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구하라” 거리에 내걸린 솥단지

이재태의 종 이야기(36)

구세군의 자선냄비와 따뜻한 종소리

어린 시절 주위에서 들을 수 있었던 그 많던 종소리는 이제 기계적인 멜로디나 녹음된 소리로 대치되었다. 아침을 알리던 탁상시계 종소리나, 전화기의 ‘따르릉’ 소리, 성당의 저녁 미사를 알리는 은은한 종소리도 듣기 힘들어진 것이다. 우리의 일상에 녹아있던 추억의 종소리 중에서 지금까지 남은 것은 구세군 연말 자선냄비의 종소리 정도가 아닐까?

연말에 자선냄비 종소리에 대한 언론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구세군 사관들이 종을 흔들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초대할 때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종을 흔드는 속도라고 한다. 너무 빨리 흔들면 골목길을 지나가던 새벽 두부장수들의 종소리처럼 무언가를 재촉하는 소리가 되고, 너무 느리면 장례행렬의 상여를 인도하는 요령(搖鈴)소리처럼 들린다고 한다. 그 중간의 빠르기로 흔들어야 된다는 것이었다.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 구세군 자선냄비는 연말연시에 집중적으로 설치되어 모금 활동을 한다. 자선냄비는 1891년 12월 샌프란시스코의 구세군 사관 조셉 맥피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다. 그는 숙식을 해결하기 어려웠던 도시 빈민들과 갑작스런 재난을 당하여 슬픈 성탄을 맞이하게 된 천여 명의 난민들을 돌봐야 했다. 항상 그를 괴롭히던 재정적인 어려움을 항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하였다. 그러던 중 과거 영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사용했던 자선냄비를 이용해 보자는 생각을 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의 성의를 십시일반 모아 단 시간에 제법 많은 금액을 모금할 수 있던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그는 오클랜드 부두의 거리에 나가서, 주방에서 사용하던 큰 쇠솥을 삼각 다리 거치대에 걸쳐두었다. 그리고 그 위에 “이 국솥을 끊게 해 주세요.”라고 써 붙였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큰 솥에 동전과 지폐를 채워 넣기 시작하였는데, 이 모금액들은 성탄절에 불우한 이웃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할 만큼의 충분한 기금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동전이나 소액의 지폐들이 모였으나, 마음으로 지원하는 시민들의 수가 점차 늘어났고, 사람들은 자기가 아끼던 반지나 시계를 모금함에 투입하기도 했다. 어느 구세군 사관은 자기가 경험한 가장 인상적인 기부품은 어느 노인이 넣고 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완전한 형태의 ‘금니(어금니)’였다고 한다.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노심초사 애쓰던 한 구세군 사관의 따뜻한 마음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오늘날에는 매년 성탄 시즌이 되면 100여개 나라에 구세군 자선냄비가 걸린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1928년 12월 15일 서울 도심에 처음으로 자선냄비가 설치되어 기금을 모금하기 시작하였고, 한국전쟁이 끝난 후 1954년 광화문에 다시 등장 한 이후부터는 매년 쉬지 않고 구세군 자선냄비가 활동하고 있다. 2014년도의 연간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액은 역대 최대인 68억 원이 넘었다.

구세군의 대표적 상징이 된 자선냄비 옆에는 제복을 입고 종을 치는 구세군 사관들을 볼 수 있다. 자선냄비와 종소리는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몸이 된 것이다. 종소리를 통하여 따스한 인류애가 하늘로 퍼져나가며, 이웃사랑의 메시지가 우리 사회 깊숙이 전달되는 것이다. 자선냄비에서 종을 치는 사람들은 구세군 사관 외에는 모두 자원봉사자들이다. 미국구세군은 자선냄비가 설치된 한 군데의 장소에는 보통 3명, 최대 5명의 인원이 봉사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성인들이 종을 울리며 냄비를 관리하는 봉사활동을 하나, 부모나 보호자를 대동하면 14세 이하의 어린이들도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 16세 이상의 청소년은 부모나 보호자의 승인을 받아오면 봉사활동이 허락된다. 이들은 자선냄비 앞에서 종을 울리며 ‘메리 크리스마스’ 또는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하는 것이다. 종을 울리는 봉사는 최대 2시간 마다 교대를 하는데, 봉사활동 중에는 자신이 마련한 사탕이나 사적으로 마련한 선물을 기부자에게 주는 것은 철저하게 금지되어 있다. 자선냄비는 봉인되어있어 책임을 진 구세군 사관만이 개폐를 할 수 있으며, 봉사자들은 이에 대한 재정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다. 구세군은 가장 보수적인 기독교의 교단인 만큼, 교회에서 예배를 보는 일요일에는 원칙적으로 자선냄비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

18,19세기 개신교에서는 개인주의적 신앙에서 탈피하고, 성령에 기초하여 그리스도를 헌신적으로 따르려는 개인 구원과 사회적 약자를 자비로 도와주는 사회 구원의 균형을 맞추려는 복음주의 운동이 활발하였다. 구세군 운동도 그 중 하나였다. 구세군(救世軍, The Salvation Army)은 1865년 감리교 목사였던 윌리엄 부스와 그의 부인 캐서린 부스가 영국 런던에서 복음의 전파, 신앙 공동체 형성, 빈곤과 악을 타파하고 사회를 개혁하자는 취지로 설립한 보수적인 성향의 기독교 교단이다. 어려서 가난하게 자랐고, 전당포에서도 일한 적도 있었던 그는 젊어서부터 교회에서 명설교자로 이름을 날리던 사람이었다.

