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힘… 강연 뒤 환자들 치료의지 부쩍

 

7일 오후 서울시립 서북병원. 결핵병동이 자리한 동관 4층 휴게실에서 결핵 환자들을 대상으로 강의가 한창이다. 으레 병원에서 마련하는 건강강좌를 기대하면 오산이다. 지혜로운 삶을 주제로 철학 강좌가 진행됐다. 1시간 동안 이어진 강연 뒤에는 힐링댄스가 마련돼 진지했던 환자들의 얼굴에 웃음꽃을 피웠다.

최근 기업을 중심으로 불기 시작한 인문학 열풍이 병원까지 번졌다. 기업이 새로운 가치 창조를 위해 인문학에 접근한다면, 병원은 보다 나은 치료효과가 목적이다. 서북병원은 지난해 공공병원으로서 인문학을 처음 도입해 주목받고 있다. 노숙인 결핵환자들의 치료 의지를 북돋워주기 위한 선택이었다. 실제 노숙인 결핵환자들은 치료와 자활에 대한 의지가 부족하다. 최근 3년간 재입원률이 평균 40% 이상일 만큼 치료 후 관리에 소홀하다.

인문학의 향기를 맡은 환자들에게 변화가 생겼다. 철학과 역사, 예술사, 글쓰기 등 다양한 인문학 강좌를 접하면서 자기효능감이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자기효능감은 성공적인 문제 해결에 대한 자신의 신념이나 기대감을 뜻한다. 서북병원에 따르면 지난해 반기별로 주2회씩 3개월간 진행된 인문학 강좌에 참여한 65명 중 4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강좌 수료 후 자기효능감이 30% 이상 향상됐다. 세부적으로 보면 자존감 33%, 행복감 34.5%, 대인관계 32%, 자기역량강화 31%를 기록했다. 프로그램 만족도도 89%로 매우 높았다.

서북병원은 올해 회복탄력성과 치료효능감을 평가항목에 반영해 참가자들의 자가역량지수를 조사하고 있다. 지난 상반기에 인문학 강좌를 수료한 35명의 결핵환자들은 자기조절능력 14.1%, 대인관계능력 13.2%, 자존감 9.2%를 기록해 평균 10% 이상의 회복탄력성을 보였다. 서북병원측은 “노숙인 결핵환자들의 정서적 문제를 치유하고, 의료적 접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삶과 숨을 회복하는 데 인문학 강좌가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인문학은 환자뿐 아니라 의사들에게도 필요한 부분이다. 최근 화두인 환자 중심 의료의 교두보가 인문학에 있다는 의학계 내부의 자각이 커지고 있다. 진료도 환자를 우선할 때 치료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광협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의학이란 자연과학의 힘을 빌린 인문학”이라고 단언했다.

의학계는 인간적 존엄을 갖춘 전인적 치료를 실현하기 위해 의대생 때부터 인문학적 소양을 길러주려 노력하고 있다. 의대생들도 이에 대체로 공감하는 편이다. 황건 인하대 의대 성형외과 교수가 최근 ‘문학과 의학’에 발표한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의대에서 의료인문학을 가르쳐야 한다’는 질문에 의대생의 59%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의사국가시험에 인문학 평가를 도입해야 한다’는 질문에는 의대생의 51%가 반대했다.

    배민철 기자

    저작권ⓒ 건강을 위한 정직한 지식. 코메디닷컴 kormedi.com / 무단전재-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

    댓글 0
    댓글 쓰기

    함께 볼 만한 콘텐츠

    관련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