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칼럼] “두부는 우선 콩이 좋아야 한다”

딱딱한 콩이 산산이 부서져 피워낸 하얀 꽃

따뜻한 김이 나는 두부를

부서질까 조심스레 들고 와서

기름에 부쳐 먹고 된장찌개에도 넣고

으깨어 아기 입에도 넣어주었지

두부를 좋아하는 사람들 맘씨처럼

정에 약해 곧잘 부서져 내리기도 하고

뜨거운 된장 속에서 가슴 부푸는

그런, 두부를 나도 모르게 잊고 살다니!

-<나희덕의 ‘두부’에서>

두부(豆腐, Tofu, Bean Curd)는 콩의 아들이다. 아니다. 콩이 ‘산산이 부서져 피워낸 꽃’이다. 콩은 딱딱하다. 두부는 부드럽다. 콩은 혼자 콩콩 튄다. 두부는 잘 스며든다. 아이들은 쌀밥에 콩이 섞이면, 기어이 콩만 콕 집어내고 먹는다. 두부는 으깨어 주면 갓난아기도 냠냠 입맛 다시며 먹는다. 콩을 많이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다. 두부는 많이 먹어도 속이 강같이 평안하다. 콩의 소화율이 65%라면, 두부는 95%나 된다. 두부살엔 두부다이어트가 으뜸인 것이다.

옛날 징역살이 땐 콩밥을 많이 먹었다. 하지만 교도소 밖에 나오자마자 먹는 건 어김없이 두부였다. 왜 늙은 어머니는 감옥을 나서는 자식의 입에 만사 제쳐두고 두부부터 먹였을까. 옥살이에 굶주린 자식이 허겁지겁 기름진 음식을 탐하다가 급체라도 할까 그랬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자칫 벼르던 음식을 아귀아귀 먹다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두부는 단백질 밭이다. 배가 부르면서도 체하지 않는다.

두부는 눈처럼 하얗다. 검은 과거는 지우고 백지에서 ‘처음처럼’ 다시 출발하라는 간절한 바람도 있었을 것이다. ‘두부가 다시 콩으로 돌아갈 수 없듯이,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는 뜻’(박완서 수필 ‘두부’)일 수도 있다. 그 무엇이든 두부는 부담이 없다. 은근슬쩍 우아하게 젖어든다. 쿨하고 스마트하다.

두부 만드는 것은 간단하다. 우선 불린 콩을 맷돌에 간 뒤 건더기를 걸러낸다. 이 때 걸러낸 건더기가 바로 섬유질의 콩비지(되비지)이다. 그 다음 그 걸러진 콩물을 무쇠 솥에 넣어 나무주걱으로 저어가며 끓인다. 이때 간수를 넣고 저으면 콩물의 단백질이 몽글몽글 응어리지기 시작한다. 이 응어리진 상태에서 웃물과 함께 떠먹는 게 순두부다. 바로 ‘물(水)두부’인 것이다. ‘물두부→수(水)두부→순두부’가 됐다는 설이다. ‘순한 두부’라서 순두부라는 설도 있다. 이유야 어쨌든 ‘눌러서 굳히지 않은(Unpressed)’ 두부가 순두부이다.

응어리진 콩물을 틀 상자에 넣고, 그 위에 나무도마나 무거운 물건으로 지그시 눌러 굳히면 두부가 된다. 연두부는 물을 어느 정도 남긴 채 굳힌 것이다. 두부와 순두부의 중간 형태라고 보면 된다. ‘콩에서 나는 젖’ 두유도 있다. 두유는 걸러진 콩물에 칼슘 비타민 영양제 등을 섞어 만든다. 콩비지는 신김치나 김칫국을 넣어야 맛이 좋다.

두부는 대두(大豆)로 만든다. 대두는 콩이고, 소두(小豆)는 팥이다. 대맥(大麥)은 보리이고 소맥(小麥)이 밀인 것과 비슷하다. 두부는 우선 콩이 좋아야 한다. 경기파주 장단콩이 유명하지만 구하기가 쉽지 않다. 강원이나 경기북부의 산간지대 콩이 맛있다. 두만강(豆滿江)은 ‘콩이 가득한 강’이란 뜻이다. 콩의 원래 고향이 바로 만주일대이다. 요즘 국산 콩은 금값이다. 국산 콩만으로는 수지 맞추기가 쉽지 않다.

