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면 이들처럼…?

배정원의 Sex in Art(23)

아리 셰퍼 『단테와 비르질리스 앞에 나타난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와 파올로 말라테스타의 영혼』

“사랑을 받은 이상 그 사랑을 몇 십 배로 갚는 것은 사랑의 숙명… 좋아서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만큼 강한 사랑이 나를 사로잡았고, 보다시피 지금도 여전히 그 사랑은 나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사랑은 우리 두 사람을 똑같이 죽음으로 이끌었습니다.”

무겁고 어두운 하늘 위를 검은 바람에 휘감겨서는 하얀 시트를 몸에 감은 채 두 나신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다. 마치 누군가 이 둘을 곧 떼어 놓기라도 할 것처럼 눈을 질끈 감은 여자가 남자의 어깨에 매달리듯 꼭 잡고 있는 팔은 간절하다. 또 그러한 여자를 놓칠세라 남자 역시 그녀의 팔을 힘주어 잡고 있다. 탐스런 검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남자의 가슴에 꼭 기댄 채 눈을 꼭 감고 있는 여자의 입술과 동그란 가슴은 너무나 관능적이며, 팔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는 있으나 남자의 얼굴은 기품이 있고 너무나 잘생겼다. 두 남녀의 표정은 쾌락에 넘쳐 황홀경에 빠진 듯도 하고, 너무나 괴로워 곧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도 보인다. 또한 창백하리만큼 하얀 피부를 가진 여자의 등과 남자의 가슴에는 칼자국이 나 있어 무언가 잔인한 운명에 휘말린 주인공들인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림의 한구석엔 차가운 표정의 두 남자가 이 둘을 보고 서있다. 연민의 눈빛을 보내고 있는 면류관을 쓴 젊은 남자 앞의 빨간 두건을 쓴 나이든 남자는 표정이 아주 복잡해 보인다. 그의 표정만으로는 그가 이 가련한 연인들을 딱해 하며 연민을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불편해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이 그림은 네덜란드에서 태어났으나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낭만주의 화가 아리 셰퍼(Ary Scheffer, 1795~1858)의 『단테와 비르질리스 앞에 나타난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와 파올로 말라테스타의 영혼』이다.

쇼팽과 상드와도 절친한 사이였던 아리 세퍼는 전통적으로 그리스나 로마의 신화를 회화의 주제로 삼았던 다른 화가들과 달리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건과 관련된 주제, 혹은 ‘낭만주의 문학’에서 주로 영감을 얻어 그림을 그렸다. 특히 바이런이나 괴테의 작품 속 드라마틱한 주제를 좋아했다.

이 그림은 명암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 주제의 비통함과 간절함을 더욱 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단테와 비르질리스 앞에 나타난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와 파올로 말라테스타』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그림의 주제는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 나오는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의 슬픈 사랑의 이야기이다.

이 둘은 12세기 이탈리아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비련의 사건의 주인공들이다. 이 비극적인 이야기는 리베나 지방의 말라테스타 가문과 폴렌타 가문의 정략결혼에서 비롯되는데, 명성이 높았던 이 두 가문은 서로 원수지간이었다. 그러다 정략결혼을 통해 화해를 이루게 되는데 그 정략결혼의 주인공이 바로 프란체스카이다. 폴렌타 가 영주의 딸인 아름다운 프란체스카는 정략결혼을 원하지 않았지만, 막상 선을 보러 온 파올로를 보자 마음을 빼앗겨 결혼을 허락한다. 그런데 문제는 파올로가 그녀의 신랑감이 아니라 꼽추며 절름발이였던 형 조반니를 가장 해 맞선을 보러 왔다는 것이다. 말라테스타 가에서는 형을 보내서는 결혼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알고 훤칠한 키에 준수한 외모의 청년인 동생 파올로를 조반니인 척 대신 보냈던 것이다. 그렇게 결혼을 한 첫날밤 프란체스카는 방에 들어온 조반니를 보고 경악하지만, 결혼식을 파기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남편 조반니의 성격은 잔인하여 아내인 프란체스카를 사랑하고 존중해 주기는커녕 학대를 일삼았다고 한다.

그야말로 정략결혼의 희생자가 되어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던 프란체스카에게 파올로는 미안한 마음도 있고 해서 더욱 다정하게 대해 주었는데, 사랑은 ‘상냥한 관심’과 ‘연민’에서 싹트는 법인지라, 이 선남선녀는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남편인 조반니는 성격은 포악했지만, 경영에 수완이 있어 가문이 점점 번창하는 바람에 출장이 잦았고 남편이 자리를 비울 때마다 사랑에 불붙은 두 남녀는 밀회를 나누었다. 어느 날 조반니가 사냥을 나간 틈에 두 남녀가 사랑을 나누고 있었는데, 사냥터에서 하녀로부터 그들의 밀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조반니가 격분해 돌아온다. 그리고 침대 위에서 한창 사랑을 나누는 그들에게 칼을 겨눈다. 마침 파올로를 애무하고 있었던 프란체스카의 하얗고 매끄러운 등에 조반니의 분노에 찬 칼이 꽂혔다. 그리고 그녀를 안고 있던 파올로의 가슴까지 관통해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고 만다.

