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PHR 플랫폼 주도해야 할 ‘골든타임'”

– “IoT(사물인터넷)에 서비스 붙일 플랫폼 잡아라!”

– 4차 산업혁명 물결친 ‘메디카 2016’… ‘디지털화’ 바람에 비즈니스 구조도 변화

– IoT에 서비스 장착할 ‘PHR 플랫폼’ 주목… 달라진 분위기 “지금이 골든타임”

“Hello My name is Pepper.” 지난 14일 독일 뒤셀도르프의 메세박람회장. 사람과 시선을 맞추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 의료기기 박람회인 ‘메디카(MEDICA)’에 등장했다. 일본의 거대 IT·통신기업인 소프트뱅크가 공급하는 클라우드 기반 인공지능 로봇 ‘페퍼(Pepper)’이다.

페퍼가 메디카에 등장한 이유가 있다. 소프트뱅크는 페퍼를 헬스케어 분야에서 상담로봇으로 쓸 계획이다. 소프트뱅크 로보틱스(robotics) 관계자는 “건강검진결과와 사물인터넷(IoT) 기기로 측정된 혈압, 혈당, 체성분 등 개인건강기록(PHR, Personal Health Record)을 페퍼가 인식해 누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건강 상담을 해주고, (연동된) 건강관리 서비스 앱(App)들을 통해 의료진과 환자를 잇는 가교 역할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페퍼는 한 마디로 헬스케어 서비스를 위한 플랫폼인 셈이다.

– ‘메디카 2016’ 공통 키워드는 ‘디지털화’

– 가정용의료기기·웨어러블기기 모두 이젠 ‘IoT’

올해 초 세계경제포럼이 열린 스위스 다보스에서 선포된 ‘4차 산업혁명’은 세밑을 앞두고 막을 올린 메디카에도 물결쳤다. 순수하게 제품에만 초점을 맞춘 제조업 기반 의료기기 산업은 이제 옛일이 됐다. 세계 140개국에서 메디카를 찾은 헬스케어 산업 관계자 13만명의 눈을 밝힌 공통된 키워드는 ‘디지털화(digitisation)’였다.

하드웨어 장비의 디지털화라는 세계적 흐름은 대부분의 메디카 전시관에서 확인됐다. 독일의 내시경 생산기업 ‘리차드 울프(Richard Wolf)’의 CEO인 위르겐 슈타인 벡은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전략적으로 개별 계측기가 아닌 전체 시스템을 판매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메디카를 통해 시장 안에서 새로운 접점을 찾고 있다”고 했다. 이 업체는 이번 박람회에서 새로운 이비인후과(ENT) 진단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선보였다.

전시기간 중 최대 관람객이 몰린 ICT융합관이 자리한 15번 홀에는 가정용의료기기와 웨어러블(wearable)기기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 근거리 통신의 발달에 따른 블루투스 기반의 사물인터넷 기술이 적용됐다.

핀란드 기업 스펙티코(Spektikor)는 날씨와 장소, 환경에 상관없이 응급환자의 심장 부위에 붙여 20초 이내에 가동시킨 뒤 심박수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웨어러블기기를 들고 나왔고, 네덜란드 기업인 노비오미니(Novio Mini)는 방광에 오줌이 얼마나 찼는지 알려주는 웨어러블 초음파와 함께 1분간 양손으로 잡고 있으면 혈류를 점검해 뇌졸중 위험 여부를 알려주는 뇌졸중 방지 스틱을 선보였다.

이 밖에 겨드랑이에 붙여 자녀의 체온을 원격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겔 타입의 체온계, 심전도와 심박동, 부정맥, 호흡수 등의 생체신호를 데이터로 자동 저장하는 피트니스 셔츠 등도 눈길을 모았다. 중국과 대만의 업체들은 혈당계와 혈압계, 호기량측정기, 체성분분석계 등 블루투스 기반의 가정용의료기기들로 라인업을 대폭 다양화했다.

  

– 넘치는 디지털 장비, 관건은 ‘서비스’

– 비즈니스 구조도 솔루션으로 “헤쳐 모여”

이처럼 디지털화된 하드웨어 장비들은 의료기기 산업의 체질뿐 아니라 비즈니스 구조마저 변화시키고 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정보통신기술(ICT)과 전통적인 제조업의 결합으로 4차 산업혁명이 촉발되면서 디지털화된 의료기기 제품에 ‘서비스’를 더할 수 있는 ‘솔루션’을 찾으려는 움직임들이 메디카가 열린 나흘간(14-17일) 분주했다.

체온계와 혈압계 등으로 유명한 독일의 생활·의료기기 브랜드 관계자는 “유럽 시장에서 우리 제품으로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려 한다”며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솔루션 업체를 찾고 있다”고 했다. 뉴질랜드의 의료기기 기업 관계자는 “환자 모니터링을 위한 제품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솔루션 공급자를 찾고 있다”고 했고, 이스라엘의 혈당계 제조사 관계자 역시 “서비스를 붙일 수 있는 플랫폼을 찾고 있다”고 했다.

