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멍 때린다, 고로 뇌는 멍 때리지 못 한다”

 

정은지의 만약에(11)

잠시 눈을 감아봅시다. 어떤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할 것입니다. 최근 끝내지 못했던 일이나, 앞으로의 걱정들, 억울했던 일들, 지나간 과거들, 지금 하고 싶거나 먹고 싶은 것들, 주변사람들의 얼굴, 좀 전에 들었던 노래, 지금 읽고 있는 이 기사 등… 수많은 것들이 스쳐지나갈 것입니다. 자, 이제 그런 생각들을 멈추도록 애써볼까요? 1초 2초 3초..,1분…, 그런데 여전히 잡생각들이 떠나질 않죠? 생각을 그만두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멍 때리는 뇌’ 상태로 돌입하기가 어렵다는 말입니다.

최근 뇌에 휴식을 주자는 차원에서 모든 생각을 끊고 가만히 있기, 일명 ‘멍 때리기’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얽히고설킨 복잡한 주변 것들로 부터 벗어나, 의도적으로라도 잠시 멍해져보자는 취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호응하는 듯합니다. ‘멍 때리다’의 사전적 의미는 정신이 나간 것처럼 아무 반응이 없는 상태, 즉 넋을 잃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멍 때리기 대회 등에서 의도하듯 ‘아무 생각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면, 과학적으로 뇌는 멍 때리기가 불가합니다. 뇌는 아무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뭔가 한 가지에 집중하고 있을 때를 빼면 뇌는 우리의 마음과는 달리 항상 ‘잡생각’으로 가득합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신경심리학과 바바라 사하키언 교수는 “인간의 뇌는 전체 몸 비율에서 2%를 차지하고 전체 에너지의 20-25%를 소모하고 있다”며 “생각에 관여하는 신경세포인 뉴런은 늘 뭔가를 하고 있으며, 뇌의 거의 모든 영역들이 보고 듣고, 말하고, 근육을 조정하는 것과 같은 각기 다른 신체 기능을 수행할 때 사용 된다”고 설명합니다. 우리가 ‘멍 때리자 멍 때리자’ 아무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마저 뇌의 움직임 중 하나로 작용하는데요. 에너지 사용을 빼더라도 아무 행위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마저도 개인에 따라 뇌의 10~20%가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뇌는 뇌신경학적으로 ‘멍 때릴 수 없다’

왜 인간은 어떤 생각으로부터 벗어나 멍~한 백지 상태가 될 수 없는 것일까요? 이를 알기 위해선 생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부터 살펴봐야겠지요. 인간이 고등동물로서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은 복잡한 대뇌피질(cerebral cortex)에 그 비밀이 담겨있습니다. 대뇌피질은 대뇌 표면을 구성하는 회백질로 이루어진 부분으로 생각, 기억, 웃음 등 인간의 감각의 전반적인 활동을 담당하죠. 인간의 대뇌피질에는 뉴런 수(neurons, 신경세포)가 다른 영장류보다 월등히 많습니다. 요즘 인공지능 AI와 인간의 뇌를 견주는 글에서 인간의 뇌에 존재하는 뉴런의 수 1000억 개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요. 이 수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과학자들조차도 1000억 개라는 수가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 알기 어렵다는 반응입니다.

브라질의 신경과학자 수잔나 허큘라노 호젤 박사가 이 말의 배경을 찾으려 수많은 연구논문을 뒤졌으나 인간 뉴런의 수가 1000억 개라고 확실할만한 단서는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고 하네요. 다만 수잔나 박사팀이 연구한 결과, 평균 뉴런 수 860억 개 정도 되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정설처럼 여겨져 온 1000억 개보다 140억 개가 부족한 수이긴 하지만 이마저도 영장류에서 가장 독보적인 것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그리고 각각의 뉴런은 시냅스(synapses)로 서로 연결됩니다. 바로 ‘생각’을 주관하는 부분들이지요. 사실 뇌의 주된 기능은 뉴런 수보다는 이들 뉴런 사이의 이 시냅스 연결 개수에 좌우된다고 합니다. 3살 아이의 뇌에는 1000조 개, 성인의 경우 5000조 개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시냅스의 연결은 곧 뇌의 정보처리장치로써, 경험과 배움을 통해 뇌에 입력된 것이 많아질수록 시냅스도 늘어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한 시냅스의 작동은 멈추지 않습니다. 시냅스들은 끊임없이 신호를 주고받으며 기억 인지 판단 결정 등 생각과 관련한 많은 것을 떠오르게 합니다.

