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찍히면 끝장… 사라지지 않는 ‘마녀 사냥’

이재태의 종 이야기(51)

프란체스코 종과 마녀 사냥

5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검은 사제들(2015)’이란 영화가 있다. 미국 영화 ‘엑소시스트’처럼, 구마사(퇴마사, exorcist)가 구마(驅魔, 퇴마, exorcism)의식을 시행하여 소녀에 깃든 귀신을 쫓아내는 내용이다. 영화는 수도승단이 쫓는 12 형상의 악령 중 하나가 서울의 한 소녀의 몸속에 숨어 들어가 있다는 설정이다. 한 외골수 신부와 어릴 때 동생을 잃은 상처를 안고 사는 신학생 부제가 힘든 구마의식을 거행하여 악령으로 부터 소녀를 구하는 내용이다.

영화사로부터 구마 의식의 클라이막스에서 사제가 종을 울리며 귀신을 쫓는 장엄한 장면에 잘 맞는 종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기독교 모티브의 묵직한 청동 종 몇 개를 소품담당 직원에게 챙겨주며 감독과 상의해보라고 했더니, 감독은 그 중에서 복음 전도자(evangelist)의 종을 선택하였다. 영화에서는 고대 수도승들이 영(靈)이 들린 동물이 있는 숲을 지날 때 쳤다고 전해지는 프란체스코의 종으로 소개되었다. 이 종에는 예수의 행적을 그린 신약 성서의 4 복음서를 기록한 마테, 마가, 누가, 요한 성인의 이름과 그들의 상징인 날개달린 사람, 성 마르코의 사자, 성 누가의 날개달린 황소와 독수리가 새겨져 있다. 펠리칸이 새겨진 전도자의 종도 있다. 펠리칸은 자기의 옆구리를 쪼아서 피가 흘러내리면 그 피로 새끼를 살린다고 알려져 있다. 성서에는 로마병사의 창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옆구리를 찔러서 피와 물이 솟구쳤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펠리칸은 십자가에 박혀 피를 흘려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의 상징으로 믿어진 것이다. 중세 이후에 제작된 많은 기독교 예술품에는 예수의 상징으로 펠리칸이 묘사되어있다. 

악령이 들어 사악한 목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초자연적 능력을 지녔다는 사람을 마법사(magician, 남자는 wizard)라 하고, 여자는 마녀(witch)라 한다. 이는 성직자들을 뜻하는 페르시아어 ‘마기(magi)’와 지혜, 철학을 뜻하는 ‘마그딤(maghdim)‘에서 유래하였다. 마녀에 관한 기록은 오래 전부터 있었고, 로마 시대의 시나 성서에도 마녀에 관하여 자세하게 기록되어있다. 오늘날에는 마술이 즐거움을 주는 놀이가 되었으나, 중세 이전 유럽에서는 마술사를 재앙을 불러오거나 때로는 재난을 피할 수 있는 능력도 지닌 두려운 사람으로 여겼다. 마술이 초자연적인 힘을 빌려 인간의 삶과 자연현상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마법은 사람들을 위협하며 세상을 지배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남성보다는 여성 마술사인 마녀가 훨씬 많았다. 유럽에서는 남자 1명에, 마녀는 1만 명 정도였다는 기록이 있다. 서양의 마녀는 대부분 뾰족한 턱에 매부리코를 가진 마귀할멈으로 등장한다. 기독교 사회의 마녀는 한밤중에 빗자루를 타고 마녀집회에 나가 악마와 성관계를 맺으며 악마와 계약하여 사회에 재앙을 가져온다고 믿었다.

초기 기독교의 성직자들은 마법은 속임수일 뿐이며, 신자는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마법을 물리칠 수 있다고 전파했다. 하느님만이 전능한 분이므로 마법을 행한다는 주장은 거짓 환상이며, 현실과 환상은 완전히 다르다고 설교했다. 그러나 교회의 의도와는 다르게 오히려 마법이 실제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늘어만 갔다. 마법을 쓰는 악마가 실제 세상에 존재하며, 하느님과 동등한 실력을 행사한다고 생각했다. 마법은 하느님의 상대자인 악마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문학과 영화에서는 악령이 들린 사람을 종교적 구마 의식으로 구원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가 지배하던 중세 유럽에는 악령이 들었다는 의심을 받는 것은 그 사람의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있는 재앙이었다. 악마적인 마법이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단이라고 여겨지면서 종교재판이 발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 유럽에는 악마 숭배에 대한 격렬한 반감이 팽배하였는데, 여기에는 “너희는 무당을 살려두지 말지니라(출애굽기 22장 18)”는 성경의 내용이 바탕이 되었다. 1300년을 경계로 마녀에 대한 교회의 태도가 갑자기 강경해졌다. 마녀에 대한 공개 재판과 이어진 사형집행으로 연결되어졌다. 이러한 불합리하고 비인도적인 조치를 비난하거나 반대한 사람들도 같이 화형에 처해졌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마녀사냥은 극적이고 교훈적이었으므로 빠르게 서유럽 전역과 아메리카 대륙으로 확산되었다. 절정은 1585년부터 약 50년 동안이었고, 13-18세기에 걸친 마녀사냥으로 최소 50만 명에서 최대 수백만 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마녀사냥은 여성 마술사만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었고, 점차 신학적 원죄가 있는 존재인 여성을 대상으로 하였다. 희생자 중 남자는 10-15% 정도였다. 초기에는 이교도를 박해하던 기구인 종교재판소가 전담하였고, 희생자의 수도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일반 법정이 마녀사냥을 담당하게 되어, 전 유럽으로 광풍이 몰아쳤다. 종교 및 정치 질서에서 벗어난 여성, 특히 과부들을 마녀로 지목하였고, 교황의 권위를 세우는 데에도 이용되었다. 영국군에 사로잡혔던 프랑스의 구국영웅 잔 다르크도 1431년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하였다.

