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의 시대… 당신의 미각은 안녕하신가

 

박민수 원장의 거꾸로 건강법(18)

비만은 우리나라 사람에게서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질병 중 하나며, 이 비만의 뿌리는 미각장애의 일종인 미각중독이라 말할 수 있다. 미각장애는 스트레스와 중독이 만연한 현대사회를 반영하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다. 더욱이 과식과 폭식, 편식을 부추겨 건강일탈을 조장하는 ‘만병의 줄기’이기도 하다.

과학적으로 규명된 미각장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가장 심각한 상태는 미각이 상실된 상태의 ‘미각소실’ 내지 ‘미맹’이다. 미각이 완전히 소실되지는 않았지만 정상보다 감소된 형태를 ‘미각감퇴’라 하며 미각이 정상보다 증가된 형태를 ‘미각과민’이라고 한다. 그리고 미각이 정상과 다르게 느껴지는 경우, 즉 단맛이 쓴맛으로 느껴지는 경우를 ‘이상미각’이라고 한다.

미각소실은 후각소실과 동반된 경우가 가장 흔하며 단독원인은 드물다. 약제가 미각장애를 일으킬 수 있으며 당뇨병이나 갑상선기능저하증도 미각장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악성종양, 외상, 방사선치료, 영양결핍, 쇼그렌 증후군 등과 같은 질병도 미각소실을 일으킨다.

현대인의 경우 이러한 질병적인 미각장애보다는 기능적인 미각변화가 더 심각하다. 기능적인 미각변화란 특이한 원인 질환은 없지만 특정 맛을 탐닉적으로 추구하면서 대뇌회로의 변화가 일어나는 현상이다. 기능적인 미각변화의 가장 심각하면서도 보편화된 형태를 ‘미각중독’이라 할 수 있다. 특정 맛에 대해서만 맛을 느끼고 다른 음식을 먹었을 때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이다.

미각중독은 특정 맛에 대한 선호가 극단화된 형태로 맛 의존, 맛 금단, 맛 내성과 같은 특징이 있다. 즉 미각중독을 가진 사람들은 특정 맛에 대해 신체적 정신적으로 의존하여 반복 섭취하고 해당 음식이 일정기간 이상 제공되지 않으면 심리적이고 신체적인 불쾌감과 기분저하를 느낀다. 그리고 일정수준에 도달하면 기존의 맛으로는 만족하지 못한 채 더욱 강하고 센 맛을 찾게 되는 것이다.

미각중독을 일으키는 맛은 혀의 미뢰를 자극하고 대뇌변연계에 깊은 각인을 남길 만큼 강렬하고 인상적인 것이어야 한다. 대표적으로 미각중독을 유발하는 맛이 단맛, 짠맛 그리고 고소한 맛이다.

필자는 단맛이나 짠맛, 고소한 맛을 가지면서 먹는 사람들이 그 음식에 대해 중독되게끔 하는 음식을 그 사람의 ‘탐닉음식’이라고 명한다. 대부분의 탐닉음식은 일반화되어 있지만 개인적인 선호도가 있을 수도 있다.

미각중독을 설명하는 재미있는 연구가 있다. 미국 뉴욕의 Wang 등의 연구팀은 PET 전산화촬영을 이용하여 비만인과 마약중독자의 대뇌 호르몬전달 체계를 비교했다. 두 군의 대뇌영상 모두 동일하게 선조체 도파민 D2 수용체(striatal dopamine D2 receptor)가 감소해 있어 물질이나 약물에 대한 강박적 탐닉을 조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특정 맛에 대한 탐닉이 강한 사람의 뇌의 보상회로는 점점 마약 중독자를 닮아간다는 것이다.

꼭 비만인이 아니더라도 특정 음식에 대한 의존도가 강한 사람들은 마약 등의 약물중독자들이 보이는 쾌락반응과 닮아갈 가능성이 크며 단맛중독과 마약중독의 유사성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들이 진행돼왔다. 오랫동안 흡연한 사람들 중 일부는 정상적인 자극에 대한 감흥이 떨어지고 비정상적이고 충동적인 자극에만 반응하는 상태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현대인들은 미각중독에 빠질까?

