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은 있다, 그러나…. 65, 75, 50의 비밀

 

정은지의 식탁식톡 (12) / 라면

영화 『봄날은 간다』의 명대사 ‘라면 먹고 갈래요?’ 이 한마디가 여자들에게 남심(男心)을 녹이는 필살의 한마디가 되곤 했다지요. 어떤 매너 없는 남자는 “라면 먹고 갈래?”하고 분위기 잡는 여자에게, “너 지금 내게 나트륨 덩어리 먹여 병들게 할 참이냐”고 타박을 했다 하는데요. 우스갯 소리이긴 하지만 그 말도 뼈가 있는 말처럼 느껴졌습니다. ‘나트륨 덩어리’란 말에 괜히 찔리는 저는 라면입니다.

‘식품업계가 낳은 20세기 최고의 걸작품이지만, 21세기에 사라져야 할 식품’이라고 했다는 어느 일본 기자의 말처럼 저, 라면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맛’ 하면 라면을 빼놓을 수 없거든요. ‘파 송송 계란 탁!’ 유혹을 거절할 수가 없다는 사람들이 많지요. 그런 사람들이 있으니, 제가 이 자리에서 텅텅거리며 이야기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한국갤럽 설문 조사결과 한국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라면을 먹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건강에 좋다, 나쁘다 등 뒷말이 항상 많습니다. 솔직히 저도 라면이 건강에 좋다고 변론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데 라면이 ‘건강 면’이라고 권하는 사람, 은밀한 속셈의 여자친구 말고 또 한 명을 꼽을 수 있어요. 인스턴트 라면을 발명한 안도 모모후쿠 일본 닛신식품 회장 말입니다. 그는 96세로 타계할 때까지 매일 점심으로 라면을 먹었습니다. 라면을 매일 먹어도 건강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며 늘 즐겨 먹었던 거죠.

‘라면에 살고 라면에 죽는다’는 예찬자들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한국에선 제가 워낙 인기가 많아 최근에는 ‘영양은 더하면서 나트륨은 덜어낸’ 라면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지요. 이왕 먹을 거 건강하게 먹자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죠. 물론 아직 ‘건강’이란 수식어와 가까워지려면 갈 길이 멀어 보이긴 합니다.

웰빙라면을 위해 면 반죽부터 신경 써서 밀가루 외에도 감자전분, 녹두전분을 포함하는 등 많은 변화를 꾀하고는 있습니다. 스프 속 나트륨 함량을 줄이기도 하고요. 분말 스프에만 나트륨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면을 제조할 때도 소금이 많이 들어갑니다. 라면 면발이 쫄깃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지요. 쫄깃한 면발을 찾는 사람들의 입맛은 맞춰야 하고, 건강을 위해 나트륨 함량은 줄여야 하니 업계의 고민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라면은 나트륨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라면 1봉지의 나트륨 함량이 1350~2069mg 수준이었는데요, 하루 나트륨 섭취 권고량의 87%에 달했습니다. 또한 지방간과 비만의 주범이 되는 포화지방도 기준치의 51.3%로 유의할만한 수치였습니다.

라면이 포화지방 함량이 높은 것은 생산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값싼 식물성 유지인 팜유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1989년의 공업용 쇠기름 파동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팜유는 오일팜(기름야자)의 과육을 압착해서 얻은 식용유입니다. 라면뿐 아니라 마가린이나 과자류의 생산에 많이 사용된다죠. (포화지방 대표주자로 꼽히는 게 억울합니다!)

나트륨과 포화지방 문제 이외에도 3대 영양소인 탄수화물·지방·단백질의 불균형도 문제가 되고 있긴 해요. 단백질은 겨우 15%정도, 비타민과 무기질은 거의 섭취하기가 어려운 양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균형 있게 식사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꼬불 면발과 분말, 건더기 스프가 전부인 이 인스턴트 식품에 영양 균형까지 요구하는 것은 가혹합니다.

