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로부터 상처…웃음을 잃는 의사들

 

한미영의 ‘의사와 환자 사이’ 

의사를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는 환자가 있다면 그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환자가 없어 고심하는 병원도 많은데 일일이 찾아와 절대적 신뢰를 표하는 환자는 참으로 고마운 고객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은 병원에 긍정적인 입소문을 내주며 새로운 환자들을 불러들이는 마케터 역할을 톡톡히 해 줄 것이다.

그러나 강한 신뢰감을 표했던 환자가 다름아닌 진상환자로 돌변하게 되면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충성고객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환자가 갑자기 불만을 물고늘어지는 악성고객으로 변해버린 경우는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특히 치료와 수술을 잘 받고 나서 그 과정을 문제 삼아 의사를 물고 늘어지는 경우가 있다. 차라리 진료과정에 클레임을 제기 했더라면 바로 환자의 생각을 인지하고 그에 따른 조치를 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구제적인 요구사항 없이 단순히 ‘의료사고’를 운운하며 의사 탓만 하는 환자는 시한 폭탄과도 같다.

진료현장에 있다 보면 누구든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름 잘 쌓아 왔던 신뢰관계가 어떤 일을 계기로 한 순간에 무너진다면 환자는 물론 의사에게도 큰 상처로 남게 된다. 다른 환자보다 더 세심하게 챙겨주고 관심을 가져주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결국 허탈감뿐이다.

컨설팅을 하다 보면 환자로부터 상처받는 의사들을 생각보다 많이 만난다. 대부분 오랫동안 병원을 찾아준 단골환자이거나 치료성과가 좋은 환자에게서 느닷없이 예상치 못한 컴플레인을 듣는 경우다. 이런 상황에서는 연륜이 적든 많던 의사들도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

이런 일들을 겪고 나면 회의적인 생각에 좀처럼 환자에게 마음을 열기가 힘들어진다. 환자와 거리를 두는 것이 차라리 속 편한 진료가 될 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환자와 거리를 두고 함께 일하는 직원들까지 적정 선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진료가 될 수 있다고 믿게 된다.

그래서일까. 진료실에서 웃음을 잃은 의사들이 많다. 많은 환자들에 치여서인지 아니면 호된 신고식에 환자와의 거리를 두는 게 좋다는 걸 일찍이 터득해서인지, 대화를 빈틈없이 짧게 맺고 끊는 의사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다만 인간미가 없어 보인다는 점은 조금 아쉬울 따름이다.

의료서비스 또한 서비스업으로 의사는 서비스제공자로서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전문적인 서비스 정신을 갖추도록 강요 받고 있다. 그런 점을 악용한 환자들은 진료실에서 예의를 갖추는 것이 불필요한 절차마냥 의사들에게 거침없는 폭력과 폭언을 자행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의사들에게 무조건적인 서비스정신을 강요하기란 쉽지 않다. 하루에도 환자 몇 십 명을 진료하면서 한결 같은 서비스를 제공할 것을 요하는 것은 억지에 가까울 수 있다. 과거에 입이 거친 환자로부터 욕설을 들었거나, 혹은 환자로부터 오해를 받았거나,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환자와의 관계가 힘들었던 적이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3분 진료에 맞춰진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시스템에서 많은 환자를 보게 된다면 의사들이 불량환자를 만날 확률이 다분히 높다. 우리가 단골고객이라고 부르는 환자 중에는 필요이상으로 의사를 교묘하게 괴롭히는 경우도 있다. 잘못의 여부를 따지기 전에 예의 없는 환자에게 어디까지 예의를 지키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지 의사들은 항상 딜레마에 놓이게 된다.

이제는 의사들도 미움 받을 용기가 필요하다. 극소수의 진상환자로부터 예상치 못한 컴플레인을 받아도, 사소한 일로 마찰을 빚어도 진료실에서는 대화에 정성을 들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의료진의 세심한 관찰과 따스한 배려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환자의 눈에도 의사의 걱정과 보살핌이 정확히 선한 의도로 보이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의료서비스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의사와 환자 사이에는 항상 따스한 감정의 교류가 있어야 한다. 아들러의 심리학이 상처받은 현대인들의 인관 관계에 해답을 내 놓았다면 진료실에 마주 하고 있을 지금의 환자에게도 용기 있게 더 다가설 것을 주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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