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만명 사망한 ‘스페인 독감’이 잊혀진 이유

 

기억은 오류투성이다. 사람은 현재 상황에 맞춰 기억을 재가공하는 과실을 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인기억이 아닌 ‘집단기억’은 어떨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집단기억 역시 개인의 사사로운 기억만큼이나 허구적인 부분이 많다.

인간의 역사는 재앙의 연속이었다. 지난 20세기만 해도 제1차·2차 세계대전이 벌어졌고, 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전염병 ‘스페인 독감’이 있었다. 이 독감은 국지적으로 발생한 게 아니라 전 세계로 확산돼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런데 이처럼 엄청난 참사를 세계대전처럼 익숙한 역사로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 이유는 뭘까.

과학자들에 따르면 집단기억은 개인기억 만큼이나 오류가 많다. 개인은 재앙의 단편적인 부분만 기억하는데, 이런 기억들이 모두 모여 큰 이야기를 형성하는 게 아니라 가장 주요한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재가공된다.

미국 워싱턴대학교 인류학자 제임스 워치 박사에 따르면 집단기억은 시작, 중간, 끝이라는 서사구조를 따른다. ‘기억과 인지(Memory & Cognition)저널’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기억이 바로 이런 이야기구조를 지닌다. ‘일본 진주만 공격’을 시작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거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로 마무리되는 서사다. 이를 제외한 다른 기억들은 대부분 망각된다.

반면 스페인 독감은 이런 서사구조가 성립하지 않는다. 짧은 시간 전 세계로 바이러스가 확산됐을 뿐 아니라 특정한 영웅도 등장하지 않는다. 집단기억은 이목을 끄는 인물이나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재가공돼야 하는데 주목할 만한 인물이나 사건이 없다는 것이다. 엄청난 사망자를 낳은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세계대전처럼 회자되지 않는 이유다.

‘기억연구(Memory Studies)저널’에 실린 논문도 이 같은 논점을 뒷받침한다. 정치적 위기에 놓인 벨기에가 이 연구의 배경이다. 2012년 벨기에 국왕이 국민 앞에서 연설을 했는데, 이 연설을 듣지 못한 사람들은 당시 정치상황을 다양하게 기억하고 있던 반면, 연설을 들은 사람들은 연설 중심의 내용만 기억했다. 국왕 연설이라는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집단기억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즉 집단기억이란 끊임없이 회자될 만한 굵직굵직한 사건과 화제의 인물이 있어야 한다. 또 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재편집되기 때문에 오류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게 연구팀의 주장이다.

문세영 기자 pomy80@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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