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도 유전자 맞춤형 치료… ‘지오트립’ 급부상

 

폐암은 세계적으로 발생률이 가장 높은 암이다. 지구촌에서 연간 160만명, 국내에서도 해마다 2만명씩 폐암 환자가 생기고 있다. 예후도 매우 좋지 않다. 전체 암 사망률의 18%를 차지해 가장 높은 사망률을 기록하고 있다. 폐암은 크게 암세포의 크기와 형태에 따라 소세포폐암과 비소세포폐암으로 구분된다. 비소세포폐암은 소세포폐암보다 비교적 성장 속도가 느려 상대적으로 치료하기가 쉽다. 하지만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54%는 암이 진행된 상태인 4기에 발견돼 완치하기 힘들다. 이들 환자군의 5년 생존률은 4%에 불과하다.

비소세포폐암 표적치료제 등장… 환자 생존률 개선

21세기 이후 비소세포폐암 치료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EGFR) 등 비소세포폐암을 유발하는 특정 유전자의 변이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전까진 비소세포폐암의 발암 유전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EGFR 등 특정 발암 유전자의 변이를 표적으로 한 이른바 표적항암제들이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치료제들은 주로 비흡연자와 여성, 선암 환자에게 효과가 크며, 부작용도 경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세포폐암의 한 종류인 선암은 폐암 가운데 크기가 비교적 작은 세기관지 상피에서 발생한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여성이 남성보다 폐암 발생에 더 취약하다. 여성 흡연자는 남성 흡연자보다 폐암 발생률이 배나 더 높고, 비흡연 여성의 폐암 발전 위험도 남성보다 높다. EGFR 돌연변이는 폐선암 환자의 10~50%에서 발견된다. 특히 아시아인과 비흡연 여성 환자에게서 발현율이 높다. EGFR 변이는 대부분 변이에 영향을 미치는 단백질인 엑슨(EXON) 19와 엑슨 21의 결실에 집중돼 있다.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김상위 교수는 “폐암은 하나의 질환이 아닌 여러 유전자형을 갖는 서로 다른 질환”이라며 “각 유전자형에 따른 표적 치료제가 개발되고 있으며, EGFR 치료제가 선도적”이라고 했다.

EGFR 변이의 발견은 진행성 폐암 치료효과를 개선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표적 치료제가 나오면서 종양세포에 선택적으로 반응해 부작용을 감소시켰다. EGFR 등 특정 유전자에 대한 맞춤치료가 가능해지면서 20세기 이전까지 채 1년에도 미치지 못했던 폐암 환자의 생존율은 현재 30개월 이상까지 늘었다. 김상위 교수는 “외국에 검체를 보내면 DNA 염기서열 순서가 나와 이를 통해 병원에서 유전자 변이를 확인한 뒤 바로 처방하는 날이 멀지 않았다”고 했다.

국내에 허가된 1세대 EGFR 표적 치료제로는 아스트라제네카의 ‘이레사(성분명 게피티닙)’와 로슈의 ‘타쎄바(성분명 엘로티닙)’가 양대산맥이다. 이들 치료제들은 EGFR을 활성화시키는 타이로신 키나아제(TK)라는 세포 내 단백질을 차단해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한다. 이러한 가운데 올해 초 베링거인겔하임이 ‘지오트립(성분명 아파티닙)’을 국내 출시하면서 진료 현장의 기대를 높이고 있다.

차세대 치료제 ‘지오트립’… 전체생존기간 및 폐암 증상 개선

지오트립은 작용기전에서 1세대 EGFR 치료제들과 차별화됐다.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제로서는 최초로 비가역적 어브비(ErbB) 단백질군 차단제로 허가를 얻었다. 세포막에 존재하는 어브비 단백질군은 암세포의 증식과 분화 등 신호전달에 관여한다. 1세대 치료제들이 EGFR에 탈착하며 억제했다면, 지오트립은 EGFR을 비롯한 어브비 수용체에 떨어지지 않고 계속 붙으면서 신호전달을 완전히 억제하는 동시에 내성의 위험도 현저히 줄였다. 1세대 치료제들은 새로운 이차성 돌연변이로 인해 획득 내성이 생기는 것이 한계였다.

지오트립의 이러한 효능은 LUX-Lung3, LUX-Lung6 등 3상 임상연구를 통해 입증됐다. 가장 흔한 유형인 엑슨19와 엑슨21의 결실로 인한 EGFR 변이 비소세포폐암 환자에서 지오트립 치료군은 기존 화학요법 치료군보다 전체 생존기간을 3개월 더 연장시켜 27.3개월을 기록했다. 또한 무진행생존기간도 기존 화학요법 치료군(6.9개월)보다 7개월 정도 긴 13.6개월까지 개선한 것이 확인됐다. 무진행생존기간은 종양이 성장하지 않은 채 환자가 생존하는 기간을 뜻한다. 베링거인겔하임 의학부 김미영 상무는 “아시아인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40%는 EGFR 변이를 보인다”며 “지오트립 3상 임상연구인 LUX-Lung3에는 아시아인이 70% 이상 포함됐고, LUX-Lung6는 한국과 중국, 대만 등 아시아인만을 대상으로 진행됐다”고 밝혔다.

지오트립과 1세대 치료제인 타쎄바를 직접 비교한 3상 임상시험에서도 지오트립은 비교우위의 효능을 보였다. 베링거인겔하임에 따르면 화학요법으로 1차 치료에 실패한 진행성 편평세포 폐암환자 800명을 상대로 지오트립과 타쎄바를 직접 비교한 결과(LUX-Lung8), 지오트립 치료군에서 무진행생존기간이 개선됐고, 질병 진행 위험도 18%까지 감소됐다.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강진형 교수는 “기침과 호흡곤란, 통증 등 폐암 관련 증상을 개선시키는 등 환자들의 삶의 질 개선에서도 지오트립은 우수했다”며 “부작용도 예측 가능해 이상반응으로 치료를 중단한 경우가 극히 드문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치료 효능을 인정받아 지오트립에는 지난 10월부터 보험급여가 적용됐다. 국내에 출시된 지 불과 8개월 만이다. 더크 밴 니커크 베링거인겔하임 사장은 “지오트립의 급여 적용은 표적 항암제 가운데 최단기간에 이뤄졌다”며 “한국 정부와 베링거인겔하임이 폐암 환자의 고통을 덜기 위해 함께 노력한 결과”라고 자평했다.

 

    배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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