1. 맛중독을 일으키는 스트레스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많은 정보와 관계 속에서 현대인들은 스트레스를 숙명적으로 가지고 산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스트레스로 인한 심신의 저조 반응이 발생하면 도파민을 생성하는 대체보상을 찾게 되고 대체보상은 반복적인 쾌락제공을 통해 중독으로 전환된다. 현대인들이 가장 보편적이고 제약없이 접할 수 있는 중독적 기제가 바로 음식중독이다.

2. 미각변화를 야기하는 탐닉음식들의 산업화적 경쟁 때문이다.

식품회사나 음식점들은 미각을 자극하는 탐닉음식을 앞 다투어 내놓고 있다. 이제 탐닉음식을 세련되게 제조 공정하는 것은 물론, 경쟁적으로 광고하는 등 거대한 산업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3. 동반 중독 자극이 다량으로 생산되기 때문이다.

중독을 일으키는 자극은 무리 효과를 가진다. 개인에게 하나의 중독적 기제가 활성화되면 다른 중독적 기제에도 수용성이 높아져 중독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다양한 중독적 기제를 무더기로 수용하며 산다. 아이들은 게임이나 인터넷, 휴대전화 등의 매체중독, 성인남녀는 술, 담배 등의 물질중독, 반복적인 쇼핑 등의 구매충동 등을 가지고 있고 하나는 다른 하나를 연이어 탐닉케 하는 중독의 퍼레이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미각중독은 어떤 위험성을 가지고 있을까?

1. 성인병의 주범이다.

중독음식이 가진 위해는 고칼로리를 유발한다는 측면에서 위험하다. 미국에서 15년간 관찰한 결과에 의하면 패스트푸드를 자주 먹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체중이 4.5kg 더 늘었다. 인슐린 저항성에 노출될 확률도 2배 이상 증가했다. 미각중독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음식인 패스트푸드의 단맛, 짠맛, 고소한 맛 등은 미각중독을 일으켜 본인의 적정량보다 더 많은 음식을 먹게끔 한다. 결국 고칼로리 음식을 과다섭취하게 하여 인슐린 저항성을 일으킴으로써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지방간 등의 대사질환과 더불어 관절염, 척추질환 등의 근골격계 질환, 대장암, 유방암 등의 식이의존성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2. 편식을 습관화시켜 적정성장과 신체면역력을 저하시킨다.

아이들의 맛 중독은 특정 음식에 대한 기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특정음식에 대한 기피는 해당음식이 탐닉음식보다 맛의 만족감이 떨어져서 거부하면서 일어난다. 해당음식을 먹게 되었을 경우 일정량 이상을 먹을 수도 없다. 양이 허용되는 한에서 탐닉음식을 더 먹기 위해 특정음식을 거부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거부되는 대표적인 음식이 바로 채소와 물이다.

미각중독을 가진 사람이 채소를 싫어하는 이유는 건전한 맛이 주는 밋밋함도 있지만 오랫동안 씹어야 한다는 섬유질의 특성에도 기인한다. 즉 빨리 맛을 본 다음 삼켜서 위를 만족시켜야 하는데 섬유질은 빨리 먹기에는 대부분 부적합하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비만으로 진료 받는 여성들에게 미각중독이 많은데, 이들에서 자주 나타나는 특징이 커피를 선호하지만 물을 많이 먹지 않는다. 미각정화훈련을 위해 물마시기를 시켜보면 다이어트 중 가장 힘든 것이 물 마시기라는 것이다. 그만큼 미각중독은 강력한 학습효과를 가지고 있다.

3. 식사속도를 빠르게 하여 과식을 초래한다.

빠르게 먹을수록 비만으로 갈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대뇌의 도파민수용체는 급속한 만족을 요구하므로 미각중독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빨리 먹는다. 문제는 빨리 먹으면 렙틴이 관여하는 포만중추는 항상 만족의 기회를 박탈당하므로 항상 배고픈 욕구불만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 천천히 먹기를 교육시키는 것이 식사습관교정의 가장 중요한 방법론 중의 하나인 이유가 천천히 먹다보면 탐닉음식이 주는 재빠른 보상강도가 점차 약해지기 때문이다. 적어도 15분 이상 식사속도를 늘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4. 반복적인 저혈당을 일으켜 집중력저하와 성격과민을 만든다.

