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유전자 교정 실험 승인… 암 치료 새 길 기대

 

인간의 초기배아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교정하는 실험이 영국에서 처음 승인되면서 항암 세포치료제 개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유전자 가위 기술이란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DNA의 돌연변이 부분을 잘라내고 대신 정상 DNA를 끼워 넣어 질병을 근원적으로 차단하는 기술을 뜻한다.

BBC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영국 인간생식배아관리국(HFEA)은 지난 1일 영국 프랜시스 크릭 연구소의 캐시 니아칸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이 신청한 유전자 교정 실험을 허가했다고 발표했다. 연구팀은 수정 후 7일 정도면 형성되는 초기단계 배아인 포배에서 OCT4 유전자 DNA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잘라낼 계획이다. 이 유전자는 쥐 실험을 통해 태아로 자라는 데 매우 중요한 것으로 밝혀졌다.

니아칸 박사는 “수정란 100개 중에서 포배 단계까지 이르는 것은 50개 미만이고, 이 중 25개만 자궁에 착상된다”면서 “이처럼 많은 수정란이 실패하는 이유를 규명하려면 포배 단계의 배아를 유전자 교정을 통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영국에서 연구 목적의 유전자 교정은 불법이 아니다. 다만 HFEA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유전자 교정된 배아를 자궁에 착상시켜서는 안 된다. ‘맞춤형 아기’가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랜시스 크릭 연구소의 폴 너스 소장은 “이번 연구가 시험관 아기 시술의 성공 요인에 대한 이해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인간과 동식물의 세포에서 특정 유전자의 염기서열 DNA를 절단해 유전체 교정을 가능하게 하는 인공 제한효소로, Cas9이라는 단백질과 가이드 RNA로 구성돼 있다. 1세대인 징크핑거 뉴클레이즈, 2세대 탈렌 유전자 가위보다 정교하며 효율적으로 원하는 유전자만 제거할 수 있어 3세대 유전자 가위 기술로 불린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줄기세포와 체세포에서 유전병의 원인이 되는 돌연변이를 교정하거나 항암 세포치료제를 개발하는 도구가 될 것으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원하는 유전자를 정확히 제거할 수 있는지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돼 왔는데, 이는 국내 연구진에 의해 입증했다.

미래창조과학부 소속 기초과학연구원의 유전체교정연구단은 지난해 서울대 의대, 툴젠과 공동연구를 통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인간세포 내에서 정확히 표적 유전자에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인간 유전체에서 단 한군데에만 작용하는 정교한 유전자가위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연구결과는 네이처 메소드지에 발표됐다.

김진수 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은“만약 크리스퍼 유전자가위가 의도하지 않은 DNA 염기서열을 자르게 되면 원하지 않는 돌연변이를 유발할 수 있다”며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안전성을 확인할 수 있어 유전자치료제, 세포치료제 개발에 큰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생명윤리 논란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인간유전학경계단체의 데이비드 킹 회장은 “유전자 변형 아기의 합법화로 이어질 수 있는 길을 향한 첫 걸음”이라고 경고했다. 바브라햄 연구소의 유전학교수 울프 레이크 박사는 “이런 실험은 주의 깊은 감시와 남용 차단을 위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전자 가위 기술의 응용과 확대는 국내외에서 과학기술을 혁신할 중요한 트렌드로 여겨지고 있다. 윤리적 문제가 결부된 만큼 사회적 합의에 이르는 과정도 중요하게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은 “향후 안정성 검증과 추가 규제 마련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인간 배아세포와 생식세포에 적용하는 문제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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