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가 두려운 의사들, 세상이 변했다

[인터뷰] 마이클 스나이더 교수, 스탠포드대 유전체 및 정밀의료 센터장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지난 11일 1차 회의를 열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문재인 정부는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중심으로 4차 산업 혁명에 대응한 정책 수립과 추진을 계획하고 있다.

의료 분야에서는 맞춤형 정밀 의료 확산, 지능형 의료 로봇 상용화, 인공지능(AI) 기반 신약 개발 혁신 등이 추진될 계획이다. 빅 데이터, 인공지능 등 4차 산업 혁명의 핵심 기술을 의료 영역에도 적용해 새로운 의료 기술과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4차 산업 혁명의 의미와 실체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데이터의 증가, 인공지능의 발달에서 예상되는 변화가 어떤 것인지, 그 변화가 혁명이라고 할 만큼 큰 변화인지 등에 대한 의심이다. 이런 의심은 과학기술과 사회 변화에 대응한 정책의 내용과 방향에 대한 우려로 이어기지도 한다.

이런 가운데 지난 9월 마이클 스나이더 스탠포드 대학교 교수가 한국을 방문했다. 스나이더 교수는 스탠포드 대학교 유전학부 학과장으로 유전체 및 정밀 의료 센터 센터장을 맡고 있다. 또 최근에는 국내에서 스나이더 교수가 유전체학과 정밀 의료에 대해 설명한 책 ‘게놈에 담긴 미래(Genomics and Personalized Medicine, 이상혁 옮김, 생각의힘 펴냄)’가 출간되기도 했다.

최근 정밀 의료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스나이더 교수는 인터뷰를 통해 4차 산업 혁명에 대한 기대나 논란과는 별개로 의학이 엄청난 변화 앞에 있으며, 이런 변화를 알고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스나이더 교수는 의료인이 반드시 변화의 방향과 내용을 알아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정밀 의학, 유전체 정보만으로는 불충분

스나이더 교수가 강조하는 의학에서의 큰 변화, 정밀 의학이 무엇인지부터 확인해봤다.

“DNA 염기 서열을 분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혈액 속은 수많은 분자를 측정할 수 있게 됐다. 또 여러 가지 신체와 환경 정보를 측정할 수 있게 됐다. 미래 의학은 더 종합적이고 더 많은 정보에 기반을 두게 될 것이다. 염기 서열 분석을 통해 질병을 예측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질병이 오기 직전에 혹은 질병이 발현할 때의 변화들을 예측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됐다. 이를 바탕으로 질병이 예상되는 환자를 돕거나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정밀 의학이 종합적이고 다양한 정보에 기반을 두고 질병을 예측하거나 치료한다는 설명이다. 그 중심에는 DNA 염기 서열 분석이 있다. 하지만 스나이더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유전체 정보만으로 정밀 의학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밀 의학에서 DNA 정보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먹는 음식이나 운동과 같은 환경 요인 또한 중요하다. DNA는 후성 유전자에 의해 발현 정도가 바뀐다. 후성 유전자는 노화, 운동, 영양 등 환경에 대응해서 변화가 일어난다. 결국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선천적 요인인 유전체 정보만이 아니라 후천적 요인인 개인별 환경 정보도 정밀 의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는 의학에서 널리 알려진 사실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환경 정보가 인간 외부 환경에 국한 된 것은 아니었다.

“미생물 군집도 건강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우리와 같이 공생하고 있는 미생물을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몸은 약 10조 개 정도의 체세포로 되어 있다. 그런데 그보다 많은 약 100조 개의 미생물이 우리와 함께, 특히 장 속에 있다. 이 미생물은 먹는 음식을 분해하는 것과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질병의 상태에 따라 미생물 군집의 분포나 조성이 바뀐다. 미생물 군집을 분석해서 건강 상태를 예측한다든지 진단할 수 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DNA 정보뿐만 아니라 미생물 군집을 분석해서 건강 상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스나이더 교수는 면역력에 따라 발병 여부도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얼마나 강한 면역 기능을 가졌는지도 건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 예를 들어 암세포는 계속해서 생겨난다. 만약 좋은 면역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면역 시스템이 암세포를 잘 제거할 것이다. 하지만 면역 시스템이 약하거나 망가진 사람들은 암세포를 제거하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암에 걸린다.”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더라도 다양한 요인에 의해 개인별로 발병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스나이더 교수는 유전자와 질병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을 가진 것은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웨어러블 기기를 이용한 질병 예측

결국 정밀 의학을 위해서는 개인차를 확인하는 과정이 핵심이다. 여기서 웨어러블 기기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웨어러블 기기에서 얻을 수 있는 생리적인 데이터도 굉장히 중요하다. 데이터에서 질병이 생기기 전에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먼저 발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질병이 걸릴 것인지, 질병에 걸린 상태인지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당뇨병 전단계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인슐린에 저항성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들어오는 데이터가 다르다. 이런 데이터를 분석해서 질병에 관련한 예측을 할 수 있다.”

