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에게… 혼자서 치닫는 절정

배정원의 Sex in Art(5)

혼자 하는 섹스 – 에곤 쉴레

남자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다. 그의 몸속 깊은 곳으로부터 퍼져나가는 성적 열기 탓인지 그의 두 귀는 붉게 달아올라 있고, 초점 없이 크게 뜬 눈은 지금 그의 정신이 현실세계에 머물러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 남자의 손은 성기를 쥔 채 한참 자위행위를 하는 중이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성적 환타지에 몰입되어 오르가즘을 향해 달려가는 중인가 보다.

그리스 시대에는 여자보다 남자의 벗은 몸이 완전한 미를 보여주는 대상이었다고는 하지만, 성에 대한 도덕성이 엄격해지고 여자의 몸이 금기의 대상으로 들어선 때부터 벗은 여자의 몸을 그리기가 어려워졌다. 하지만 아름다운 여자의 누드를 감상하고 소장하고 싶었던 부유한 후원자들의 요구가 이어졌고, 화가들은 그 나름대로 누드를 그리고 싶은 욕구가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누드에 대한 갈망’이 맞물려 많은 서양회화 작품이 신화적 모티브를 이용하거나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여자의 벗은 몸을 ‘엿보기’의 형식으로 그려져 왔다.

여자의 벗은 몸을 보여주는 그 많은 그림들에 비하면 남자들의 누드는 그리스 시대 이후로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화가들은 자신의 성적 반응이나 남성성을 드러낸 그림을 ‘보여주기’의 목표보다는 자신의 성적 각성이나 남성성의 부각을 위해 자화상의 형식을 빌었다. 자신의 자위행위를 묘사한 피카소나 에곤 실레의 그림이 대표적이다.

이 그림은 클림트와 함께 활동한 오스트리아의 표현주의 화가이자 분리파의 핵심 멤버였던 에곤실레(1890~1918)의 ‘수음하는 남자’로, 작가의 자화상이다. 에곤실레는 클림트가 적극적으로 후원하였으며, 그의 친구이며 제자이기도 했다. 클림트가 성을 환상적으로 완성에 가까운 이미지로 아름답다 못해 화려하게 표현했다면 에곤 실레는 인간의 육체를 병적으로 뒤틀리게 그러나 생생한 감정이입을 느끼도록 표현했다. 또 노골적인 어린 소녀들의 누드나 성행위들을 통해 드러내기도 했다.

실레에게 성은 아름답고 고결한 것이라기 보단 추악하며 죽음과 고통을 이끄는 공포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는 매독에 걸려 고생하던 그의 아버지로부터 비롯된 공포였다. 매독으로 인해 불구자가 된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분노를 가족들에게 전가하는 폭력가장이었기 때문이다.

실레는 방탕한 아버지를 둔 아들처럼 자기의 젊은 시절을 성적인 무절제 속에 보낸다. 그는 빈에서 어린 소녀 모델들과의 스캔들로 살던 곳에서 추방당하기도 한다, 심지어 1912년에는 어린 소녀들을 대상으로 부도덕한 그림을 그렸다는 이유로 투옥된다.

에곤 실레의 그림들은 관능적이라기 보단 죽음의 공포와 고립, 실존에 대한 절절한 외침 같다. 실레의 성과 죽음에 대한 묘사는 너무나 솔직하고 노골적이고 생생하며, 자극적인 에로티시즘으로 표현된 그의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자기도 모르게 그의 감정에 몰입하게 된다.

실레는 에디트 하림스와 결혼하면서 점차 경제적,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게 되고, 화가로서의 명성도 얻는다. 하지만 그 즈음 불어 닥친 스페인 독감으로 아내와 그토록 기다리던 아들을 잃고 자신도 3일후 28세의 젊은 나이로 유명을 달리 했다.

