출산율은 줄어만 가는데 비해 유산 및 조산은 증가 추세다. 그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는 것이 근무 환경이다.

자연유산·조산 등을 유발하는 교대근무 및 야간근무, 산전·산후휴가 미부여, 임신·출산·육아 관련 부당해고 등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현실이다. 이현주 우송대학교 간호학과 교수는 “가진 아이도 지켜낼 수 없는 사회”라고 지적했다.

불임, 유산, 선천성 이상아 출산을 유발하는 생식독성 물질에 적나라하게 노출돼있는 경우도 많다. 2014년 작업환경실태조사에 따르면 생식독성 물질과 임신노동자 금지업종에 노출된 여성 노동자는 8만 명이 넘었다.

모성 기능, 산재보험 보장 못 받아

산재보험제도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증가에 따른 문제점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황우정 여성가족부 성별영향평가과 과장은 “사고만이 업무상 재해라는 인식 때문에 남성 재해 인정자가 훨씬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여성 재해는 남성 재해의 4분의 1 수준이다. 사고 중심의 산재보험 적용은 지속적으로 확대된 반면 여성의 모성기능 문제는 아직 산재보험에서 담보하지 못한다.

산재보험법 상 구제가 되지 않으면 민법의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 입증이 어렵다는 점, 변호사 비용 부담 등의 문제점이 있다. 무과실 책임주의를 적용하는 산재보험법에 비해 보호수준도 낮다.

모성 보호는 헌법이 보장한 권리

제주의료원 사건 1심에서는 “임신 중 모체와 태아는 단일체이므로 업무에 따른 태아의 건강 손상은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라며 산재로 인정했다. 하지만 2심에서는 “산재는 근로자 본인에게 발생한 것을 대상으로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장은 “강자의 기득권을 지켜주는 판결”이라며 “사회적 약자를 위한 법 해석은 헌법조차 무시했다”고 말했다.

현정희 본부장이 역설한 헌법은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로 제36조 제2항에 명시돼있다. 또한, 제32조 제4항에는 ‘여성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는 조항이 있다. 하지만 하위법인 산재법에는 임신 중인 노동자에 대한 내용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이 같은 판결이 나올 수 있었다.

강문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총장은 “산재법 개정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복지정책도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 산재법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강문대 사무총장은 “법 조항을 구체화하고 소급 규정을 넣을 필요가 있다”며 “입법만 되면 희망 고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보호 방법이나 업무 관련성 판단 기준도 보안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연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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