마녀사냥의 정점에는 바티칸의 교황이 있었다. 1484년 인노켄티우스 8세는 전염병과 폭풍이 마녀의 짓이라는 교서를 내렸고, 모든 나라에 마녀 심문관을 임명하고 기소, 화형으로 처형을 할 수 있다는 칙령을 내렸다. 후임 교황들도 마녀를 신에 대한 모독과 반역죄로 처형할 권한을 주었다. 처음에는 마법의 종류에 따라 처벌 정도가 달랐으나, 시간이 경과하며 기소된 사람의 반이 고문 끝에 처형될 정도로 잔혹해졌다. 16세기에 작성된 독일 여행기는 작센에서 하루에 133명, 제네바에서는 3개월 동안 500 명이 화형되었다고 하였다. 독일의 한 도시에서는 전체 7천명이 화형을 당했고, 마을 두 곳에서는 오직 2명의 여자만이 살아남았다고 한다. 다른 도시에서는 의회가 거리를 배회하는 마녀를 박멸하자고 결의한 후, 수십명을 마녀로 체포하여 화형하거나 참수하였다고 한다. 바이에른에서는 한 마녀가 체포된 후, 그녀의 증언으로 48명이 연속적으로 마녀로 낙인찍혀 화형을 당하였다. 어느 지방의 처형된 마녀 157명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이들은 다양한 연령과 계급, 직업의 사람들이었다. 시의원과 그의 처자, 고급관리의 부인, 그 지방의 가장 아름다운 자매, 10세 이하의 아이들도 포함되었다. 거의 매일 마녀재판이 열렸고, 처형한 것을 자랑하는 재판관도 많았다. 한 재판관은 15년간 900명을 화형시켰다고 기록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재판에서 교회법 상 유죄가 인정되려면 자백이 필요했다. 당시 고문이 합법화되었던 만큼 극심한 공포를 주는 심문과 혹독한 고문이 가해졌다. 심한 고문은 언제나 자백을 하게 만들었고, 동료를 고발하는 또 다른 마녀사냥의 시작을 의미했다. 이 비극적인 모습을 반복적으로 지켜 본 일반인들은 마녀현상이 심각한 문제라고 여기게 되었다. 마녀사냥은 17세기 말부터 갑자기 진정되기 시작하였는데, 1782년 스위스에서 한 마녀가 고문 끝에 참수형에 처해진 것을 끝으로 마녀재판도 자취를 감추었다. 르네상스의 영향으로 이성적인 생각과 과학적인 사고가 지배하면서 마녀재판도 사라진 것이다. 수많은 생명이 희생된 후, 계몽사상가들이 주창한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가 보편적인 관념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사실 악마와 마법 그리고 마녀가 사회를 위협한다는 사고는 귀족과 신부 및 법관들이 만들어낸 창작품이었다. 마녀사냥은 이교도의 침입과 종교개혁 전쟁, 어려워진 경제사정, 기근, 페스트 등으로 혼란스러웠던 15세기에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면서, 다방면에서 도전받고 있던 교황의 권위와 가톨릭 체제를 유지하기위한 탈출구였다. 연속된 인류의 불행이 마법사와 마녀의 불길한 행동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하였고, 심판관은 사회가 선택한 희생양에 대해 마법의 결과에 대한 책임이 있음을 자백하라고 강요하였다. 가톨릭은 개신교도를 이단이나 마녀로 몰았으나, 개신교도 역시 내부의 반대파에 대한 마녀사냥을 자행했다.

