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역설, 비참한 생각을 하라

우울한 감정에서 벗어나려면 억지로라도 행복한 생각을 해야 할까? 오히려 행복에 대한 강박이 우울증을 심화시킬 수 있다.

20여년 전 심리학자 랜디 J. 패터슨은 우울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그룹 치료를 시행했다. 하지만 이 치료는 성공하지 못했다. 원인은 행복에 대한 강박 때문이었다.

이 치료는 심각한 우울증으로 한 번 이상 병원에 입원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패터슨은 이 치료를 통해 환자들이 또 다시 입원 치료를 받는 일은 없도록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문제는 환자들의 비관주의적인 사고에 있었다. 환자들은 총 8세션으로 구성된 그룹 치료가 본인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치료를 받아봤자 소용이 없을 것이란 환자들을 보며 패터슨은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다. 관점을 달리해 환자들을 행복해지도록 유도할 것이 아니라 좀 더 비참한 생각을 하도록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좀 더 비참해지기’ 콘셉트의 치료 전략을 만든 것이다.

사람에게 항상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건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다. 행복에 대한 강박과 집착은 오히려 불행해지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인간은 슬픔, 불안, 실망, 절망, 좌절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기분이 비정상적으로 고양되는 조증이 아닌 이상 24시간 행복하기만 한 사람은 없다. 오히려 하루 종일 행복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잠을 줄여 시험 점수를 올리라”거나 “열심히 일해서 더 많은 돈을 벌어라”와 같은 강압적인 목표와 같다.

이런 목표는 쉽게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우울증 환자는 더욱 실망하거나 낙담하거나 자기 비난을 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는 게 패터슨의 설명이다.

반면 비참한 생각은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건설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반심리학’ 원리다. 반대로 행동하고 싶어 하는 ‘청개구리 심리’를 이용해 부정적인 사고를 하도록 유도해 긍정적인 사고를 이끄는 것이다.

최대한 비참하고 궁상맞은 생각을 하고난 뒤 실제로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 생각만큼 나쁘지 않은 현실이 펼쳐진다. 이로 인해 역으로 희망을 갖고 긍정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단 비참한 생각이 더욱 비관주의로 빠지지 않으려면 요령이 필요하다. 무리한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긍정적인 사고를 유도하긴 했으나 환자가 무리한 계획을 세워 실천하지 못하면 또 다시 우울해지기 때문이다. 실행 가능한 수준의 작은 계획부터 세우고 실천해야 긍정적인 감정을 유지할 수 있다. 

또 모든 사람에게 통하는 마법 같은 공식은 없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각 개인이 처한 상황과 정신 상태에 맞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런 전략을 수행할 때는 전문가의 지도 아래에서 시행하는 것이 보다 안전하다.

[사진=HBRH/shutterstock]

    문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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