경기 광주 남한산성의 오복순두부는 3대 100년을 이어온 집으로 이름났다. 모든 것이 옛날식 손두부, 촌두부이다. 콩물을 무쇠 솥에 안치고 장작불로 끓인다. 간수도 염전에서 길어온 것만을 쓴다. 순두부는 한 모씩 면포에 싸서 저절로 굳게 한다. 꽉 눌러 숨을 죽이지 않는다. 순두부가 각이 지지 않아 주먹처럼 보인다. ‘주먹두부’라고 불리는 이유다.

강릉엔 초당순두부가 있다. 초당(草堂)은 허균의 아버지 허엽(許曄·1517~1580)의 호다. 허엽이 강릉부사시절 아이디어를 내 ‘동해바닷물을 간수로 써서 만든 순두부’가 초당순두부다. 천일염은 동해에선 나지 않아 귀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간수 염도가 낮아 맛이 슴슴하고 부드럽다.

허엽 일가가 살았던 초당동엔 수십 개의 순두부집이 있다. 토담순두부, 초당할머니순두부, 고분옥할머니순두부가 발길이 붐빈다. 속초에도 학사평순두부촌이 있다. 역시 바닷물을 간수로 쓴다. 김영애할머니순두부가 붐빈다. 초당류인 인제용대리의 백담순두부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북한에선 간수로 두부 굳히는 것을 ‘숨을 잡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순두부가 아니라 ‘숨두부’이다. 대전 평양숨두부가 대표적이다.

서울엔 광화문 신문로파출소 뒷골목 나무가 있는 집, 구기터널부근의 옛날민속집, 자하문터널부근의 원조할머니두부, 인사동 오수흑두부, 서소문동 정원순두부, 둔촌역 부근의 고모네원조콩탕, 예술의 전당 부근의 백년옥, 공릉동북부지원 옆 제일콩집이 있다.

중국엔 사천요리 마파두부가 유명하다. 마파(麻婆)란 곰보할머니란 뜻이다. 청나라 때 진씨부인인 곰보할머니가 만들어 널리 퍼진 두부요리이다. 매우면서도 부드럽고, 얼얼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요즘 두부는 공장두부가 대부분이다. 네모반듯하고 우유처럼 하얗다. 하지만 공장두부는 대부분 간수 대신 응고제(염화마그네슘)를 쓴다. 거품을 가라앉히는 소포제(消泡劑)나 단단하게 하는 경화제(硬化劑)도 쓴다. 손두부는 촌스럽다. 모양도 들쭉날쭉, 색도 공장두부만큼 하얗지 않다. 하지만 구수하고 깊은 맛이 난다. 입안에서 스르르 녹는다.

두부는 튀지 않는다. 다른 식품들과 두루두루 잘 어울린다. 김치, 청국장, 된장 등과 섞여 오묘한 맛을 낸다. 유부는 딱딱하게 굳힌 두부를 얇게 저며 기름에 튀긴 것이다. 얼린 두부, 삭힌 두부가 있는가 하면, 두부를 된장에 박아두었다가 먹는 두부장도 있다.

“땡그랑! 땡그랑! 두부~사려!” 이른 새벽 잠결에 들리는 두부장사 아저씨의 종소리가 아련하다. 요즘은 듣기도 어렵지만, 어쩌다 듣는 그 종소리도 녹음된 것이 많다. 엿장수 가위소리, 한겨울밤 “찹쌀떡 사려!”소리도 마찬가지이다. 하나같이 ‘퍽퍽한 공장두부 먹는 맛’이다. 그리운 것들은 그렇게 하나 둘 사라져간다.

손수 맷돌에 갈아서 만든

어머니의 초당순두부

산과 들의 강물소리 졸졸 흐르고

푸르른 자연이 소반 위에서

싱그러운 노래를 부른다

우주의 껍질을 맨 손톱으로 벗겨내어

하얀 속살의 순두부로 환생시키는

오묘한 어머니의 땀

어디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사랑의 음성이 들리나요?

고향에 나의 어머니!

-<홍미영의 ‘초당두부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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