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이 쉬우면 결과도 좋을까? 착각 금물

 

뒤죽박죽 뒤섞인 알파벳을 재배열해 의미 있는 단어로 만드는 것을 ‘애너그램’이라고 한다. 이처럼 두서없이 나열된 알파벳은 의미를 전혀 알 수 없는 단어처럼 보이기도 하고, 대략 발음이 가능한 단어처럼 보일 때도 있다. 후자에 해당하는 단어는 알파벳 몇 개만 이동시키면 손쉽게 의미 있는 단어로 재조합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난다는 게 최근 연구결과다.

‘인지저널(Journal Cognition)’에 실린 최신 연구논문에 따르면 직감적으로 판단할 땐 발음이 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알파벳 조합이 의미 있는 단어로 재탄생하기 쉬울 것 같지만, 사실상은 성공적인 단어로 조합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독일 퀼른대학교 사샤 교수팀이 전문가적인 배경지식이 있는 수십 명의 실험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애너그램 관련 실험을 진행했다. 무작위로 연속 나열시킨 알파벳을 보고, 의미 있는 단어로 변형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판단토록 한 것이다. 또 알파벳을 재조합하는데 필요한 노력과 시간도 체크했다.

연구팀이 제시한 알파벳 조합은 애너그램을 통해 의미 있는 단어로 만들 수 있는 조합도 있고, 절대 단어로 만들 수 없는 조합도 있다. 연구팀은 우선 실험참가자들이 어떠한 단서를 근거로 의미 있는 단어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관찰했다.

그 결과, 애너그램의 길이가 짧을수록 단어 재조합이 쉬울 것으로 판단했고 실질적으로 이러한 판단은 들어맞았다. 또 발음이 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알파벳 나열도 철자 재조합이 쉬울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이 판단은 들어맞지 않았다. 오히려 발음이 불가능한 알파벳 나열보다 재조합이 어려운 결과를 보였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 같은 판단 오류는 ‘유창성 효과(fluency effect)’에서 비롯된다. 유창성 효과란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이 쉬워 보일 때 긍정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주식시장에 뛰어든 사람은 단순한 이름을 가진 주식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외국인 억양을 가진 사람은 본토 발음을 가진 사람보다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 등이 바로 이러한 유창성 효과와 연관이 있다.

발음이 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알파벳 나열을 해결하기 손쉬운 애너그램 문제로 평가하는 것은 유창성 효과로 인한 착오다. 연구팀은 발음이 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알파벳 나열은 오히려 재조합을 위한 알파벳 소스가 부족해 의미 있는 단어로 재조합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문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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