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안에 깔깔한 모래처럼….사랑이 떠나 갈 때

배정원의 Sex in Art(26)

루시안 프로이트(Lucian Freud), 『호텔방』

“어느 순간, 잃어버린 것을 깨닫고

다시 넣으려 해도

이미 안의 것이 아닌, 때가 묻은 그것은

들어 가지지 않는다…” (서정윤, 『껍데기와 부스러기』)

방 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침대에 누운 창백한 금발의 여자는 길고 빼빼 마른 손가락을 뺨에 대고 있다. 이미 흘렀던 눈물을 닦아내는지도 모른다. 여자의 눈은 허공을 향하고,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다. 남자와 좋았던 시절을 추억하는 것일까….? 아님 어쩌다 여기까지 자신을 몰고 왔을까 회한에 차있는 듯도 하다.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의 눈길도 차갑게 가라앉기는 마찬가지이다. 파란색 눈동자가 빛을 잃으니 더욱 냉랭하다. 그의 얼굴엔 얼핏 두려움과 짜증, 자괴감, 싫증 같은 기운 잃은 감정만 스쳐 지나간다. 이 커플에게 이미 사랑은 사라졌다. 사막을 한참 걷고 난 후 입안에 깔깔히 남은 모래처럼 불편한 관계를 이제 청산할 때가 된 것이다.

얼핏 보면 이제는 사랑이라는 감정도 서로에 대한 관심도 사라진지 오래된 부부처럼 건조해 보이지만, 이 그림의 제목은 『호텔방』이다. 그렇다면 이 커플은 ‘이름도 나이도 주소도 묻지 마세요’라는 하룻밤 사랑의 주인공들도 아니요(그러기엔 여자의 얼굴에 담긴 감정이 너무 깊다), 부부도 아닌, 지금까지 맺어왔던 관계를 끝내려는, 아니 의지가 아니라도 관계가 이미 깨져 정리만 남은, 섹스를 나눠왔던 커플임에 분명하다. 사랑이 사라진 게 아니라고 다시 한 번 되돌려 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그래서 열정이 남아 있는 척 섹스를 시도하지만, 이미 사랑이 시들었기에 섹스는 아무 것도 아닌 게 되었다.

이 그림은 영국인들이 특별하게 사랑과 존경을 보내는 현대 미술가인 루시안 프로이드(Lucian Freud,1922~2011)의 작품이다. ‘실존주의의 앵그르’라는 별명을 가진 프로이드는 3차 세계 대전 후 영국을 대표하는 사실주의 화가로 정신분석학자이며, 성심리학의 아버지인 지그문트 프로이드 박사의 손자이기도 하다.

프로이드는 모델의 사진을 찍어 그를 기초로 그림을 그리는 다른 화가들과 달리 실제 모델을 앞에 두고 그림을 그렸다. 모델들이 포즈를 취하다 지쳐 잠에 빠지거나 힘이 들어 얼굴을 찡그릴 때 얼굴이나 몸에 나타나는 감정 상태에 더욱 집중한 전통적 누드화가다. 그의 그림을 보면 모델의 몸이나 얼굴이 아름답게 느껴지기보다는 불편하고, 우울하며, 불안해 보인다. 프로이드의 인물들의 눈빛은 모두 비슷하게 우울하거나 고독하며, 대부분이 신체적으로 쇠약한 상태의 몸으로 그려졌다.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오래 쳐다볼수록 대상은 점점 추상에 가까워지며, 역설적이게도 점점 더 사실에 가까워진다’고 말한 프로이드는 인물을 그리는 것을 특히 좋아했는데, 대상을 아름다움으로 포장하기보다는 ‘고통스러워하는 인간의 심리와 영혼’을 탐구하고, 그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더욱 관심을 가졌다.

누군가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물었지만 사랑은 변한다. 그 사람이 있기에 태양이 빛나는 것 같고, 그 사람이 있기에 내 주변의 모든 사물이 분명하고 명랑한 빛으로 온통 행복을 증명하는 것 같았지만, 이유가 있든 없든 때때로 사랑은 시든다.

헤어지길 ‘잘’하는 어떤 남자는 ‘사랑이 사라지는 걸 어떻게 알지?’라는 내 물음에 ‘어느 날 불현 듯 그와 나누는 섹스가 재미없어질 때, 그의 몸에 더 이상 열정이 생기지 않을 때 나는 사랑이 사라진 것을 깨닫는다’고 대답했다.

그렇다. 누군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면, 그와의 정서적인 관계가 단절이 되면, 그 사람과 나누는 모든 것에 즐거움이 없어지고 싫증을 내게 된다. 그의 말에 자꾸 짜증이 나고, 그의 몸짓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고, 섹스가 싫어지고, 그의 존재에 무감각해지면 더 이상 그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그 사람이 나를 만지는 것이 싫어지고, 전혀 행복하지 않다면, 또 내가 그를 만지고 싶지 않다면, 단순히 잠시 미운, 격앙된 감정 상태가 아니라 더 이상 그가 내게 ‘특별한’ 존재로 다가오지 않는다면 사랑은 두 사람을 이미 떠나간 것이다.

‘섹스는 광부가 광산 속에 들어 갈 때 공기가 안전한지를 알기위해 데리고 들어가는 카나리아와 같다’는 말이 있다. 몸이 접촉하는 것은 관계를 되돌리고 서로에게 돌아가는 길의 첫걸음이다. 마음보다 먼저 닫히는 게 몸이다.

글 : 배정원(성전문가, 애정생활 코치,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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