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구조 잘 알려고 시신 190구와 살았지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리서치트라이앵글파크는 우리나라의 대덕단지가 벤치마킹한 세계적 하이테크단지다. 국립환경보건원(NIEHS. National Institute of Environmental Health Sciences)도 여기에 있다. 20년 전인 1995~1997년 매일 오전 6시 반이면 어김없이 NIEHS 정문을 통과하는 동양인이 있었다. 연세대 의대 이비인후과 윤주헌 교수였다.

윤 교수는 1994년 일본 가고시마 대학교에서 코 상피세포를 배양하는 첨단방법에 대해서 공부하고, 이듬해 이곳으로 왔다. 코 상피세포를 배양하는 것은 코 생체방어반응 연구의 토대였고 당시 세계 각국의 의사들은 이 분야의 선도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코에 초점 맞춘 생체방어연구 분야 개척 

“NIEHS 폴 네터샤인 박사의 분자생물학적 배양법은 일본의 방법에 비해서 재현가능성이 훨씬 크고 여러 면에서 과학적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연구 환경이 지금과 달라서 귀국하면 제가 연구 장비 세팅에서부터 시약 배합까지 혼자서 다 해야 했습니다. 대충 배워서는 안 됐죠. 이론과 기술의 A부터 Z까지 완벽하게 체득해야 했습니다. 초조했습니다.”

집에서 저녁을 먹고 연구소로 되돌아와 밤을 지키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출근하지 않는 주말에는 연구실이 윤 교수 차지였다. 일요일에도 교회 일정이 끝나면 득달같이 연구소로 향했다.

그는 코 상피세포 배양에서 세계적 고수(高手)가 돼 귀국했다. 하지만 미개척 분야에서 연구를 시작할 돈이 없었다. 미국에 가기 전 윤 교수가 꾸려나갔던 스터디 그룹 출신의 후배 개원 의사 30여 명에게 편지를 썼다. 후배들은 코 분야 연구를 개척하겠다는 선배의 뜻에 기꺼이 호응했다. 윤 교수는 연구원 2명을 채용해서 코 상피세포와 씨름했고 SCI 논문을 잇따라 발표했다. 연구과제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게 되면서 외국 학자들이 인용하는 논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2004년 연세대 의대 소속의 기도연구소, 2007년에는 연세대학교 소속의 생체방어연구소의 닻을 올렸다. 그는 현재 30여 명의 식솔과 함께 코로 시작하는 호흡기 세계에서의 면역반응과 염증조절 등에 대해 세계적 의학자로 꼽힌다.

“손기술만으로 안 된다”… SCI 논문 176편 

윤 교수는 이비인후과에 지원해서 스승인 박인용 교수를 만난 것이 삶의 전환점이었다고 이야기한다. 박 교수는 이비인후과에서 코 영역의 분과를 새로 만든 대가였다. “성경 창세기 2장 7절에는 하느님이 흙으로 사람을 짓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을 만들었다고 돼 있습니다. 코는 그만큼 중요한 기관입니다. 코 점막의 상피세포는 인체의 센서 역할을 하는데, 공기에 있는 각종 바이러스, 세균, 먼지 등이 콧속에 들어와 센서를 건드리면 인체에 사이렌이 울리고 핏속의 중성구가 급히 문제 장소로 몰려와 전투가 벌어지지요.”

스승은 제자들에게 늘 고개를 들어 해외로 눈을 돌리라고 가르쳤고 일본 가고시마 대학, 오이타 대학 등과 교류의 마당을 마련하면서 실마리를 텄다. 박 교수는 졸업동기인 임종재 박사(미국명 David Lim)를 초청해서 제자들에게 ‘넓은 물’을 간접 경험케 했다.

임 박사는 미국이비인후과학회 설립을 주도했고 국립난청과대화장애연구소(NIDCD. National Institute on Deafness and Other Communication Disorders)의 연구책임자가 됐던 귀 분야의 세계적 학자로 윤 교수의 두 번째 스승이었다. 임 박사는 “미국에서는 연구를 잘해야 명의 대접을 받는다. 손기술만으로는 세계무대에서 통하지 않는다. 의학이라는 학문에 매진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윤 박사는 두 스승의 가르침대로 틈만 나면 도서관에서 해외 논문을 구해 읽었다.

윤 교수는 지금까지 호흡기의 염증 반응을 비롯한 실험연구결과를 국제적 학술지에 150여 편 발표했다. 그는 코 해부에 관한 논문도 20여 편 국제학술지에 발표해서 이 분야에서도 대가로 인정받고 있다. 윤 교수는 대학시절 해부학의 재미에 쏙 빠졌었다. 이비인후과를 평생 전공으로 삼은 것도 이비인후과가 내과와 외과의 영역을 고루 갖춘 점이 매력적이기도 했지만 코의 복잡하면서도 절묘한 해부학적 구조 때문이었다.

그는 시신 190여 구의 코와 맞대고 씨름을 해서 코의 해부학적 견해에서 ‘걸어 다니는 사전’으로 불렸다. 2001년 순우리말로 정리한 《코임상해부학》은 전국 의대생과 의사들의 교과서로 쓰이고 있다. 해부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미간, 광대뼈 등을 통해 넣어 다른 부위는 건드리지 않고 원하는 코뼈를 자르는 수술기구를 개발하기도 했다. 이 기구는 ‘윤의 부비강 통과절단기(Yoon’s Through-Cutting Sinus Punches)’란 이름으로 세계 각국의 의사들이 쓰이고 있다. 윤 교수의 탁월한 해부학적 지식은 코 질환의 정확한 진단과 수술로 이어지고 있다.

교육-의료행정에서도 두각… 학점 없는 학교 만들어 

윤 교수는 교육과 의료행정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체질적으로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주는 것을 즐겼다. 군의관 시절에는 자비를 들어 《직업군인의 건강》 1,000여 권을 찍어 장교와 하사관이 건강을 돌보도록 했다. 윤 교수는 연세의료원 의과학연구처장, 교무부학장을 거쳐 연세대 의대 학장을 연임했다. 학장 시절 국내 대학 최초로 학점을 없애기도 했다. 그는 의료행정의 기초는 미국암연구협회 회장을 지낸 홍완기 텍사스대 MD앤더슨 암센터 교수에게 배웠다. 홍 교수는 “이메일이 오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도 사흘 안에 어떤 식으로든 답장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비롯해서 국제적 룰을 따뜻하게 가르쳤다.

윤 교수는 2014년 의대 학장을 마치고 미국 와일 코넬대로 연수를 떠났다. 내과 부장인 최명근(Augustine Choi) 교수와 함께 고장 난 미토콘드리아를 제거해서 세포의 염증반응을 억제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다 귀국했다.

윤 교수는 요즘도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이메일을 체크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학여울역에서 4시28분 지하철을 탄다. 6시 20분경 사무실에 도착해서 진료, 연구, 교육 세 분야 계획을 짠다. 그는 자신의 연구가 곧 약 개발로 이어져서 코 막힘으로 고생하는 사람의 코가 펑 뚫리는 것을 보는 것이 꿈이다.

코 질환 분야 베스트 닥터 윤주헌 교수

● 윤주헌 교수의 아하! 코 건강법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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