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법’ 중상해 기준에 의료계 강력 반발

 

2년 전 이맘때였다. 9살 전예강양은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지 7시간 만에 쇼크로 숨졌다. 의료사고를 의심한 유족은 병원과 힘겨운 민사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예강이가 숨진 그해 10월,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가수 신해철씨도 의료사고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병원을 상대로 형사소송을 진행 중인 신씨의 유족은 곧 민사소송에 나설 예정이다. 그런데 이 두 사건에서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설자리가 없다. 병원이 거부하면 조정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인들의 이름을 따 ‘예강이법’ 또는 ‘신해철법’으로도 불리는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19대 국회 회기 만료로 폐기되기 직전에 건져져 국회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 개정안은 의료사고로 사망하거나 중상해를 입은 당사자나 유족이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 신청을 내면 병원 동의 없이도 조정이 시작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 법의 통과 여부를 놓고 의료소비자인 환자와 의료계의 온도차는 극명하다. 환자단체들은 다른 논점들은 차기 국회로 미루더라도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제도만은 꼭 이번 국회에 도입하라고 촉구하는 반면, 의료계에서는 법안을 폐기하지 않으면 주도한 국회의원들의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의료계가 반발하는 이유는 의료사고 피해자의 중상해 범위와 기준을 판단하기가 모호하다는 데 있다. 개정안에서는 이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대한의사협회는 “환자가 사망하면 판단 기준이 명확해 논란의 여지가 적지만, 중상해라면 환자측이 느끼는 피해 정도와 의학적 판단이 서로 다를 수 있어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고, 사회적 공론화 과정도 거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협은 오제세, 김정록 국회의원이 의료분쟁조정 자동개시를 골자로 한 개정안을 발의한 이래 여러 가지 개선방안을 제시해왔다. 현행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의료사고감정단과 감정부에 의료전문가 참여를 확대하고, 의료사고 브로커 개입 방지와 위헌 소지가 있는 손해배상 대불금 조항 삭제, 의료분쟁조정 남발을 막기 위한 장치들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의료계는 전문가 단체의 의견을 묵살한 국회가 사회적 이슈에 떠밀려 포퓰리즘식 입법을 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주현 의협 대변인은 “분쟁조정 자동개시는 원칙적으로 당사자 간 자율적 분쟁해결이라는 의료분쟁조정법의 취지를 몰각한 것”이라며 “합리적 개정방안을 제안한 의협의 의견을 배제한 결과는 국회와 정부가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의사 단체인 전국의사총연합도 “중상해의 경우 형사적인 기준과 의학적 기준이 다르며, 향후 후유증의 정도나 재활 기간 등을 고려하면 개인차가 심해 이를 구체화하고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억울한 사람을 구제해주기 위해서 만든 법이 졸속 입법으로 인해 환자와 보호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고, 의료기관을 괴롭히거나 돈을 요구할 목적으로 악용되는 식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의료분쟁 조정이 남발되면 방어 진료와 사망 가능성이 높거나 중상해로 판명될 가능성이 높은 환자를 기피하는 현상만 가중시켜 환자와 의사 사이의 신뢰는 깨지고, 전체 의료비는 늘어날 것”이라며 “개정안을 폐기하지 않으면 이를 주도한 국회의원에 대한 낙선 운동을 진행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환자단체와 소비자단체들은 사망이나 중상해로 범위를 제한해서라도 이번 국회에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제도를 꼭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피해자 구제제도 중에서 상대방이 거부하거나 14일 동안 응답하지 않는다고 해서 피해구제 신청을 각하하는 제도는 의료분쟁조정제도가 유일하기 때문에 이러한 독소조항을 반드시 걷어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환자단체연합회는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 신청을 하면 소액의 비용으로 3~4달의 짧은 기간 안에 의사와 검사, 의료전문 변호사 소비자권익위원으로 구성된 ‘5인 감정부’에서 의료사고 피해자에게 가장 어려운 문제인 의료과실 입증까지 해주고 있다”며 “이러면 민사소송에 따른 고액의 소송비용, 장기간의 소송기간, 과실 입증의 어려움이 한꺼번에 해결된다”고 강조했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따르면 조정신청자의 56.8%는 제도가 있어도 이용하질 못하고 있다. 의료분쟁조정법 27조 8항에서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거나 14일간 응답하지 않으면 조정신청이 각하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상대방 동의로 의료분쟁 조정절차가 개시되면 조정성립률은 90%가 넘는다.

배민철 기자 mcbae2000@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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