마녀사냥은 대부분 탐문이나, 고발로 시작되었다. 단독 활동을 하는 고발자들이 많았다. 이들은 교회를 비난하거나 교리에 의문을 표했다는 사람들을 고발하며 생활하던 사람이었다. 마녀 신고 의무에 따라 마녀를 고발하지 않으면 이단으로 치부되었으므로 가족, 주인과 하인, 가톨릭의 사제 간에도 서로 밀고하는 경우가 많았다. 체포된 용의자는 투옥되었고, 자백을 강요하기 위한 심문과 고문이 이어졌다. 증언자는 마녀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경우에만 증인으로 인정되었다. 마녀는 다른 마녀를 증언할 수 있었고, 고문에 의하여 다른 사람을 마녀로 고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재판에서 변호는 허락되었으나, 도중에 이단자로 몰릴 위험이 있는 위험한 변호를 자청한 사람은 없었다. 마녀에 대한 심문은 일방적으로 불리한 내용이었다. ‘당신은 마녀가 된 지 몇 년이 되었나?’ ‘마녀가 된 이유는?’ ‘당신이 선택한 남자 색마의 이름은?’ ‘악마에게 서약한 내용은?’ ‘미녀집회의 내용은?’ ‘공범자는?…’ 등등이 주된 내용이었다. 마녀 감별법은 단순하나 피의자에게 큰 고통을 주었다. 마녀는 사악하여 눈물이 없다고 하였기에, 혐의자는 우선적으로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야 했다. 또한 마녀는 악마와 성교하며, 신체에는 악마와 결탁한 마녀 마크가 남아있다고 생각했다. 재판관은 나체 상태에서 피의자를 관찰하고, 유방이나 음부 등에서 사마귀, 반점, 기미 ,주근깨 등 마녀의 점이 나오면 그 자리를 긴 바늘로 깊숙하게 찔러 감각을 느끼는지, 피가 흐르는지 시험했다. 마녀는 감각이 없고, 난교에 의해 피를 소진해버렸기에 피가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불 시험’은 달군 쇠로 몸을 지지는 것이다. 혐의자가 이 시험을 받아들이는 순간 마녀로 치부되었다. 마녀는 악마의 도움을 받는데, 죽을 수 있는 불시험을 받아들이면 마녀의 도움을 받는 증거라고 한 것이다. ‘물 시험’도 있었다. 혐의자를 담요에 묶고 깊은 물에 빠뜨린다. 청결한 물은 마녀가 들어오면 밖으로 밀어낸다고 믿었다. 그녀가 익사하면 혐의를 벗게 되나, 물에서 떠오른다면 악마의 도움으로 살아난 마녀로 간주되어 화형된다. 마녀든 아니든 죽는 것은 같았다.

마녀재판은 재정적인 이유와 연관되어 있었다. 마녀로 체포되면 전 재산이 기록되었고, 마녀로 유죄판결을 받아 사형선고를 받으면 재산몰수형이 부가되었다. 결국은 그녀가 소유했던 전 재산은 재판을 담당했던 공무원에게로 넘어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증인해 줄 가족은 없으면서도 부유한 과부들이 마녀로 고발되는 경우가 많았다.

마녀 재판과 처형은 재판을 관장하던 교회에도 큰 이익을 안겨주는 사업이었다. 혐의자를 심문하는데 소요되는 고문기구 값, 고문기술자 급여, 판사의 인건비, 체포 시에 쓴 비용, 화형 집행 경비나 목을 맨 밧줄 값, 관 값, 교황에게 내야 하는 마녀세 등을 모두 용의자가 부담하여야 했다. 그러므로 성직자들 끼리 사형자의 유해를 빼앗기 위한 다툼도 일어났다. 독일 교구에서는 관리의 부당요금 징수를 방지하기 위하여 공정 요금표를 공표하기도 했다. 일단 마녀로 지목되면 그 자체가 지옥으로 떨어진 것과 같았다.

고문 끝에 공개적인 화형과 교수형을 행하던 마녀사냥은 사라졌으나, 사회가 한 사람이나 집단을 집단 린치하는 방식은 20세기에도 만연하였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지식인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았던 매카시즘, 반대파를 반혁명분자로 몰아 추방하고 처형한 중국의 문화혁명, 그리고 무관용적인 민족주의와 극심해지고 있는 종교적 배타주의는 아직도 만연하고 있는 비슷한 형태의 마녀사냥일 것이다. 2000년 3월 교황청은 과거 교회가 하느님의 뜻이라는 핑계로 인류에게 저지른 각종 잘못을 최초로 공식 인정한 문건을 발표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성 베드로 성당의 미사에서 과거에 일어났던 이단 심문, 십자군 원정, 유대인 차별, 다른 종교와의 반목, 여성에 대한 억압, 신대륙의 원주민 학살 등의 잘못을 거론하며 용서를 구했다. 신앙의 순수성 수호라는 명분하에 중세 교회가 한 인간을 낙인찍고, 각종 고문과 형벌을 가하였던 마녀사냥에 대하여 가톨릭의 이름으로 사죄한 것이다.

한해를 지나며 한국 사회를 생각해 본다. 현재도 의견의 차이를 다르다고 인정하기 보다는 옳고 그름의 이분법으로 구분하여 한 사람에게 낙인을 찍는 ‘마녀사냥’을 쉽게 볼 수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그러나 절대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우리의 추한 모습도 있다. 먼 후일, 또 다시 뼈저리게 반성하고 사죄를 반복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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