스나이더 교수는 과거 자신의 유전체 서열을 직접 분석해 대사 질환을 예측한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다. 지금은 생체 정보 수집을 위해 직접 다양한 웨어러블 기기를 착용하고 있었다. ‘핏빗’과 같은 일반인에게도 익숙한 스마트 밴드부터 스마트 반지, 혈당 측정기, 방사선 측정기까지 6~7종류의 웨어러블 기기를 보여주었다. 보안상의 이유로 보여주지 않은 가방과 주머니 속 기기까지 약 10종류의 기기를 항상 가지고 다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기기를 착용하고 데이터를 수집해 유용한 정보를 얻기까지 너무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지금은 연구 단계라서 많은 데이터를 모으는 것이다. 비용도 크다. 연구를 진행해 보면 전체 데이터가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2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비용이 엄청나게 싸질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의 유전체 정보를 해석하는데 미국 기준으로 850달러가 들어가는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2만5000달러가 들어갔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은 수많은 생체 데이터를 다 측정하고 있는데, 이는 연구 단계에서 어떤 것이 중요한지 모르기 때문이다. 100가지를 측정하던 것에서 연구를 통해 중요한 것이 10가지라고 확인되면, 그 10가지만 측정하면 되기 때문에 비용 또한 줄어들 것이다.

지금은 질병을 확인하기 위해 병원에서 의사에게 10여 가지 검사를 받는다면, 지금과 같은 기술의 발전 속도를 보면, 어쩌면 병원에 가지 않아도 간단한 기기를 이용해 집에서도 지금보다 더 많은 데이터와 정확한 정보로 질병에 대한 대처나 진단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지금까지 연구에서 의미있는 생체 정보를 찾아내는 성과도 있었다.

“심박동과 혈중 산소 농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벌써 찾았다. 스스로 병에 걸렸다는 것을 느끼기 전부터 심박동에 이상이 생기고, 혈중 산소 포화도가 떨어지는 일들이 생기는 것을 확인했다. 라임병에 걸렸던 적이 있는데, 당시에도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혈중 산소 포화도가 떨어지고 심박동이 굉장히 올라간 것을 확인했다. 이런 것들이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정밀 의학을 위한 외부 요인들

스나이더 교수는 인터뷰에 앞서 진행된 강연과 자신의 저서에서도 이 연구가 미국국립보건원(NIH)의 펀딩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NIH는 정밀 의료에 어떤 투자를 하고 있을까.

“NIH뿐만 아니라 여러 기부를 받아서 연구를 하고 있다. NIH가 제일 많은 돈을 쓰는 것은 암과 관련된 부분이다. 암은 조금 더 유전체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그래서 굉장히 많은 돈을 암 치료에 쓰고 있다. 다만 궁극적으로 모든 질병은 다 정밀 의학의 타깃이기 때문에 그쪽으로도 연구가 늘어날 것이다.”

국가에서 연구비가 지원되는 것이라면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밀 의료의 경우 개인의 유전체와 질병 정보를 다루기 때문에 정보 보호의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스나이더 교수는 개인 정보 침해 위험을 고려하더라도 이익이 더 많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프라이버시 이슈, 민감한 정보가 나가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정보가 나간다 하더라도 그 정보를 아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나 한국과 같이 단일 보험 체제에서는 나라에서 지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미국은 보험 회사를 자꾸 바꾼다. 한쪽 보험에서 큰 비용이 드는 유전체 정보 분석을 했는데 다른 회사로 가버리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안하려고 한다. 어차피 법으로 정보에 의한 차별은 못하게 되어 있다. 정보를 알았을 때 얻는 이득이 더 많을 것이다.”

과연 스나이더 교수의 확신만큼 정밀 의료는 의료의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스나이더 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변화의 가능성과 긍정적 미래에 대해서 전달하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의학은 지금 혁명적인 상황이다. 유전체 정보보다 다른 측정값이 앞으로의 의료 행위를 엄청나게 바꿀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사람들에게 이런 세상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새로운 의료 혁명이 일어나고 있고 실생활에 들어오는 것은 금방이기 때문에 준비해야 한다.

특히 전문가, 의료인이 이 책을 많이 읽어보면 좋겠다. 왜냐하면 의료인들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나 저항감이 강하다. 하지만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은 자명하기 때문에 미리 알아야 한다. 지금까지의 감에 의한 의학보다는 이러한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가 드라이브하는 의학시스템으로 세상이 바뀌고 있다. 이것을 알아야 한다.”

(이 인터뷰는 유전체 검사 전문 업체 ‘디엔에이링크(DNA Link)’ 이종은 대표의 도움으로 진행됐다.)

    도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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