혈당롤링현상은 단맛중독의 대표적인 신체반응기전이다. 혈당지수가 높은 음식이나 탄수화물음식을 단기간에 과량섭취하면 이를 대사시킬 인슐린 호르몬이 다량 분비된다. 과다 분비된 인슐린으로 신체는 일시적인 저혈당상태에 빠진다. 저혈당은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불안감을 야기 시킨다. 저혈당은 다시 탄수화물 갈구현상을 야기하여 탄수화물 폭식을 부추긴다.

이렇게 고혈당과 저혈당을 오가다보면 탄수화물 의존성이 강력해질 뿐 만 아니라 심신의 불안감과 스트레스 또한 증가된다. 즉 마약이나 니코틴 중독자처럼 미각중독을 가진 사람들은 우울증 및 잦은 기분변화, 공격성장애나 반항성장애와 같은 인격 장애를 가지게 될 우려가 크다.

미각중독 자가진단법

□ 하루라도 과자, 빵, 인스턴트커피, 라면, 고기 등의 탐닉음식을 안 먹으면 집중이 안되고 일을 할 수가 없다.

□ 스트레스를 받으면 초콜릿, 과자, 특정 육류 등의 탐닉 음식을 먹어야 해소 된다.

□ 예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탐닉 음식을 먹고 있는데도 만족스럽지 않다.

□ 습관적으로 탐닉 음식을 찾거나 옆에 있으면 배가 불러도 꼭 먹는다.

□ 탐닉음식을 한번 먹기 시작하면 남기지 않고 배부를 때까지 먹는다.

□ 주위 사람이 특정 탐닉음식을 너무 많이 먹는다고 지적하거나 스스로 군것질를 많이 한다는 자책감을 느낀 적이 있다.

□ 항상 다이어트를 하지만 금방 다시 살이 찐다.

* 이 가운데 3개 이상 항목에 해당되면 미각중독이 있다고 볼 수 있음

다행스럽게도 미각중독은 당뇨나 고혈압처럼 치료를 위해 수많은 노력과 시간을 요구하는 질환은 아니다. 마음을 먹고 노력하면 짧은 기간에 교정할 수 있다. 미각중독에 길들여진 입맛을 고치려면 매우 전략적이고도 세심한 훈련이 필요하다. 현대사회의 환경자체가 미각중독 자체를 양산하고 미각중독의 확산에 우호적이기 때문이다.

[미각중독을 완화시키는 입맛훈련]

1. 인지 재구성 = 미각중독은 대뇌피질의 학습경험을 바탕으로 공고화되므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본인의 탐닉음식이 입만 즐거운 중독적 음식인지 영양까지 겸비된 건강식인지를 생각 한다.

2. 버티기 = 담배를 끊을 때 10초만 다시 생각할 시간을 가지라고 하듯이 탐닉 음식을 먹을 때는 한 번 더 버티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다.

3. 식사 순서 재조정 = 미각중독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자극적인 음식을 먼저 먹는다. 순서를 바꾸어 젓가락을 먼저 샐러드나 나물 등의 입맛 인내심을 길러주는 섬유질부터 먹도록 한다.

4. 입맛훈련 = 우선 입안에 머물고 있는 뇌에 각인된 맛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필요하다. 식사를 한 뒤에는 음료수를 마시더라도 양치질로 치아와 혓바닥까지 닦아낸다. 입 안이 심심할 때마다 물을 마시고, 커피를 마신 뒤에는 반드시 물 2컵으로 보상한다. 씹는 자극이 필요할 때는 단맛이 없는 채소나 무가당 껌을 선택한다. 그리고 문제음식 제거생활을 실천한다. 커피 중독이라면 기간을 정해놓고 5일간 커피를 먹지 않는 식이다. 음식의 풍미를 느끼도록 조리단계에서도 신경을 쓴다. 조리 단계에서 간을 약하게 하는 대신 국이나 찌개에 들어가는 채소를 2배로 늘린다. 국물은 먹지 않고 김치 깍두기는 물에 씻어먹는다.

5. 보상 = 본인이 생각하기에 맛이 없지만 건강에 좋다고 생각한 음식을 먹거나 탐닉음식에 대한 유혹을 참아낼 때 마다 스스로를 칭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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