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의 꼿꼿한 자태에 서린 독립 열망과 분노

●이재태의 종 이야기(7)

폴란드의 왕비

 

폴란드에서 제작된 것으로 전래되어지는 붉은 유리종으로서 손잡이는 여왕의 반신상 모습을 하였고 드레스의 스커트는 채색한 붉은 유리이다. 1813년경 폴란드에서 만든 것으로 추측되며, 유리에 붉은 에나멜 칠을 하고, 손으로 그린 구름 모양의 흰색-푸른 색 무늬가 에나멜 칠 위에 그려져 있다. 손잡이는 왕관을 쓰고 정장을 한 순은제 여왕(queen)이다. 영어로 Queen은 여왕 뿐만 아니라 왕비를 말하기도 하므로 폴란드 공국의 왕비이거나, 또는 이 시기 폴란드를 실질적으로 지배하였던 나폴레옹 1세의 두 번째 부인이었던 마리 루이사를 모델로 한 것인지 알 수 가 없다. 은으로 만든 여왕의 상반신 조각의 뒤쪽 아랫 부분에 1813년 제작 표시와 812(아마 81.2% 은 성분)가 은으로 만든 여왕의 몸체에 새겨져 있다. 높이 14cm. 

 

우리 세대에게는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동서 냉전 시대에 소련의 영향권 아래에 묶여 있던 바르샤바조약국 중의 하나였던 공산국이었고, 1980년대 동유럽의 민주화 운동을 처음 시작한 바웬사의 나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조국으로 알려져 있는 폴란드의 역사도 기구한 분단과 점령의 역사이다. 지금의 폴란드 땅에는 오래 전부터 게르만 족들이 살고 있었는데, 10세기 경에 처음으로 폴라니에족을 중심으로 나라가 형성되었기에 민족과 국토의 명칭이 폴라니에 족의 나라라는 폴란드가 되었다. 966년 피아스트 왕조가 성립되어 가톨릭을 받아들였으며 그니에즈노와 크라쿠프가 오랫동안 정치적 중심도시였다. 200여년의 공국(公國) 분할 시대를 거쳐 중앙 집권 국가를 이루었고, 14세기에는 발트해 연안의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야기엘로 대공과 폴란드왕국의 야드비가 여왕이 결혼하면서 사실상 한 나라인 연방제가 된다.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연합 왕조인 야기에오 왕조(14∼16세기, 수도 크라쿠프)가 탄생된 후, 이들은 1410년 그룬발트 전투에서 독일군을 격파하여 발트해로 통하는 길을 열렸다. 16세기에는 유럽의 곡창 지대로 진출하며 전성기를 맞이했다, 17세기에 가장 강력하였을 때는 1천만 명의 인구와 현재의 리투아니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및 러시아 일부까지 포함하는 넒은 영토를 확보한 강대국이었다. 1962년 제작된 영화 대장 불리바는 러시아의 작가 고골리의 원작소설을 각색한 것인데, 이 시기의 강력한 폴란드 왕국에 대항하였던 러시아 카자크 부족들이 활약과, 족장 불리바의 아들인 안드레이와 폴란드 공주의 비극적인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폴란드의 위치와 국기)

 

1573년 야기에오 왕조가 끝난 뒤, 귀족들이 국왕을 선출하는 일종의 귀족 공화정이 등장하였고 1596년에는 수도를 크라쿠프에서 바르샤바로 천도하였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정국은 이후 귀족계급이 강력해지고 투르크, 스웨덴과 전쟁 등으로 국력이 쇠퇴하여 국운이 기울어졌다. 이 시기의 의회에는 귀족들에 의하여 만장일치제도가 도입되었는데, 의회에서는 의원 한명이라도 반대하면 그 어떤 법안이 통과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실제, 약 200년의 기간 동안 150회 열린 의회 기간 중에서 53회 동안은 단 한 개의 법안도 통과되지 못하였다고 한다. 주변의 강대국들인 프러시아, 러시아, 오스트리아는 이 나라의 귀족 중 한명이라도 포섭할 수 있다면, 그 나라들에 반하는 법률을 통과시키지 못하게 된 것이다. 사정이 그러하니 주변국이 지원하는 세력이 왕으로 선출되는 일도 잦아지게 되어 주변 강대국 특히 러시아의 속국, 위성국 비슷한 지위가 되어버렸다. 18세기 후반에는 다시 왕권의 강화와 국가 개혁이 시도되었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로 분열하여 두 개의 국가로 돌아갔다. 그리고 마침내는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 3국이 점진적으로 폴란드를 침입하기 시작하여 1773년 1차 분할을 시작으로, 1795년 폴란드는 이들 삼국의 분할 통치를 받게되는 운명이 되었다. 이후 폴란드는 나폴레옹 1세에 의해 세워진 왕이 아닌 공작이 다스리는 나라란 뜻인 바르샤바 공국 시대(Duchy of Warsaw, 1807~1815)를 제외하고는 1918년 독립 때까지 120년 동안 이들 3국의 지배를 받았다.