자위행위는 ‘혼자 하는 섹스’ 즉 스스로 자신의 성기를 만져서 성적 흥분과 만족을 이끌어 내는 행위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자위행위를 통해 성을 인식하고 자신의 성감을 개발해 간다.

결혼한 여자까지 따져도 60% 남짓한 여자들이 자위행위를 하는 것에 비하면 남자들은 거의 자위행위를 한다. 혹자는 ‘남자의 97%는 자위행위를 하고 나머지 3%는 거짓말을 한다’고 했다. 모든 남자들이 다 자위행위를 하는 것처럼 말하곤 하지만, 실제로 20% 정도의 남자는 자신의 종교적, 윤리적 가치관 때문에 자위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스스로 자신의 쾌감을 찾아가는 자위행위는 ‘좋은 섹스의 연습’ 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문화적으로는 오랫동안 금기시하고 이를 죄와 연결시켜 이야기 해왔다. ‘자위행위를 하면 키가 안자란다’, ‘자위행위를 하면 눈가에 다크서클이 생긴다’ 등의 속설이 생겨났는가 하면, 서양에서는 ‘자위행위를 하면 좋아하는 소녀가 임신을 한다’, ‘손바닥에 털이 난다’며 겁을 주기도 한다.

심지어 귀족 자제들의 교육기관인 사립기숙학교에서는 잠잘 때 장갑을 끼게 하고 손을 이불 밖으로 내밀고 자게 하거나, 더 엄격하게는 음경에 끼워 발기되면 피가 날 수도 있는 철제로 만든 ’음경고리‘를 사용하기도 했다니 자위행위에 대한 두려움과 금기가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고대로부터 역사를 더듬어 봐도 자위행위는 금기의 대상이었는데, 이것은 아마도 인간의 수가 부와 안전을 보장했던 시대에 생식을 위한 생명의 씨가 낭비되는 것을 두려워했던 탓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인간의 문명이 점점 발달하고, 많은 일을 컴퓨터나 기계가 대신 해냄에 따라 요즘은 성의 기능에 있어서 ‘생식’ 보다는 ‘즐거움’에 더 비중을 두게 되었고, 자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자위행위의 미덕은 무엇보다 자신의 몸을 친밀하게 느끼게 하고, 남자의 조루나 여자의 오르가즘 각성장애에 좋은 치료법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에 대해 보수적이거나 무지해서 오르가즘의 느낌을 모르는 경우, 여자들에게 성치료의 일환으로 권유되고 있다. 또 파트너가 없어도 자신의 성적 욕구를 채워 줄 수 있고, 나이든 이들에게 좋은 대안이 되기도 한다. 자위행위를 하면, 성적인 긴장을 풀고(성적 긴장이 쌓이면 자신도 모르게 거칠어지게 된다), 육체적인 쾌락을 스스로 달성하며, 잠을 잘 잘 수 있다.

자위행위하면 한창 성적 호기심과 욕구가 왕성한 청소년을 떠올리지만, 사실 성인 남자, 결혼한 남자들도 자위행위를 많이 한다. 특히 이혼한 독신남녀들이 자신의 성욕을 풀기 위해 많이 한다고 한다. 요즘은 자위행위에 대한 우려가 하나 더 늘었는데, 자극적인 음란물을 보며 자위행위를 하고 아내와는 섹스를 하지 않는 남편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들의 섹스 환타지는 주로 시각적인 자극에서 비롯되는데, 포르노는 그것을 필요이상으로 만족시켜줄 뿐 아니라 지나치게 각성시킨다. 이에 따라 차츰 익숙한 아내와의 접촉으로는 더 이상 성적 흥분을 느끼지 못하는 남편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부부간 섹스리스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이유다.

에곤실레의 ‘수음하는 남자’는 자신의 머릿속 성적 이미지를 동력으로 충분히 절정에 이르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현재의 인스턴트적 자극에만 익숙해진 당신의 성적 환타지는 안녕하신지?

 

글 : 배정원

(성전문가, 애정생활 코치,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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