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카로 확인하는 ‘말단비대증’ 이상신호

셀피(Selfie)란 셀카를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에 올리는 행위를 뜻하는 신조어이다. 셀피 신드롬은 스마트폰과 SNS가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에 미친 큰 변화다. 여행을 가거나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는 물론이고, 심지어 쿡방이 대세가 된 요즘엔 밥을 먹는 모습도 사진으로 남겨 공유한다. 매 순간 자신을 의식하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마뜩찮게 보는 시선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 셀카의 존재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변해버린 외모를 셀카가 기록해 내 몸에 나타나고 있는 이상신호를 발견해주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이 나를 못 알아본다면 ‘말단비대증’을 의심?

40대 이화영(가명)씨는 얼마 전 자녀의 초등학교 학부모 참관 수업에서 우연히 대학교 동창과 마주쳤다. 화영씨는 동창을 단번에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했지만 상대방은 화영씨의 이름을 듣고 나서야 얼떨떨한 표정으로 인사를 해왔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친구의 당황스러워 하는 표정이 계속 머리에 남아있던 화영씨는 집으로 돌아와 대학생 시절 사진과 거울 속의 자신을 비교해봤다. 이마와 턱이 미묘하게 커졌다고 느꼈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당연하게 생기는 변화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몇 달 후 화영씨는 어느 때부터인가 묘하게 시야에 장애가 생긴 것을 느끼고 안과를 방문했다가 내분비내과에서 정밀진단을 받아볼 것을 권유 받고 자신이 ‘말단비대증’이라는 희귀 질환을 앓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말단비대증은 성장호르몬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분비돼 발생하는 질환이다. 말단비대증이 발병하는 원인은 99% 이상이 뇌하수체 종양 때문이다. 뇌하수체에서 성장호르몬을 분비하는 세포에 종양이 생기면 성장호르몬이 정상 범위를 넘어 과잉 분비되기 시작한다. 성장판이 아직 열려 있는 청소년기에 종양이 발생할 경우 키가 2m 이상으로 자라는 거인병이 동반되며, 성장판이 닫힌 성인기에 발생하면 손과 발, 코와 턱 등 신체의 말단이 크고 굵어지게 된다.

질환 및 증상에 대한 낮은 인지도는 조기 진단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말단비대증은 국내 환자 수가 2천여 명뿐이고, 매년 100만 명당 3.9명만이 발병하는 희귀 질환이다 보니 질환과 자신을 연결 지어 생각하기 쉽지 않다. 증상에 대해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실제 말단비대증 환자들 중 말단부위의 과성장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은 단 13%에 불과했다. 반면 치과 치료, 정형외과 수술 등 내분비 외의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우연히 질환을 알게 된 환자는 40%에 이른다.

국내 말단비대증 환자의 평균 진단 나이는 44.1세로 상당히 늦다. 말단비대증의 증상 발현부터 확진까지 평균적으로 여성은 약 4.1년, 남성은 무려 8.6년이나 걸렸다. 상황이 이렇기에 말단비대증 환자의 82.9%가 발견 당시 1cm 이상 거대 종양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이은직 교수(대한내분비학회 부회장)는 “손가락이 소시지처럼 통통해지거나, 손과 발이 커져 평소 착용하던 장갑이나 신발이 맞지 않고 이러한 변화가 계속해서 악화될 경우 말단비대증을 의심해볼 수 있다”며 “검사를 해봐도 특별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으면 내분비 호르몬 전문의를 찾아 반드시 상담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말단비대증 자가진단법

총 13가지 체크 항목 중 5개 이상에 해당할 경우 전문의와 상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손 또는 발이 커져서 반지나 신발이 작아진다

■ 입술이 두꺼워지며, 턱이 커진다

■ 얼굴이 커지고, 이마가 튀어나온다

■ 자주 머리가 아프다

■ 전보다 땀을 많이 흘린다

■ 음성이 굵어진다

■ 골다공증 또는 손목, 발목, 그리고 무릎 등에 관절통이 온다

■ 시야 장애가 나타날 수도 있다

■ 잠잘 때 코를 심하게 곤다

■ 낮에 졸음이 많이 온다

■ 당뇨병 또는 고혈압을 동반한다

■ 발기가 잘 되지 않는다

■ 피부가 두꺼워지고 거칠어진다

말단비대증은 극복 가능한 질환, 희망 잃지 말고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희귀질환이기는 하지만 말단비대증에도 치료법이 있다. 수술적 종양 절제술이 표준 치료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수술적 절제 후 완치율은 1cm 미만 미세 종양의 경우 70% 이상, 1cm 이상의 거대 종양의 경우 40% 미만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수술 성적은 얼마나 뛰어난 신경외과 의사가 수술을 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실제로 국내에서 가장 많은 환자를 뇌하수체 종양 수술로 치료한 세브란스병원 뇌하수체종양센터의 경우 미세 선종은 96%, 거대 선종은 80%의 완치율을 보고한 바 있다. 최근에는 수술 전후에 약물 치료를 함으로써 종양의 크기를 줄이고, 호르몬 수치도 정상화 하는 치료 방법이 제시되고 있다.

화영씨는 뇌하수체에 있는 종양 제거 수술을 받고 난 후 약물치료를 꾸준히 받아 이제는 성장호르몬 수치를 정상으로 유지하고 있다. 환자수가 매우 적은 희귀질환이라는 소리에 처음엔 절망했으나, 희망을 잃지 않고 적극적으로 치료한 노력이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도드라졌던 턱은 그대로지만, 몸의 붓기가 빠지고, 관절도 부드러워져 예전의 모습을 조금은 되찾은 것 같은 기분에 일상생활에서도 더욱 자신감을 갖게 됐다.

이은직 교수는 “말단비대증은 원인 불명의 희귀질환이지만,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정상인과 똑같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극복 가능한 질환이다”며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 많은 내분비 의사의 조기 진단’과 ‘뛰어난 신경외과의 수술’이다. 평소 본인의 상태를 꾸준히 체크하는 것을 생활화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세브란스병원 뇌하수체종양센터는 오는 11월 10일 화요일 “뇌하수체 종양,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를 주제로 건강강좌를 진행한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이번 건강강좌는 뇌하수체 질환에 대한 인지 및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마련됐다. 프로그램은 오후 1시부터 세브란스병원 본관 6층 3,4세미나실에서 진행되며, 신경외과 김선호 교수, 내분비내과 이은직 교수, 구철룡 교수가 강사로 나설 예정이다.

세브란스병원 뇌하수체종양팀은 2005년 내분비내과와 신경외과의 공동 진료를 시작한 이래, 2012년 뇌하수체 종양 전문 클리닉을 개설하였고, 2014년부터는 뇌하수체종양센터를 개소하여 뇌하수체 종양 질환 극복에 매진하고 있다. 신경외과 김선호 교수 및 내분비내과 이은직 교수 등 해당 분야 국내 대표 의사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세계 최고 수준의 수술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뇌하수체종양센터에서는 뇌하수체 종양 환자의 진단 및 치료를 위해 회의를 정기적으로 연다. 내분비내과, 신경외과, 영상의학과 전문의들은 토의를 통해 최적의 치료방침을 결정하고, 그에 따라 치료를 실시한다. 이와 같이 환자 중심의 유기적인 협동 진료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의료 서비스 제공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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