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신비… 극단적 왜곡으로 누드 재해석

이재길의 누드여행(24)

빌 브란트- 현실 속 가장 이상적인 실체, 누드

20세기 손꼽히는 사진가 빌 브란트(Bill Brandt·1904~1983)는 영국의 생활상을 담은 기록사진과 더불어 인체에 대한 독특한 해석력이 돋보이는 누드사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영국에서 태어난 그는 1929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사진가 만레이(Man Ray)의 스튜디오 조수로 일하면서 사진인생을 본격 시작한다. 1931년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넓혀갔다.

당초 영국인들의 소소한 삶의 모습을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담아내던 그의 예술경향은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크게 변한다.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영국 내무성의 수석 사진작가로 임명된 그는 전쟁 통에 피난길에 오른 사람들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사진으로 기록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다.

빌 브란트는 삶의 이야기를 사실적이고 솔직하게 담아내는 유일한 매체가 사진임을 알았다. 카메라 프레임에 투영되는 세상에 대한 성찰을 멈추지 않은 그는 영국인들의 삶 속에서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하고 바라보고자 했다. 그리고 이런 그의 예술적 고민은 이내 인간존재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바로, 여인의 벗은 몸이었다.

1961년 『누드의 원근법(Perspective of Nudes)』 작품집을 선보이면서 빌 브란트는 예술성이 절정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는다. 흑과 백의 뚜렷한 대비를 통해 묘한 분위기가 연출된 누드사진을 보라. 여기선 여체를 향한 강렬한 호기심이 엿보인다.

그는 초광각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를 피사체와 가깝게 놓았다. 이로 인해 생긴 놀라운 왜곡현상을 이용해 추상적으로 피사체를 변형함으로써 그는 인체의 새로운 형태를 담아냈다. 이런 그의 사진은 대중이 누드를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를 가져왔다. 대중은 누드에 깃든 무한한 아름다움을 느끼고 깨우쳤다.

빌 브란트의 누드사진에선 새로운 이상 세계를 추구하는 그만의 관점이 돋보인다. 평범하거나 고정된 시각에서 그는 탈출했다. 대신 무의식과 내면의 시각으로 현실 속 대상을 바라보았다. 그럼으로써 대상에 내재된 실체를 잡아낸다.

그의 누드사진은 단지 초현실주의적 범주를 넘어선다. 주관적 사진의 영역도 넘어선다. 신비롭고 환상적이며 내면의 진정성이 반영된 그의 작품은 현대사진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초광각렌즈로 왜곡된 여체의 이미지. 부드러운 누드의 곡선은 극단적 왜곡에 의해 더욱 강조되면서 여인의 누드가 지닌 세련되고 조형적인 아름다움이 비로소 독보적으로 묘사된다. 바로 이것이 그가 의도하는 지점이다.

이처럼 그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사진기법을 통해 대상의 고유한 특징을 잡아내려 했다. 『누드사진: 예술과 기법』의 저자이자 큐레이터인 파스칼 바텐스는 이렇게 말했다.

“사진기법은 언어와 같아요. 언어를 세련되게 연마할수록 우린 좀더 정교한 표현을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자체가 없다면, 언어는 공허해질 뿐이에요.”

파스칼의 말을 통해 빌 브란트의 사진기법에 깃든 예술적 통찰력과 철학성을 엿보게 된다. 왜곡을 통해 누드를 재해석해내는 사진기법은 바로 그만의 고유한 언어였고 그의 예술세계를 이끄는 절대적 요소였던 것이다. 누드사진 속에 드러나는 초현실주의적 표현들은 인간존재가 빚어내는 극한의 형체였고 아름다움이었다. 이것은 아방가르드 예술세계의 진수이기도 하다.

빌 브란트에게 여인의 누드는 신비로운 성적 대상인 동시에 예술이 추구하는 절대적이고 이상적인 존재다.

※ 이재길의 누드여행 이전 시리즈 보기

(23) 살아 움직이는 듯한 누드… 사랑도 현재 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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