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사건 아이에도 부모에도 트라우마

네 살배기 딸을 둔 주부 이모씨는 최근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만 했다. 조수석에 아이를 태우고 가다 난생처음 교통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저속 주행 중 일어난 사고라 모두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사고가 난 지 한 달 반이 넘도록 이씨는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사고처리는 잘 됐는데, 딸이 평소와 달라졌기 때문이다. 사소한 일에 칭얼거리는 것은 물론, 혼자 잘 먹던 밥도 먹여달라고 조르는데다 사고 후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자다 깨서 우는 횟수가 많아졌다. 자기표현이 서툰 나이다보니 속을 알 길 없는 엄마는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다.

갑작스런 교통사고 후 아이의 이 같은 행동 변화는 트라우마, 즉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증상일 수 있다. 사고 후 평소와 다른 아이의 행동, 특히 교통사고와 관련된 내용이 놀이를 통해 나타나는지 눈여겨봐야 한다. 차가 서로 부딪히는 놀이를 반복적으로 하거나, 사고 후 처리 과정을 재현하는 놀이를 한다면 PTSD인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담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의 경우 새로운 분리불안이나 공격성, 외상과 분명한 관련이 없는 두려움 등을 보일 때도 많다.

교통사고도 문제지만, 아동학대로 인한 피해는 더욱 심각하고 폭넓다. 최근 인천에서 발생한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의 경우 피해 아동과 이를 지켜본 아이들은 물론, 보호자인 부모에게도 PTSD를 안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부모로서는 믿고 자녀를 맡긴 어린이집에 대한 신뢰와 자녀가 폭행당한 사실을 한동안 몰랐다는 자책감이 동시에 무너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어른의 경우 PTSD는 사고 후 관련 장면을 반복적으로 떠올리거나 악몽을 꾸고, 사고와 관련된 인지나 감정이 부정적으로 변하거나 회피하는 등의 증상이 1개월 이상 지속될 때 진단할 수 있다. 이번 인천 어린이집 학대사건과 관련해서도 보건복지부는 정신건강증진센터와 위탁 의료기관, 아동보호 전문기관을 통해 정신적 충격을 받은 피해아동과 목격아동, 부모 등에 대해 심리지원을 즉각 실시하기로 했다.

국립교통재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한창태(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교수는 “사건발생 후 곧바로 PTSD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수개월에서 수년 후에도 이런 장애를 겪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에 가급적 사고 후 일상에서 기능적 변화가 생겼다면 조기에 PTSD에 대한 진료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특히 나이가 어리거나 다른 질환을 동반한 경우 증세가 더 안 좋아 질 수 있으므로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배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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