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 감동의 열망과 아름다움의 욕망 사이

이재길의 누드여행(27)

어윈 블루멘필드(Erwin Blumenfield)

사실주의와 즉물주의(대상의 본질에 대한 관찰과 정확한 묘사를 강조하는 예술운동) 같은 정통 사진예술이 강조되던 20세기 초, 유럽을 중심으로 사진예술의 문이 활짝 열렸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기를 소중히 여긴 당시 사진가들의 작품은 말 그대로 정직했다. 꾸밈없는 냉정한 묘사를 통해 예술사진의 가치는 빛나기 시작했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이른바 ‘스트레이트 사진’(Straight Photography)이 성행하던 당시, 자신만의 감성과 관점으로 사진을 새롭게 표현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사진가들의 독특한 관점이 사진에 묻어나면서 예술사진은 급속도로 발전했다. 즉, ‘기록’으로서의 사진이 ‘재현’과 ‘표현’의 장치로 진화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현대적이고 감성적인 작품을 선보이며 사진의 새로운 예술성을 부각시킨 작가가 등장하니, 바로 어윈 블루멘필드. 그는 여인의 누드를 통해 인간의 존재가치를 나타내려는 사진의 본질을 강조했다. 그에게 있어 여성의 누드는, 인간이 지닌 유일한 아름다움이었기 때문이다.

블루멘필드는 대상을 재해석해내는 능력이 남다르고 탁월했다. 그의 사진 속 여인의 벗은 몸은 언제나 빛과 그림자에 의해 새로운 형체로 재현된다. 그의 눈에 비친 ‘새로운 형체’란 인간 내면의 형체이고 인간의 존재성을 의미하는 것. 빛의 향연 속에서 여인은 한 폭의 그림처럼 등장하는데, 이는 그가 여성의 누드를 단순히 ‘사진 찍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온몸을 덮는 빛의 밝음과 어두움은 누드의 본질적 아름다움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다.

블루멘필드는 누드가 지니는 아름다움을 완벽하게 간파하고 있었다. ‘누드의 아름다움을 안다’는 것은 단지 머리로 이해한다는 말이 아니라, 가슴으로 그 본질을 경험했으며 또 내면으로 목격했음을 의미한다.

보라. 빛으로 전해지는 여체의 온기와 부드러운 살결을. 작은 몸짓으로도 마음을 울리는 전율이 느껴지며, 여체의 환상적인 굴곡은 한 장의 사진 위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여기에 흑과 백의 명암대비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누드의 신비로운 환상은 비로소 끓는점을 넘고 우리의 무한 상상력을 자극한다.[사진1]

그는 젖은 옷깃과 거울 등을 통해 여체에 깃든 감동을 에로티시즘의 절정체로 묘사해내기도 했다.[사진2] 몸에 완전히 달라붙은 천이 유두를 돋보이게 한다. 천에 가려진 여체는 맨몸을 넘어선다. 그것은, 에로티시즘의 극치다.

이렇듯 보는 이의 감각을 온통 자극하는 그의 날카로운 표현법에선 여체를 향한 호기심이 엿보인다.[사진3] 그가 느낀 황홀함이 사진 속에 고스란히 담겼던 것은 누드가 지닌 아름다움의 본질을 탐구하려는 그의 지극하고 지독한 정성 덕분이었으리라.

브루멘필드는 1940-50년대 패션사진가로 활동하며 『보그』, 『하퍼』, 『바자』와 같은 세계적인 패션 매거진을 통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패션사진가로 활동하면서 선보인 그의 유니크한 사진화법은 누드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뒤바꾸어놓았다. 그의 사진 속 여체의 향(香)은 오늘날에도 사람들의 가슴에 잔잔한 울림으로 남아있다. 잔잔하지만 호기심과 욕망이 어린, 바로 그런 시선으로 말이다.

※ 이재길의 누드여행 이전 시리즈 보기

(26) 보일 듯 말 듯… 재미와 함께 상상력 자극

(25) 창녀라고 다르랴… 여인들의 존귀한 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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