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통령 외할머니 DJ와도 묘한 인연”

갑상선 및 당뇨 연구의 대가인 이현철 전 세브란스 교수가 30년 넘게 근무해온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떠나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오랜 보금자리였던 신촌을 떠나지 않고 지역 내에 새로운 진료공간을 마련했다. 신촌역에서 도보로 2~3분만 걸어가면 등장하는 ‘연세 이현철 내과’가 인생 제2막을 열어준 새 둥지다.

지난 2월 퇴임한 직후 지역사회를 위한 환자진료에 매진하고 있다. 당뇨, 갑상선질환, 고지혈증 등에서 거둬온 그동안의 연구 성과와 진료 이력을 생각하면 잠시 쉴 법도 한데 곧바로 의료봉사에 전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좀 쉬었다 할까 생각도 했는데 학회를 다니면서 좀 쉬기도 했으니까 연속해서 진료하기로 했어요.”

학회 일정을 휴식으로 생각할 만큼 바쁘고 분주한 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개인병원을 연다는 것은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이 전 교수는 “세브란스에 있을 때는 병원에서 많은 일을 지원해줘 편하게 환자를 봤지만 병원 개원은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것”이라며 “부지를 알아보고 간호사를 채용하고 인테리어를 구상하고 허가를 받는 것까지 모두 알아서 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보람된 일을 한다는 생각에 큰 스트레스는 받지 않았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사회가 어떤 곳인지도 많이 배웠다.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흔쾌히 시작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연초에는 개원 준비로 분주했지만 요즘은 환자 진료와 더불어 책도 읽고 음악도 듣는 등 여유시간이 생겼다. 대학병원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학회활동 역시 꾸준히 참여할 계획이다.

이 교수는 “학술행사도 참가하고 공부는 당연히 평생 해야 하는 것”이라며 “신기술에 대한 정보를 얻고, 배운 걸 환자에게 적용해 도움을 주는 것이 의사의 몫”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대한당뇨병학회, 대한내분비학회,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 대한임상노인의학회 등에 소속돼 있다.

수십 년간 근무했던 세브란스를 떠날 때는 마음이 심란하기도 했다. 1968년 연대의대를 입학해 인턴, 레지던트를 거쳐 84년 교수로 채용된 이후 현재까지 군대 3년을 제외하곤 세브란스를 떠나본 적이 없다. 세브란스를 떠난다는 섭섭한 마음과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보람된 기분이 묘하게 상충됐다.

긴 세월만큼 세브란스에서의 특별한 기억들도 떠오른다. 박근혜 대통령의 외할머니이자 육영수 여사의 어머니가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일이 있었다. 당시 가래도 못 뱉고 음식도 제대로 삼키지 못했던 박 대통령의 할머니를 위해 레지던트 1년차였던 이 교수가 가래 뽑는 일을 전담했다. 원래 이 교수의 선배가 맡기로 했던 일이지만 선배가 시험을 준비하면서 대신 맡게 된 것이 큰 인연으로 이어졌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도 인연이 있다. 김 전 대통령이 선거 유세를 하던 당시 건강 이상설이 떠돌며 이슈가 됐는데, 이 교수가 김 전 대통령의 건강검진을 담당한 것이다. 그리고 검진 결과가 매스컴에 발표되면서 김 전 대통령의 당선에 일정 부분 기여하는 결과를 낳았다. 김 대통령의 청와대 재임 시절에는 허갑범 교수가 주치의를 맡았고, 이 교수가 실무적인 일을 맡아보았다.

이 교수는 세브란스에 근무하는 동안 많은 혜택을 입었던 만큼 남은 인생은 봉사하며 보내겠다는 계획이다. 좋은 의료를 통해 환자의 빠른 회복을 돕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하겠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들을 위해 당뇨 관련 재단법인도 추진 중이다. 재단 설립이 성사될지의 여부는 아직 미지수지만 금전적으로 어려운 환자들을 돕겠다는 생각만큼은 변함이 없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건에 놓인 당뇨 환자가 나날이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이 교수가 전공의로 근무하던 시절에는 당뇨 환자가 100명당 1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현재는 100명당 10명에 이를 정도로 증가했다.

이와 같은 변화는 당뇨 연구의 규모가 확대된 탓도 있지만 경제여건이나 식생활 등의 변화로 환자 패턴이 달라진 이유가 훨씬 더 크다. 이 교수에 따르면 당뇨는 일종의 ‘생활습관병’이다.

“20~30년 사이에 유전자가 변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보단 환경이 변한 것이죠. 고칼로리·고지방 위주의 식습관, 운동부족, 스트레스 등이 당뇨의 원인이 된 겁니다. 얼마든지 예방도 가능한 질병이라는 거죠.”

서구식 식습관과 운동량 부족 등이 당뇨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생활습관을 개선한다면 100명 중 1명꼴로 당뇨환자가 발생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는 의미다. 다행인 것은 당뇨가 있는 환자들도 의사의 지시에 따라 약 처방만 잘 받으면 당뇨가 없는 사람들 못지않게 건강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이 교수는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 수치가 높은 고지혈증이나 고혈압도 마찬가지다. 식이요법이나 체중조절 등으로 개선이 가능하다”며 “선천적인 가족성 콜레스테롤이 있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많지 않다. 식습관이나 비만 등이 주된 원인인 만큼 평소 관리가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문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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