두 사람의 사랑은 당시의 사회적 윤리로는 부도덕하고 용서받을 수 없는 간음이었기에 이 두 사람은 수치를 입은 죄인이 되어 장례미사를 올리지도 못한 채 묻히게 되고, 신의 자비를 얻지 못한 죽음이라 지옥으로 떨어져 영원히 지옥의 검은 회오리에 감겨 구천을 떠도는 영혼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비련의 이야기는 이후 단테 뿐 아니라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제공해 그림으로, 문학작품으로, 오페라로 다시 태어났다.

단테는 이 비극적인 이야기를 『신곡』 에 삽입하였다. 실제로 단테는 프란체스카의 아버지를 알고 있었고, 자신의 이야기에 사실감을 더하기 위해 실존인물을 작품 속에 넣었다고 한다.

단테가 자신의 멘토인 시인 비르질리스와 ‘나를 통과하면 비통의 나라로 들어가리라, 나를 통과하면 영원한 고통의 나라로 들어가리라. 나를 통과하면 영원히 길 잃은 자들 가운데 속하리라. (중략) 이곳에 들어오는 자는 모든 희망을 버릴 지어다’라고 쓰인 지옥문을 통과하여 애욕의 지옥에 들어선다. 그리고 그곳에서 검은 바람을 타고 떠돌며 하염없이 울고 있는 두 남녀의 영혼을 만난다.

단테는 지옥에서의 죄 순서를 애욕, 탐식, 탐욕, 나태, 화, 질투, 자만으로 정했는데, 가장 약한 죄가 애욕이라 생각했나 보다.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의 비통해 하는 영혼을 만난 단테는 이미 그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지만 그들의 영혼을 불러 짐짓 다시 물어 본다. ‘왜 당신들은 여기에 있느냐?’고…프란체스카는 흐느끼며, 자신들이 사랑에 빠져 밀회에 들어간 순간을 이야기해 준다.

“그때 우리는 단 둘이 앉아 아더왕의 이야기에서 기사 렌슬롯이 기네비어 왕비와의 사랑에 빠져든 대목을 읽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어가며 우리의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여러 번 눈빛이 마주칠 때마다 얼굴색이 변하곤 했지요. 그런데…사랑을 갈구하던 기네비어의 입술에 그녀를 동경하던 렌슬롯이 입을 맞추는 구절을 읽었을 때, 이 사람은, 나에게서 영원히 떠날 수 없는 이 사람은 떨면서 나에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날 우리는 더 이상 읽지 못했습니다…”

프란체스카가 기구한 사연을 고백하는 동안 다른 한사람의 영혼, 파올로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그 이야기를 들은 단테는 그들이 너무나도 애처로워 정신을 잃은 채 시체가 넘어가듯 쓰러졌다고 『신곡』에 쓰여 있다.

아! 동경해 오던 사람의 입술에 떨면서 키스하는 순간이라니… 상상만 해도 온몸과 마음에 전율이 일지 않는가?

나는 이 그림을 2000년 호주 시드니에 한 달여간 체류하고 있을 때 만났다. 당시 시드니주립미술관에는 루브르 특별전이 진행 중이었는데, 그때 이 그림을 보게 된 것이다. 나는 이 그림을 보기 전에 이미 비극적인 두 사람의 간절한 사랑에 대해 들어 알고 있었는데 기대도 없이 미술관에 들어선 순간 회랑의 한가운데 벽에 걸려 있던 이 강렬한 그림을 보곤 나도 단테처럼 쓰러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날은 이 그림의 인상이 너무 애달파서 그 넓은 회랑에 책상다리를 한 채 이 가련한 두 연인만을 하염없이 올려다보았던 생각이 난다.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의 사랑이야기는 대표적인 ‘낭만적인 사랑’의 이야기이다. 찰나의 열정에 빠져 강렬한 감정으로 사랑의 대상을 갈구하며, 심한 성적 흥분과 혼란스런 감정을 함께 경험하는 시기, 쿵쾅거리는 심장,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듯이 환희와 비통의 감정을 오르내리는 시기, 강력한 성적 끌림과 자신감의 분출, 상대를 숭배하고, 상대의 행복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바칠 수 있을 것 같은 정열적인 사랑의 소용돌이 속에 두 사람의 사랑이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사랑의 광기’라고 불렀던 ‘열정적인 사랑’ 말이다.

낭만적이고 열정적인 사랑은 중독 호르몬 도파민을 증가시키고, 도파민은 성적 갈망의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분비를 촉진한다. 또 테스토스테론이 불러온 성적 활동은 다시 도파민의 분비를 증가시킨다. 섹스를 하게 되면 정액 속에 포함된 도파민 때문에 다시 불같은 사랑에 빠져든다. 이 시기엔 오직 사랑의 대상만이 보인다, 두 사람의 세계엔 누구도 없다. 그래서 죽음도 두렵지 않다. 이 시기를 잘 지나면 진통호르몬인 엔도르핀과 평화로운 시기를 가져오는 애착호르몬인 옥시토신이 분비되는 ‘안정적인 시기’가 찾아오지만, 이 두 사람에게는 더 이상의 시간이 허용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역경과 좌절은 사랑의 열정을 부추긴다. 아마도 두 사람은 잔인한 성격의 조반니에게 발각이 될 것을 알았더라도 사랑을 멈추지 못했을 것이다. 사랑을 나누다 조반니의 칼끝에 찔려 죽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로를 꼭 끌어안고, 떨어질 수 없는 운명에 영혼을 맡긴 채 지옥의 하늘을 떠다닐지라도 함께이기에 행복할까, 그들은? 아님 또 다른 지옥?

글 : 배정원(애정생활 코치, 성전문가.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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