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입원 환자 2만 명, 보호 없이 거리로 나온다”

“정신건강복지법 전면 재개정이 필요합니다.”

22일 만난 서울대학교병원 정신의학과 권준수 교수는 목소리를 높였다. 5월 30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정신건강복지법을 다시 전면 재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현직 정신과 전문의 입에서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 한국 사회는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정신 병원 강제 입원 실태에 우려를 금치 못했다. 이 때문에 환자 동의 없이 이뤄지는 정신 병원 강제 입원은 환자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그야말로 파렴치한 범죄라는 따가운 시선이 정부를 향했다.

정부가 나서서 환자가 원치 않은 정신 병원 강제 입원 사태를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특히 인권 단체를 중심으로 강제 입원에 대한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자 보건복지부는 정신건강복지법을 전면 개정해 1년간의 준비 끝에 5월 30일부터 전격 시행했다.

개정 정신건강보건법의 핵심 취지는 ▲환자의 인권 존중 ▲까다로운 입원 절차 ▲쉬운 퇴원 절차 등이다. 환자의 인권을 위해 정신 병원에 입원시키려면 서로 다른 병원의 전문의 2명에게 같은 진단을 받아야 한다. 이를 통해 우선 3개월간 입원 할 수 있다.

또 3개월간의 입원 기간이 끝나면 병원 측이 입원 적격성 심사 위원회를 열어 연장 필요성을 평가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다른 병원 전문의의 진단이 추가되지 않으면 환자는 최대 2주간 입원 후 퇴원해야 한다. 규정을 어길 시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하지만 환자의 인권 향상과 존중이라는 취지 아래 정신건강복지법의 전면적인 개정이 이뤄졌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부작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강제 입원 기준의 모호함, 진단 의사의 부족 현상 등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개정된 법대로라면 수만 명의 환자들이 당장 며칠 안에 강제 퇴원해야 하는 것이다. 권준수 교수가 개정된 정신건강보건법을 다시 재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환자 보호를 위한 사회 시스템 전무하다”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의 대원칙에는 당연히 공감합니다. 하지만 이번에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을 뒷받침할 만한 사회 시스템이 전무합니다. 현실이 법을 따라주지 못하고 있어요. 당연히 부작용이 생길 텐데, 이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집니까?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현실을 외면한 법은 훨씬 더 큰 문제를 나을 거에요.”

현재 전국 정신 병원에 입원한 환자는 대략 7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그 가운데 많게는 2만 여 명의 환자들이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에 의해서 당장 병원에서 나와야 한다. 실제로 전국에 위치한 정신 병원에서는 2주 만에 환자들을 퇴원시키고 있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2만여 환자 가운데 30% 정도는 가족조차 없는 환자입니다. 또 30%는 정신적인 기능이 떨어지는 환자라 사회적으로 보호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들 가운데 가족이 없는 환자는 돌아갈 집이 필요하고, 정신 기능이 떨어지는 환자는 지역 사회 재활 시설에서 재활 치료를 꾸준히 받아야하지만 시설이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부작용, 졸속 행정의 당연한 결과

권준수 교수는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을 놓고 보건복지부와 국회를 질책했다.

“지금까지의 입원 위주 정책은 정부가 밀어붙였던 것입니다. 정신과 의사들이 한 것이 아니에요. 그런데 사회적으로 여론이 나빠지자 이제 와서 정책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책을 바꾸려면 국회와 정부가 그에 맞는 주변 환경이나 인프라 등을 만든 다음 정책을 바꾸든지 해야지요.”

“현재 법 개정에 맞는 인프라 구축은 하나도 이뤄진 것이 없는 상황이에요 더욱이 법을 개정하기 전 흔하게 있어야 할 공청회 한 번 열린 적이 없었습니다. 19대 국회에서 법안을 졸속으로 통과시켰기 때문입니다.”

19대 국회에서 당시 이명수 의원과 최동익 의원 등이 발의했던 정신건강보건법 개정안은 민생 법안에 포함시켜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이를 두고 국회 보건복지위 내부에서 남인순 의원 등이 정신건강보건법 개정안에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이렇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졸속으로 통과된 개정 법안이다 보니 법 자체가 불명확하다는 것도 권준수 교수가 생각하는 문제점이다.

“입원 가이드라인은 모법과 충돌합니다. 의료진, 환자, 보호자 모두 당황해하고 있습니다. 불명확한 법 때문에 보건복지부는 수시로 보충 공문을 내려 보내고 있어요. 이 모든 것이 법안이 졸속으로 만들어지고 통과됐기 때문입니다.”

특히 의사 한 명의 잘못된 판단에 따른 환자 입원의 위험성을 줄이고자 또 다른 병원 의사의 소견을 받도록 한 것을 놓고서 권준수 교수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보건복지부를 비난했다.

“2차 진단 의사로 하여금 환자의 입원 2주 내로 법적 판단을 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법적으로 판단해야 할 입원 적합성 심사 위원회는 한 달에 한 번 서류 심사로만 이뤄지고 있어 환자의 인권을 보호한다기에는 어폐가 있습니다. 다른 병원의 2차 진단 전문의 또한 말처럼 현실적으로 환자 진료가 가능하냐는 문제도 존재합니다.”

전면 재개정이 ‘최선’

현재 병원에서 강제 퇴원해야 될 환자들은 수만 명에 이르고 있지만 이들을 수용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대안이나 방안은 전무한 상태다.

이 때문에 당장 어떠한 문제가 발생한다고 하면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권준수 교수는 졸속 행정으로 인한 환자들의 피해를 최대한 빨리 막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정신건강복지법 전면 재개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를 비롯해 정신과학회에서는 정신건강복지법의 재개정을 위해 여러 각도에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양승조 보건복지위원장과 함께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하면서 많은 부분을 설명했고 위원장도 공감했습니다.”

하지만 정신건강복지법을 재개정하려면 국회 발의를 통해 다시 법안이 통과해야 한다. 절차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다.

“걱정입니다. 재개정을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문제가 생기더라도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당장 문제가 생기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신과 학회에서도 정신건강복지법 재개정을 위해 이슈화를 시키는 등 모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양승조 보건복지위원장도 신속한 법 재개정에 공감을 한 만큼 최소한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겠지만 반드시 재개정을 이뤄낼 것입니다.”

    송영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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