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승리…성장호르몬 20년만에 반값

 

“키가 커지면서 자신감이 생기고, 어떤 일이든 거뜬히 잘 해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키가 작았을 때에는 친구들이 ‘땅꼬마’라는 말을 해서 조금 슬펐는데, 요즘에는 (친구들이) 이런 말을 안 해 슬픈 것도 없어졌지요.”

초등학생 윤모군(13세)은 성장호르몬이 결핍된 저신장증 환아다. 하지만 또래보다 훨씬 작은 키는 이제 과거사가 됐다. 성장호르몬 치료를 받고 키도, 자신감도 되찾았다. 저소득 가정인 윤군의 집에서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성장호르몬 치료가 고가라 엄두조차 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치료비를 댄 것은 LG복지재단이었다. 지난 1995년부터 대한소아내분비학회의 추천을 받은 저신장증 환아의 성장호르몬 치료를 1년간 무상으로 지원해왔다. 지난해까지 윤군과 같은 저소득가정 저신장증 환아 720여명이 이 재단의 도움을 받았다. 대한소아내분비학회 초대회장을 지낸 가톨릭의대 이병철 명예교수는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치료시기를 놓치는 아이들이 아직도 많다”고 했다.

과거 성장호르몬은 초고가 치료제였다. 수입품에 전량 의존하던 1980년대에는 회당 투약가가 10만원대에 이르렀다. 당시 대기업 신입사원의 월급이 50만원이었으니, 주당 3회씩 투약하면 보름 만에 월급봉투가 바닥날 만큼 비쌌다. 가격하락을 이끈 것은 경쟁력 있는 국산 성장호르몬이었다. LG생명과학이 1993년에 국내 최초 국산 성장호르몬인 유트로핀을 출시한 뒤 회당 투약가는 4만원대로 낮아졌다.

유트로핀의 가격 경쟁력은 품질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했다. 세계 최초로 효모균을 활용해 만들어 대장균으로 만든 기존 수입품보다 안전했고, 고농도 생산기술도 뒷받침됐다. 유트로핀은 현재 국내 성장호르몬 치료제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양대 의대 소아청소년과 신재훈 교수는 “과거 환자를 위해 어떻게든 성장호르몬의 단가를 낮춰야 한다는 기대를 많이 했다”며 “유트로핀은 그런 의료진의 바람과 제약사의 지원이 맞아떨어져 폭발적인 결과를 낸 경우”라고 했다.

그래도 성장호르몬 치료제의 가격부담은 여전하다. 비급여의 경우 검사비를 포함한 치료비가 연간 1천만원 정도다. 보통 성장판이 닫힐 때까지 꾸준히 주사를 맞아야 효과가 있기 때문에 치료기간이 1년 이상으로 길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특발성 저신장증 아이들은 급여 혜택을 받을 수 없다. 현재 급여 대상은 성장호르몬 결핍증과 만성신부전, 터너 증후군, 프래더윌리증후군으로 인한 저신장증이다. 급여가 적용되면 비용 부담은 연간 3~4백만원 수준이다. 최근 자궁 내 성장지연으로 저신장증을 보이는 부당경량아도 급여 대상에 포함됐다.

    배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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