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월 만에 바뀐 백남기 사망 진단서, 위기의 서울대병원

서울대병원은 지난해 9월 사망한 백남기 농민 사망 진단서의 사망 종류를 ‘병사’에서 ‘외인사’로 14일 수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조치는 그간 서울대병원의 주장을 뒤집는 것이다. 서울대병원 사망 진단서 수정을 두고 정치권과 사회단체가 ‘서울대병원이 진실 은폐를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며 비판하고 있어 백남기 사망 사건 논란이 재점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울대병원의 이번 조치는 사망 진단서를 직접 작성한 신경외과 전공의가 병원 의료윤리위원회(위원장 김연수 진료부원장)의 수정 권고를 받아들임에 따라 이루어졌다. 서울대병원은 “오랜 기간 상심이 컸을 유족에게 진심으로 깊은 위로의 말씀과 안타까운 마음을 전한다”며 유족과 국민 상대로 사과 메시지를 보냈다.

서울대병원 측에 따르면, 사망 진단서 수정은 올해 1월 유족 측에서 사망 진단서 수정 및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함에 따라 병원 차원에서 적극 개입한 결과다. 서울대병원 측은 신경외과에 소명을 요구했고, 신경외과에서 ‘사망 진단서는 대한의사협회 지침에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히면서 7일 의료윤리위원회를 개최해 수정 권고 방침을 결정했다는 것.

김연수 의료윤리위원회 위원장은 “외상 후 장기간 치료 중 사망한 환자의 경우 병사로 볼 것인지 외인사로 판단할 것인지에 대해 의학적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대한의사협회 사망 진단서 작성 지침을 따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며 “법률적인 책임이 작성자에게 있으므로 사망 진단서를 직접 작성한 전공의에게 수정을 권고했다”고 병원 입장을 밝혔다.

사망 진단서 수정, 하필 왜 지금인가

서울대병원은 그 동안 사회단체와 정치권 일각에서 제대로 된 사인을 밝혀 달라고 지속적으로 촉구했음에도 백남기 농민 사인을 ‘병사’로 고집했다.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사망한 사람의 사인이 병사라는 서울대병원 측의 주장을 국민 다수는 이해 못했다. 더욱이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와 함께 서울대병원 등이 얽힌 의료 농단 사태까지 밝혀지면서 국민의 반발이 거셌다. 하지만 서울대병원은 쇄도하는 사망 진단서 수정 요청에도 ‘내부 규정’을 내세우며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 기간이 무려 9개월이었다.

그러던 서울대병원이 15일 갑작스레 백남기 농민의 사망 진단서를 수정한 것. 사망 원인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바꾸고, 직접 사인을 심폐 정지에서 급성신부전으로 변경했다.

이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싸늘하다. 시점이 묘하다는 지적이다. 9개월 동안 요지부동이었던 서울대병원이 정권이 바뀌자마자 사망 진단서 사망 원인을 변경하자 사회단체와 정치권은 일제히 “정권의 눈치를 본 것”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특히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이 사망 진단서를 수정한 건 병원 설립 이래 처음이다.

하지만 서울대병원은 이같은 의혹에 “이미 6개월 전부터 논의했던 사안”이라고 부정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환자 치료에 최선을 다한 의사의 전문적 판단에 대해 병원 차원에서 개입할 수 있는 적절한 방안을 마련하고, 또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마련하고자 지난 6개월간 논의를 해왔다”며 “이달 7일 병원 자체적으로 의료윤리위원회를 개최해 사망 진단서를 작성한 전공의에게 수정을 권고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경찰, 1년 7개월 만에 공식 사과

서울대병원의 사망 진단서 수정과 동시에 경찰도 16일 백남기 농민과 유가족에게 공식 사과했다. 백남기 농민이 집회에서 쓰러진 지 1년 7개월 만이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16일 오후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 “2015년 민중 충궐기 집회 시위 과정에서 유명을 달리하신 고 백남기 농민과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와 함께 진심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이어서 그는 “경찰의 공권력은 어떤 경우에도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절제된 가운데 행사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으로 국민이 피해를 보는 일은 이제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 사회-정치권, 재수사 촉구 ‘한 목소리’

서울대병원의 해명과 경찰의 사과에도 관련자 처벌과 재수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서울대병원의 대국민 사과가 있던 15일 논평을 통해 “서울대병원이 진실을 은폐했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민주노총은 “사망 원인의 은폐 조작 주범인 서창적 병원장과 백선하 교수를 파면하고 처벌해야 한다”며 비난 수위를 높였다. 또 “청와대 개입에 대한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재수사를 촉구했다.

정치권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은 브리핑에서 “만시지탄이지만 고인의 억울함이 풀어진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면서도 “이제 사망 원인을 조작하고 은폐를 지시한 세력이 누구인진 철저한 진상 규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표창원 의원은 “경찰이 백남기 농민이 살아있을 때 사과했어야 했다”며 “백남기 농민 사망과 관련해 명확한 책임 소재를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의당 김유정 대변인도 “서울대병원이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며 “사인 왜곡 등 당시 상황에 대해 모든 것을 밝힐 책무가 있다. 책임자에 대한 엄격한 처벌과 국회 청문회서 거짓 증언한 관계자들에 대한 법적 책임도 요구된다”고 말했다.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과 서울대병원의 사망 진단서를 둘러싼 의혹에 대한 경찰의 재수사가 이루어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송영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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