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대목동병원의 ‘갑질’이 아이를 죽였다

지난 20일 이화여대목동병원과 유가족 사이에 만남이 이뤄졌다. 사건 발생 5일 만이다. 하지만 유가족은 15분 만에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이대목동병원이 전혀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첫 대화의 기회는 사망 이틀째 있었다. 하지만 이대목동병원은 유가족은 안중에도 없었다. 가장 먼저 설명을 들은 것은 기자들이었다. 유가족도 다른 국민처럼 TV로 사건 경과를 들어야 했다. 기자회견장에 급히 달려온 한 아이의 아버지가 강력히 항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사건 5일 만에 병원 관계자와 마주한 유가족은 진정한 사과와 아이들이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경과를 듣고 싶었다. 또 사망 이틀째 유가족을 무시하고 기자 회견을 먼저 진행한 것에 대한 해명도 듣고 싶었다. 하지만 만남의 자리에는 사건 당시 의료 담당자도, 기자 회견을 진행한 홍보실장도 없었다.

이대목동병원이 유가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무성의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이는 홍보실장이었다. 유가족은 요청에 못 이겨 뒤늦게 면담에 참석한 소아청소년과 교수와 홍보실장에게 먼저 기자 회견을 한 데 대한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홍보실장은 답하지 않고 자리를 뜨려했다. 진료 중에 나왔다는 것이다.

결국 병원과 유가족 사이에 대화다운 대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왜 병원은 당연히 해야 할 사과를 하지 않을까?

밝혀지는 이대목동병원의 과실

현재 가장 유력한 아이들의 사망 원인은 병원 내 감염이다.

3명의 신생아가 사망 전에 실시한 혈액 검사에서 미숙아 등에게 심각한 위협이 되는 항생제 내성균이 발견됐다. 또 유전자 검사를 통해 3명 모두 동일한 균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4명의 신생아가 동일한 주사제를 맞았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 주사제는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간호사가 조제한 것이다. 신생아 중환자실 의료진의 부실한 감염 관리 증언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의료진이 오염시킨 주사제가 유력한 사망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감염내과 전문의 등 관련 전문가들도 오염된 주사제를 유력한 사망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실 이대목동병원 의료진도 감염을 의심했다.

이대목동병원은 20일 대화와 함께 유가족에게 단 몇 줄의 무성의한 경과 기록을 제공했다. 그 속에는 사고 직전 광범위 항생제를 투여한 내용이 있다. 심폐 정지에 앞서 신생아의 상태가 나빠지자 감염을 의심했던 것이다. 항생제 내성균을 확인한 혈액 검사도 감염을 의심했기 때문에 이뤄진 조치다.

이렇게 아이들 사망에서 병원의 책임이 크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데도 저토록 이대목동병원이 유가족을 홀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듣고 싶은 것은 확정된 사실이 아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 누구나 알고 있는 속담이다. 물론 문자 그대로 ‘말 한마디’가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말은 힘을 가지고 있다. 상대방에 공감하고 진심을 담은 말은 문제를 해결하거나 국면을 전환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한 유가족은 TV 인터뷰에서 유가족을 ‘을’이라고 지칭했다. 아이를 병원 중환자실에서 의료진의 손에 맡겼을 때도, 아이를 잃은 지금도 ‘을’이라고 했다. 전 국민의 관심 속에 사고의 원인이 밝혀지길 기다릴 수밖에 없는, 다른 사람들의 호의와 노력에 기댈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것이다.

이런 유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사망 원인에 대한 냉철한 분석도, 사망의 책임을 회피하는 발언도 아닐 것이다. 유가족의 아픔에 공감하고, 아픔을 어루만질 수 있는 말이다. 원인은 알지 못하더라도 그날 중환자실에서 아이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하지만 이런 이들에게 이대목동병원은 계속 ‘갑’의 오만함만 보이고 있다.

사실 이대목동병원의 대처가 낯설지 않다. 지금도 “의료 사고” 등의 키워드로 검색을 하면 과거 병원이 의료 사고에서 얼마나 실망스럽게 대응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병원과 의사는 ‘갑’이고 환자는 ‘을’인 현실은 언제쯤 개선될까? ‘갑’으로만 군림하던 이대목동병원의 오만이 낳은 희생양이 바로 이번에 사망한 아이들이었다고 하면 과장일까?

    도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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