세계적으로 상용화돼 쏟아져 나오고 있는 가정용 의료기기와 웨어러블기기 등 사물인터넷 기기들은 스마트폰과 연동돼 사용자에게 서비스까지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기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를 잘 처리할 수 있는 기술과 소프트웨어 인프라가 요구된다. 메디카에서 관심을 모은 소프트뱅크의 페퍼 역시 기기 자체를 팔기보다 매월 서비스 이용요금을 물리고, 페퍼에 장착된 태블릿과 연동되는 앱을 파는 플랫폼 비즈니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즉 사물인터넷 기술로 수집되는 라이프로그와 진료기록, 유전체데이터 등 개인건강기록(PHR)을 개인이 스스로 안전하게 저장해 통합 관리하고,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에게는 이러한 PHR을 기반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는 API(데이터와 서비스 연계, 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를 제공하는 플랫폼에 대한 수요가 글로벌 시장에서 분출되고 있는 것이다.

– 서비스 기반 솔루션 ‘PHR 플랫폼’ 꿈틀

– 시험관 밖으로 나온 지금이 ‘골든타임’

생애주기별로 개인에게 꼭 맞는 건강관리서비스의 기술적 성숙도를 높이려면 다양한 제조사에서 만들어진 IoT 기기로 수집된 이종 데이터를 한데 모으는 것은 물론, 애플 헬스킷, 구글 핏, 삼성 S-헬스 등 서로 다른 글로벌 디지털헬스 플랫폼의 데이터까지 연동시킬 수 있는 PHR 플랫폼이 뒷받침돼야 한다. 또한 각 병원에 흩어져 있는 진료기록에 환자가 접근해 PHR 플랫폼에 저장할 수 있어야 하고, 엄격한 정보보안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

하지만 메디카 전시기업 5천여곳 가운데 이러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PHR 플랫폼 기업은 아직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한 가지 제품에 단일 서비스를 붙여서 내놓는 정도. 네덜란드계 글로벌 기업인 필립스와 미국의 엠앱 등 일부가 IoT기기와 연결해 데이터를 관리하고 빅데이터 분석 모듈을 제공하는 플랫폼을 출품했지만, PHR의 일부인 라이프로그를 모아서 보여주는 데 그치고 있다.

이번 메디카에서 모든 PHR을 모아 분석해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서비스를 제시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른 기업으로는 국내 기업인 라이프시맨틱스가 유일했다. 라이프시맨틱스는 PHR 플랫폼인 ‘라이프레코드’와 이를 기반으로 개발한 ‘라이프매니저(중증질환자 에프터케어)’, ‘숨튼(호흡재활)’, ‘에필키즈(영유아 감염관리)’ 등 맞춤형 건강관리서비스를 동시에 선보였다.

라이프레코드는 60여종의 IoT 기기는 물론, 애플, 구글, 삼성 등 글로벌 디지털헬스 플랫폼과 연동되며, 국내에서는 서울아산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서울시 보라매병원의 병원정보시스템(HIS)과 연동 가능하다. 진료정보교류 국제표준적합성 테스트인 ‘IHE Connectathon’도 통과했다.

라이프시맨틱스에 따르면 현재 공공데이터와 라이프로그를 기반으로 기계학습(AI)을 통해 질환을 분석, 예측하는 시스템을 탑재하기 위한 라이프레코드의 고도화가 진행 중이며, 국내에서 유일하게 정보보호 경영시스템(ISO 27001), 의료정보 경영시스템(ISO 27799), 클라우드 보안 분야 국제표준(ISO 27071) 등 ISO 인증을 지난 6월에 모두 획득했다.

라이프시맨틱스 송승재 대표이사는 “최근 들어 고객 요구에 부합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쉽게 제공할 수 있도록 데이터 처리 기술과 소프트웨어 인프라 구축에 힘쓰는 글로벌 기업들이 생겨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며 “이들 기업이 빠르게 변화하고 진화하는 이 분야의 핵심 기업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듯 PHR 플랫폼 비즈니스에 대한 해외 기업들의 관심도 점점 커지고 있다. 라이프시맨틱스 부스를 방문한 독일의 혈당측정기 브랜드 관계자는 ‘PHR 사업의 해외진출 계획’을 물었고, 독일의 EHR 솔루션 업체 관계자는 “국내 고객 병원에게 이러한 비즈니스를 확산시킬 파트너를 찾고 있다”며 관심을 나타냈다. 라이프시맨틱스 커뮤니케이션팀 김영지 매니저는 “PHR 솔루션과 관련해 데이터 연동 시 개인정보보호, 표준의 문제에 대해 묻는 유럽인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헬스IT 분야 역시 ‘무어의 법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 급성장이 예상되는 만큼 국내 전문가들은 지금이야말로 우리나라가 PHR 플랫폼을 주도해야 할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한다. PHR 게이트웨이 업체인 H3시스템의 김민준 대표이사는 “메디카를 10년 넘게 방문했지만, 올해는 예년과 많이 다르다”며 “나라마다 서로 다른 규제의 문제가 있으나, 시험관에 있던 PHR 플랫폼이 하나둘씩 메디카에 등장하고 있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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