윌리엄 부스는 불평등한 세상과 가난한 자들의 고통에 대한 아픔을 느꼈다. 그러나 그가 런던의 빈민지역에서 설교를 하고 그들을 교회로 인도하면 중산층 신도들은 ’술 취한 부랑자들을 교회에 들인다‘며 이들의 출입을 막았다. 사회의 아픔을 외면하는 교회의 현실에 절망한 윌리엄 부스는 기독교인이라면 어려운 이웃들에게 빵과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결심을 하고, 구세군을 창설하였다. 그는 구세군을 통하여 박애의 정신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섬기는 사회봉사 모두 실천하려고 한 것이다. 기독교 정신에 따른 사회선교를 강조하는 구세군 운동은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다. 특히 자본주의의 발달로 저임금으로 착취당하면서도, 인간의 권리는 누리지 못하던 많은 노동자들이 구세군 운동에 호응하였다.

윌리엄 부스는 복음을 전하면서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는 거룩한 하나님의 군대와 같은 정신력과 조직이 필요함을 실감하게 되었다. 처음 ‘기독교선교회’로 불렸던 그들의 모임은 전도 활동을 시작한 지 10년이 지날 즈음 ‘세상을 구원하는 군대’라는 의미의 ‘구세군’이 되었다. 구세군 조직은 대부분 군사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교회를 영문 (營門. Corps)이라 하며 군대의 주둔지와 같은 기반으로 한 지역 사회의 선교·봉사를 목적으로 한다. 목회자는 ‘사관’이라 하고, 위관급 사관인 부위, 정위와 영관급인 참령, 부정령, 정령, 그리고 장성급인 부장과 최고 책임자인 대장의 계급으로 구분된다. 구세군에서는 일반 교인을 ‘군우’라 하고 세례 교인을 ‘병사’라 부른다. 일반 병사도 직분에 따라 계급이 있는데, 정식 신자가 되는 것을 ‘입대’라고 한다.

윌리엄의 아내 캐서린 부스도 열정적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하며, 남편을 받쳐준 큰 기둥과 같은 사람이었다. 그녀 자신도 여성 설교자가 되어 열정적인 설교를 하여 신도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여성의 인권이 무시되었던 시대였으나, 구세군 교단은 선진적인 남녀 지위에 관한 제도를 갖추었다. 그 당시 대부분의 교단에서는 여성에게는 ‘목사’는 물론이고 ‘장로’도 허용되지 않았으나, 구세군 헌장에는 남녀의 구별 자체가 없었다. 여성도 구세군의 최고 계급인 ‘대장’이 될 수 있었다. 캐서린은 ‘아동성매매 금지법안’을 촉구하고, 열악한 성냥 공장 노동자들의 삶의 질 개선에도 적극 나섰다. 당시 유럽의 다른 나라들은 성냥의 재료로 비싼 적린이 사용되고 있었으나, 영국에서는 저렴하나 인체에 매우 유해한 황린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녀는 황린을 금지하자는 청원을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윌리엄은 “여러분 집 정원 바로 창문 앞에 40여 년간 고이 기르던 나무가 뜨거운 햇빛을 가리는 그늘이 되어주었다. 그 꽃으로 여러분의 생활을 아름답게 해고, 찬양해 주며, 그 열매로는 여러분의 생존을 지탱해 주던 바로 그 나무가 돌연히 정원사 손에 의해 여러분 앞에서 도끼로 잘려나갔다면 과연 여러분의 마음은 어떨까요?”라며 부인을 추도하였다. 그는 아내가 죽은 다음 해에 적린을 사용하는 공장을 설립하여 성공적으로 운영하였고, 이후 영국에는 황린을 사용하는 성냥공장이 없어졌다.

구세군의 로고는 ‘성령의 피와 불꽃(Blood and Fire)”이다. 깃발에는 십자가를 중심으로 바깥으로 퍼져나가는 성령의 불꽃. 그리고 복음의 진리, 영적인 무기가 그려져 있다. 붉은 색은 그리스도의 피, 노란색은 성령의 불꽃, 푸른색은 하나님의 순수함을 의미한다고 한다. 구세군 사관과 병사는 세상을 구제하는 전쟁에 참가하고 있는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19세기부터 군대식 제복을 착용하고 있다. 종교적으로 보수적 색채인 구세군은 20세기 후반부터는 채용이나 교단의 사업에서 성적 소수자들을 차별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러나 구세군은 동성애에 반대하고 있으며, 이것은 신학적인 문제이므로 여전히 타협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는 1908년 10월 영국인 호가드 정령등의 선교사와 여사관이 파송되어 한국 선교가 시작되었다. 2012년도 보고서에는 한국 구세군에는 256개 영문(교회)을 포함한 649개의 산하 시설과 기관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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