생각을 멈추는 일은 왜 불가능한가

미국 과학잡지 사이언티픽아메리칸의 뇌 과학 섹션 ‘뇌에게 물어봐(Ask the Brains)’에서 존스 홉스킨 대학교 신경인지과학 바리 고든 교수는 인간이 생각을 멈추는 것, 즉 완전히 백지가 되게 하는 것은 왜 불가능한가에 대해, “위험과 기회 속에서 생존을 위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뇌의 작동”이라고 말합니다. 베리 고든 박사는 “예부터 먹이를 찾고, 도구를 이용하고, 요리를 하는 등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을 해왔다”며 “이러한 지속적 생각이 인간을 고등 영장류로 진화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현대 사회에서는 언제나 주위의 수많은 정보 속에서 위험과 기회에 휘둘리고 있다”며 “이 가운데 자신에 최적화된 정보를 끌어내기 위해 무의식 가운데서도 뇌는 계속 움직이고, 이는 곧 엔진을 켜놓으면 어떤 정보를 검색하지 않아도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는 엔진서버와도 같다”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뇌에서 아무 생각도 없는 상태는 사실상 없다는 말입니다.

이에 따라 뇌는 ‘생각이 없는 백지 상태’는 불가하지만 ‘잡생각이 덜한 상태’를 의도할 수 있습니다. 영국 리즈 베켓대학교 심리학과 스티브 테일러 박사는 잡생각이 덜 들게 하는 뇌의 상태는 바로 명상에 있을 때라고 말합니다. 그는 “침대에 누워서 잠을 자려 하는 순간이나 수술대에 누워 마취가 들기 전까지도 인간은 잡생각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며 “잡생각을 내려놓는 유일한 방법은 의도적으로 명상을 하거나 잠을 자는 것”이라고 조언합니다. 그래서 어떤 점에서 ‘멍 때리다’는 ‘짧은 명상’이라 이해하는 것이 맞습니다. 멍 때리기가 뇌 건강에 좋다는 연구결과는 명상이 뇌 건강에 좋다는 것에서 유래한 것이죠. 많은 연구를 통해 명상은 뇌 건강을 지키는 비결로 꼽혀져 왔습니다. 잡생각을 떨치는 명상은 뇌의 부피를 증가시키는 역할을 함으로써 뇌 건강을 지키는 비결로 추론되고 있습니다.

뇌가 진짜 ‘멍 때릴 때’는 따로 있다

생각이 정말 멍~한 상태의 ‘멍 때리다’의 의미와 가장 가까운, 즉 뇌가 자체적으로 멍을 때리는 순간도 물론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몸이 피곤할 때입니다. 우리가 피곤하거나 잠을 잘 못 잤을 때 깨어있어도 뇌의 일부는 졸게 되는데요. 이때 의도하지 않아도 ‘멍 때리기’ 현상을 겪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정말 피곤하면 생각이 멍해지고 실수를 저지르는 순간이 있죠. 이는 뇌가 깨어있어도 일부 뉴런들이 정말 졸고 있어서 멍 때리기 때문입니다.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키아라 키렐리 교수팀은 피곤한 사람들의 뇌의 전기파를 측정한 결과, 뇌가 전반적으로 깨어 있는데도 잠들어 있는 세포 영역들을 발견했습니다. 가령 연구에서 일부 뉴런 20개 정도를 관찰하면 그 중 2개는 잠든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이로 인해 어떤 한 부분에서 멍하게 되고 순간적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인데요. 운전 중 졸음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정신이 멍해지면서 순간적으로 졸게 되지요. 키아라 교수는 “뇌 뉴런의 일부가 졸고 있기 때문에 깨어있는 중에도 아주 미세한 졸림 현상을 경험할 수 있다”며 “운전 중 조는 것이나 피곤할 때 뭔가 구체적인 생각이 어려운 것도 뇌의 미세한 졸림 현상 때문이다”고 설명합니다. 육체가 피곤을 느끼기 전에 뇌는 이미 특정 활동을 멈추고 휴식해야 한다는 신호를 보내는데, 쉬지 않으면 일부 신경세포들은 어느 순간에 쉽게 잠들어버린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의도하지 않아도 멍 때려질 때입니다.

