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내과는 의병? ‘메르스 사태’ 원인 논란

 

이번 메르스 사태 대응과정에서 감염내과 전문의들이 주축이 되면서 여러 뒷말이 나오고 있다. 감염내과 전문의는 감염질환의 진단과 치료, 예방, 관리를 담당한다. 하지만 전염병의 발생 원인과 역학적 특성을 밝히고 방역대책을 수립하는 일은 예방의학 전문가인 역학자의 몫이 크다. 감염질환 퇴치를 위해서는 역학 전문가와 감염내과 전문의의 빈틈없는 공조가 필요한 것이다. 이번 메르스 방역체계에 구멍이 생긴 것은 역학 전문가들이 제외돼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송형곤 전 삼성서울병원 응급의학과장은 지난달 22일 SNS를 통해 “지금 이 상황에서 역학 전문가가 나설 시기이지 감염내과가 나설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당시는 메르스 사태가 확산되면서 방역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던 시기다. 감염내과의 ‘독주’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보낸 것이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메르스 즉각대응 태스크포스(TF)팀장인 김우주 대한감염학회 이사장(고려대의대 감염내과 교수)은 “병원감염 분야에 경험 있는 역학자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이사장은 지난 2일 의료전문지 라포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역학자들은 주로 콜레라, 장티푸스 등 지역사회 감염병을 다루는 분들이다. 병원감염 분야의 역학자가 필요한데 사실상 없다”면서 이 같이 말했다.

김 이사장은 “(한국에서 발생한)메르스 감염의 특성은 병원 내 전파다. 결국 감염관리 전문가가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라며 “공중보건을 하는 전문가들이 병원에 가서 이래라저래라 하면 절대로 말을 듣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이어 “우리(감염내과)는 일상적으로 감염관리와 항생제를 관리하고, 감염관리 간호사들이 병원 곳곳을 다니면서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때문에 통제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은 “감염학회는 현 메르스 사태를 악화시킨 무거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서 “감염학회와 병원감염관리학회는 ‘감염병 위기관리대응’이라는 주제로 수백억원의 연구비를 받아 쓴 수혜자에 포함되어 있음에도 메르스에 대한 제대로 된 대응책을 만들지 못했다”고 SNS에서 주장했다.

이번 메르스 사태 대응과정에서는 바이러스 전문 과학자의 필요성이 간과되어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영봉 대한바이러스학회 전 학술부장(건국대 교수)은 “바이러스 특성 연구부터 진단, 감시를 위해서는 감염병 전문 과학자의 참여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바이러스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빠진 채 감염내과 전문의들이 중심이 돼 각종 방역대책을 수립하면서 조기 차단에 구멍이 생긴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인 것이다.

김우주 감염학회 이사장은 “6월 8일 메르스 즉각대응팀을 구성할 때 팀장을 맡으라고 했다. 제가 (역학 전문가를) 넣고 빼고 할 위치가 아니었다. 총리 특보로 임명된 것도 인터넷을 통해 알았다. 그 뒤에 총리실에서 상황이 급박해서 그렇게 결정한 것이라고 이해를 구하는 전화가 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김 이사장은 메르스 사태 초기를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에 비유하면서 “전반전에 관군이 3대 0으로 지고 있어 의병이 투입됐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5대 0으로 지고 있는 상황이었다”며 “후반에 투입된 의병 격인 감염내과 의사들이 전세를 역전시켰다”고 주장했다.

바이러스 전문 과학자인 김영봉 교수는 메르스 같은 신 변종 바이러스 질환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4개 의료분야의 공조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감염병 전문 과학자를 필두로 바이러스 전파를 차단하는 예방의학, 환자 치료를 하는 감염내과, 그리고 의학보건대학원출신의 역학-관리 전문가들이 모두 필요하다고 했다.

이번 메르스 사태는 우리 의료계 시스템에 수많은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보건당국은 메르스 사태가 끝나면 ‘실패 보고서’를 써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빠진 채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만이 매일 힘겹게 메르스 차단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실패담도 담아야 할 것이다. 그동안 병원감염 역학 전문가를 양성하지 못한 것도 보건 당국의 책임이다. 메르스 같은 신 변종 바이러스는 또 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때도 오늘과 같은 논란을 되풀이할 것인가.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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