 

(1810년 나폴레옹 1세과 결혼한 두번째 부인 마리 루이사(Marie Luisa). 합스부르크 왕가의 왕녀였던 그녀는 나폴레옹의 첫 부인인 조세핀이 아기를 출산하지 못하여 이혼을 당하게 되자, 그와 결혼하였다. 그녀가 쓴 은관과 이 유리종 여왕이 쓴 은관이 비슷한 모양이다.)

1813년의 폴란드 상황을 살펴보면,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는 유럽을 지배하던 프로이센-오스트리아-러시아의 세 왕국을 견제하기 위하여, 이들 삼국지배로 부터의 독립을 원하던 폴란드를 부추겨서 1807년 바르샤바 공국을 세우고 연합군을 편성하여 러시아 원정에 나섰다. 폴란드인에게 나폴레옹은 독립을 위해 하늘이 보내준 구세주와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자랑하던 프랑스의 대육군은 러시아에게 거의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하고, 프랑스에 기대어서 폴란드의 독립을 원하던 바르샤바 공국의 지도자였던 포니아토프스키도 나폴레옹 군대와 함께 1813년 라이프찌히 전투에서 대패하며 전사 하였다. 그 결과로 폴란드는 다시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 3국의 분할 통치에 놓여지게 되며, 바르샤바 공국도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폴란드인들은 이후 혁명 정부를 조직하고 독립을 위한 봉기를 이어갔으나 독립투쟁은 번번히 실패하였고, 민족자결주의가 힘을 팽배하던 1차 세계대전 후인 1918년이 되어서야 독립을 하게 된다. 작곡가 프레드릭 쇼팽은 1810년, 큐리부인은 1867년 태어났으니 이 두 사람은 분할 통치 당하던 폴란드의 비애를 가슴에 지닌 분들이다. 나는 쇼팽의 피아노 소곡 “야상곡(Nocturne)”이나 “이별의 노래(Tristesse)”에서 그 시절 서로에게 위로가 필요했던 그들의 삶을 짐작할 수 있고, 그 잔잔한 멜로디에는 강대국 러시아의 농노로 살아야 했던 폴란드 농민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위치한 슬픔이 묻어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라이프찌히 전투, 1815년 러시아화가 Vladmir Moshkov 작)

이 종이 만들어졌던 1813년은 폴란드-나폴레옹 연합군이 마지막으로 패하고, 러시아가 폴란드 바르샤바를 점령하던 시기이다. 이후 삼국의 분할지배를 받았으므로, 폴란드 남쪽은 오스트리아(보헤미아, 현재의 체코)의 지배를 받게되었다. 그러므로 폴란드 공예 및 예술품들은 보헤미아 유리공예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장인들이 만든 아름다운 폴란드 유리공예품이 전해지고 있다. 1813년의 우리나라는 조선 정조의 아들인 순조임금의 시대였는데, 천주교 박해가 극심한 해로 기록되어있다. 한편으로는 홍경래의 난이 평정된 다음 해인데, 국가는 피폐하여 굶주림과 생활고에 시달리던 백성들이 크고 작은 민란을 일으켜 민중 들의 삶을 처절하게 주장하던 시기였다. 조정은 임금의 외척인 안동김씨 일족에 의한 세도정치가 판을 쳐서 국정이 문란하였던 시기이였기에 백성들의 삶이 최악인 상황이었다. 동-서양 모두에서 분노와 열기가 넘쳐흐르던 시기였다. 나폴레옹에 기대어 독립을 쟁취하자고 외치던 폴란드 국민들이나, 학정과 가난에 견디다 못해 민란을 일으키던 조선 백성들의 격정에 찬 함성이 종소리에 울려 퍼지는 듯 하다.

※ 이재태의 종 이야기 이전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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