뇌 휴식을 위한다면 명상과 수면으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뇌의 뉴런 시냅스 작동에 따라, 당신의 ‘의도적인 멍 때리기’는 뇌에 제대로 휴식을 가져오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위에서 설명했듯 휴식이 필요하다는 신호로 뇌가 멍해지는 것이므로, 뇌에 휴식을 주기 위한 ‘멍 때리기’는 명상으로 잡생각을 조금이나마 더는 것이고, 밤에 잠을 잘 자는 것입니다. 뇌 과학에서 보면 복잡하고 잡다한 생각을 떨쳐낸다는 의미에서 ‘명상과 수면’ 이 두 가지가 뇌 휴식을 주는 ‘멍 때리기’에 가장 근접한 방법이지요. 특히 잠을 자는 동안 뇌의 대뇌피질은 감각모드에서 풀려나 회복모드로 진입하는데요. 잠을 잔다고 해서 뇌가 아무 일도 안하면서 멍 때린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수면은 낮 동안 부지런히 작동했던 뇌에 휴식을 주고 스스로 자정을 통해 회복 및 복구를 진행시킵니다. 특히 이 때 뇌는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고 기존 기억과 통합을 시도하지요. 최근 기억과 과거 기억 사이의 연결지점을 찾아 기억을 더욱 확고히 굳히는 과정이 계속됩니다. 복잡한 작동에서 벗어난다는 점에서 휴식기에 있으니, 뇌 휴식을 위해서라면 잠을 잘 자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겠죠?

“나는 멍 때린다. 고로, 뇌는 멍 때리지 않는다”

명상과 수면이 아닌, 우리가 의도하고자 하는 생활 속 ‘멍 때리기’는 역설적으로 ‘딴 생각하기’에 가깝습니다. 어떤 일을 하던 중 그 일과는 관련이 없는 뇌의 딴생각이나 잡생각을 자연스럽게 일어나도록 두는 것, 이것이 오히려 뇌 과학에서 의미하는 ‘멍 때리기’라는 것이지요. 단지 가만있는 것은 겉모습에서 멍 해 보이는 것이지, 뇌는 어떤 것이든 생각 중에 있으니까요. 그러니 뇌에 휴식을 주자는 의미에서 ‘아무 생각 없는 의도적인 멍 때리기’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자연스레 뇌가 다른 모드로 접어드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거나 거부할 필요가 없을 뿐, 가끔 아무 생각이나 떠오르는 대로 그냥 두는 일이 창의적 생각을 일으키는 멍 때리기일 수 있습니다. 자, 멍 때리기의 뇌 과학적 의미 정리됐나요? “나는 멍 때린다. 고로, 뇌는 멍 때리지 않는다.” 최근 멍 때리기 열풍을 향한 뇌의 역설인 셈입니다.

※이 글은 ‘멍 때리기’를 ‘아무 생각하지 않은 뇌의 상태’라 가정하고, 뇌 생각의 기전을 다룬 연구결과들을 바탕으로 구성됐습니다. 여러 과학학술지 사이언스 매거진, 사이언스아메리칸, 사이언스데일리, 더 가디언 등에 실린 ‘인간의 생각’에 관한 보도들을 참고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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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지 기자 jeje@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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