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도 ‘현장’이 중요… 닫힌 진료실, 소통도 닫혀

한미영의 ‘의사와 환자 사이’

커다란 사고현장에는 어김없이 그 수습을 책임지는 지휘관이 있기 마련이다. 지휘관은 사고현장의 신속한 수습을 위해 자리를 뜨지 않고 지시를 기다리는 현장인력 가까이서 소통할 태세를 갖춘다. 재난 현장이든 사고현장이든 이런 지휘관의 역할은 절체절명의 순간까지도 빛을 발한다. 예상치 못한 불운이 발생한 현장에서는 흔들림 없이 함께하고 노고를 격려하는 듬직한 리더의 역할이 크다.

정의심이 없어서일까 자신감이 없어서일까 이렇게 현장에서 함께 싸우는 리더는 보기 드물다. 다들 자기 사무실 안에서 보고 받는 일에 익숙해 보고서를 뚫어지게 보거나 혹은 구두로 열심히 읊조리는 부하직원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게 자신의 임무인양 좀처럼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는다.

이처럼 보고를 통해 들은 이야기는 현장의 모든 스토리를 담지 못한다. 왜냐하면 보고자의 판단으로 이야기는 걸러지고 문제는 축소되기 때문이다. 걸러지는 이야기 중 정작 리더의 판단에 필요한 이야기는 누락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비스업은 직원의 행동으로 생산품이 만들어지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직원이 만드는 생산품이 어떤 식의 에러가 발생할 수 있는지 예견하고 예방하는 일이야 말로 리더가 꿰고 있어야 할 일일 것이다. 그래서 눈으로 확인하는 일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환자가 느끼는 불편이 어떤 식의 컴플레인을 유발할 수 있는지, 직접 보고 느끼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대기실에서 환자들은 무엇을 걱정하고 불편해 하는지, 병원 검사장비 옆 너저분한 물건들이 전문성을 반감시키지 않는지, 주사실의 더러운 오염물이 환자에게 그대로 보여지는 것은 없는지 보지 않으면 그 어떤 판단도 내릴 수 없는 일들이다.

또한 어떠한 약물이 불결하게 관리되고 있지는 않은지, 방치되는 개인정보는 없는지 철저히 환자의 눈높이로 돌아봐야 한다. 입원실에 제공되는 환자식의 국은 왜 이리 식었는지 먹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화장실에 세면대는 왜 이리도 불결한지 여러 사람이 들락거리는 장소의 화장실에서 손을 씻어 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이러한 모니터링이 실무 담당자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지시도 논의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서비스는 사소한 것에서 칭찬을 받지만 더 작은 일에서 큰 컴플레인이 나오기도 한다.

리더의 역할은 무엇이 정확한 사실인지 확인하는 일이다. 철저한 직원이 편이 되기 위한 팩트를 정확히 알아내는 일을 무엇보다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 병원은 각기 서비스 영역과 전문영역이 달라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서로를 판단하고 일할 것을 주문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힘의 논리가 아닌 리더의 합리적인 판단이 큰 역할을 한다. 현장의 정확한 사항을 모르면 갈등을 겪는 직원들 사이에서 무게중심을 잃고 더 큰 고민을 안게 된다. 현장에서 직원들과 함께 구른 경험이 있는 리더라면 직원의 행동과 표정에 의미를 부여할 줄 알고 해석할 줄 안다.

리더로서 진정한 감동을 주는 의사에게 직원은 무언의 팬레터를 보낼 것이다. 당신과 함께 일하는 오늘이 즐거워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말이다. 직원들은 알지만 의사들은 모르는 것이 있다면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반증이다. 진료실에 갇혀 생각이 막히는 일처럼 안타까운 일은 없다.

그 어떤 자리든 자리를 지키고 싶다면 현장에서 서서 배회해야 한다. 자리를 비우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직무유기는 역할의 부재이지 자리의 부재는 아니다. 병원에서 의사는 환자를 진료하는 것에 전문가이다. 그럼에도 조직이 크던 작던 직원들의 월급을 챙겨줘야 하는 경영자로서 전문 조직을 이끄는 리더로서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

출근과 동시에 진료실은 닫힌다. 방해 받고 싶지 않은 자신의 시간을 보호받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굳게 닫히는 문이 직원과 소통을 막는 문도 될 수 있다. 직원들이 열광하는 리더는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구체적인 지시 보다는 어떻게 바뀔 수 있을지 같이 고민하면서 직원의 의견을 반영하는 사람이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는 직원이 서비스 매개체로서 개입되어 있다. 의사가 직원과의 소통이 부담스러워 환자와 직원이 북적거리는 현장을 거부한다면 직원들도 의사의 입 소문을 찾아 방문한 환자와의 소통도 부담스러워 하게 된다.

문제가 없다는 것에 안도하지 말아야 한다.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해 고민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은 당연히 있을 수 없다. 서비스 현장에서 문제의식이 없는 의사와 직원은 환자를 끌어 당기는 힘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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