당연히 저를 매일 밥 먹는 것처럼 먹으면 영양 불균형이 올 수 밖에 없겠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제가 고혈압이나 심장병, 위염 등의 원인이라는 등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정말 피해갈 수 없는 연구결과가 하나 나왔습니다. 라면을 자주 먹는 여성에게 심장병·당뇨병·고혈압 등 대사성 질환 발생률이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국제 학술지인 영양학회지(The Journal of Nutrition)에 실린 미국 하버드대 공중보건대학과 베일러 의대 신현준 박사팀의 연구결과, 여성일 경우 평소 아무리 좋은 음식을 골고루 먹더라도 라면을 자주 먹으면 대사증후군 위험성이 증가한다는 거에요. 근데 왜 여성에게만 더 그러느냐 하면, 성호르몬이나 신진대사와 같은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라는데요. 특히 일주일에 2번 이상 먹으면 대사증후군 위험이 68% 증가해 라면 섭취를 자제할 것을 조언했습니다. 한국인 10명 중 6명이 일주일에 1번 이상은 먹는다는데… 어쩌면 좋아요!

 

그렇다고 안 먹을 건가요? 저를 끊을 건가요? 아니죠? 칼칼한 라면 국물 맛 땡긴다며 어느새 파송송! 계란 탁! 하고 있을 거잖아요. 뜨거운 면발 후후 불어가면 후루룩후루룩 ‘먹방’ 찍을 거 잖아요. 그러니 당신의 간편한 한끼 식사를 위해, 그나마 유익한 방법으로 먹을 것을 권해봅니다. 

이렇게 드셔보세요

맵고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는 한국인 입맛 때문에 라면은 절대 건강식이 못 된다는 설이 있습니다. 저 자체는 ‘건강식품’이 아니라도 제가 ‘건강식’이 되고 안 되고는 다 요리하기 나름! 짠 맛을 덜기 위해 스프 양을 줄이고, 매운 맛을 낼 수 있는 청량 고추를 넣어 끓이세요. 파, 양파, 콩나물, 버섯 등 몇 가지 채소를 썰어 넣어도 그 칼칼하고 시원한 맛이란! 양파, 당근, 호박, 양배추와 같은 채소는 칼륨 함량이 높으니 라면에 들어있는 나트륨도 배출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토마토, 바나나 등의 과일 역시 칼륨이 풍부한 식품이므로 라면을 먹고 난 뒤 후식으로 과일을 먹으면 좋습니다.

라면에 담긴 숫자

65= 라면 한 가닥의 길이는 약 65cm

75= 한 봉지에 평균 75가닥의 면발

50= 가닥을 이은 총 길이 50m

왜 저를 라면이라 부르기 시작했게요? 제 이름은 중국의 납면(拉麵, 중국 발음 라미엔)에서 시작됩니다. 이 중국식 이름이 일본으로 전해져 라멘으로 일컬어지던 것이, 한국으로 오면서 라면이 됐습니다. 본 용어 납면은 ‘끌어당겨 만든 면’이라는 뜻으로 자르지 않고 길게 뽑아낸 것을 말하지요. 저는 꼬불꼬불한 면발이 뭉쳐져 있지요. 왜 꼬불꼬불할까 궁금해 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요. 이제는 잘 아실거에요. 작은 봉지 최대한 많이 넣으려니최대한 꼬불 뭉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건 당시 획기적인 아이디어였죠! ※ 『네이버 음식백과』 참조 [그래픽=양희선]

식탁식톡 이전 기사 보기

12_브로콜리 편> “나는 왕이다, 전자레인지에 돌리지 마라”

11_돼지고기 편> 2주에 한번, 내 ‘짝꿍’ 새우젓과 함께 만나요

정은지 기자 jeje@kormedi.com

저작권ⓒ '건강을 위한 정직한 지식' 코메디닷컴(http://kormedi.com)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Share with Kakao
1 개의 댓글
  1. 더스틴

    알면서도 인간이기에 못 끊는 것들이고 그러한 습성으로 장사히지요.
    다이어트 학원, 어학원, 라면 장사.

댓글을 달아주세요.

귀하의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