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프롱, 꼭 법으로 정할 일은 아니지만….

 

한미영의 ‘의사와 환자 사이’

샤프롱이 알려주는 존중의 문화

미국병원에 입사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 의료진이 필자에게 샤프롱이 되어달라며 진료실로 불러들였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진료실에서 멀뚱히 유방암검사를 지켜 본적이 있었다. 당시 샤프롱이라는 단어조차 몰랐던 필자는 동료의 설명을 듣고 난 뒤에야 단어의 개념을 숙지했던 기억이 난다.

설명에 따르면 샤프롱은 성추행과 같이 의료진의 부정행위를 예방하고, 환자가 안전한 환경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의료진의 배려라는 것이다. 또한 의료진의 보호장치도 될 수 있다고 했다. 개인의 인권이 철저히 보호되고 고소고발이 난무하는 미국의 문화에서는 꼭 필요한 역할이라는 것을 십분 공감할 수 있었다.

그 뒤로 몇 번 샤프롱이 되어 진료를 지켜봤던 적이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오히려 의료진 외에제3자의 입실을 불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환자는 샤프롱입실 거부의사를 밝힘으로써 샤프롱을 철회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다. 이 역시 환자의 선택권을 존중한다는 의미이다.

90연대 말 보조인력이 의료진 옆에 항상 있었던 우리나라의 진료문화에 익숙한 터라, 대놓고 추행을 예방하는 인력을 진료실로 부른다는 게 필자에게는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었다. 미국 병원의 진료문화에 적응하면서 느낀 컬쳐 쇼크 중에 하나였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샤프롱제도는 먼 나라 이야기인줄 만 알았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샤프롱제도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국회의 입법조사처에서 의료인배석제도라는 형식으로 시행하는 것에 대해 의료인단체가 거부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이미 보조인력이 진료실을 지원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굳이 법적인 강제조항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의사의 윤리지침과 진료지침으로 자율적으로 행하는 게 샤프롱제도이었거늘, 이를 법 조항으로 이행한다는 것은 불신을 전제로 진료를 행한다는 의미에서 정서상 무리라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도 법 조항으로 강제력을 마련하는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는 거부의사로 읽혀지고 있다.

그렇다. 세계 어디에서도 없는 법을 만들어 강제로 지키도록 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전에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는 의료환경을 만들기 위해선 환자를 존중하고 보호할 수 있는 자정기능이 우선해야 할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법 없이도 환자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업무분위기가 조성돼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의료진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대화가 오가는 곳에서 환자가 극도로 민감해 질 수 있다는 사실을 크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서비스 제공자 집단의 사고가 아닌 철저히 환자입장이 돼봐야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그 만큼 서비스훈련이 덜 돼 있다는 의미이다.

환자들은 의료진의 성추행과 관련된 불미스런 사건을 뉴스에서 접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피해의식에 사로잡힐 수 있다. 반면에 의료진의 입장에서는 사소한 것에 민감하고 까다로워진 환자들이 부담스러워 이들을 진상환자로 받아들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분명 누군가는 결백하며 누구인가는 피해자라 주장하는 심각한 상황도 재연될 수 있다. 그렇다면 답은 나와있다. 환자가 불안해 한다면 안심시켜줘야 하는 것이 바로 의료진의 의무이다. 그런 의무를 당연히 받아들이고 어떻게 도울 것인가는 의사의 윤리로써 우리 내 정서 안에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병원이라는 곳에선 환자에게 의료진의 진료방식을 강요하며 상식으로도 지켜지지 못하는 프라이버시가 의외로 많다. 진료공간이 좁아서, 환자가 많아서, 시간과 인력이 없어서 등 병원 사정이 급급해 환자를 방치한 곳은 없는지 의료진 스스로 되짚어 보길 바란다. 이는 곧 환자의 눈 높이에 맞는 소통법을 찾아 불신의 벽을 허무는 데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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