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군기 녹여 종으로…승전의 환희-눈물 생생

●이재태의 종 이야기(3)

영국 공군(Royal Air Force, RAF)에 헌정된 승리의 종(Victory Bell)

제2차 세계 대전(World War II)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남긴 파괴적인 전쟁이었다. 전사한 군인이 약 2,500만 명이고, 민간인 희생자도 약 3천만 명에 달하였다. 전쟁 기간 중 일본 제국은 1937년 중국 침략 때 난징 등에서 수십만의 시민을 살해하였다고 추정되고, 나치 독일은 ‘인종 청소’라는 명분으로 수백만 명 이상의 유대인과 집시를 학살하였다. 미국의 1945년 3월의 도쿄 대공습은 15만 명의 민간인 피해자를 낳았고, 같은 해 8월 6일과 9일에 각각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이 투하되어 약 34만 명을 사망했다. 유럽에서도 연합국의 독일의 드레스덴과 뮌헨 공습으로 각각 20여만 명을 목숨을 잃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시작은 1939년 9월 1일 새벽 나치 독일군이 폴란드의 서쪽 국경을 침공하고, 소련군이 1939년 9월 17일 폴란드 동쪽 국경을 침공한 것이나, 1937년 7월 7일 일본의 중국 침략, 1939년 3월 독일군의 프라하 진주 등을 개전으로 보기도 한다.

이차 세계대전 개전 이후 1940년 6월 17일 프랑스의 항복을 받은 히틀러는 “영국은 제국유지가 보장된다면 독일의 유럽대륙 지배를 인정할 것“이므로 영국과 타협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영국 수상 처칠은 타협없이 40년 7월 19일 히틀러의 평화호소를 일축하였다. 이에 히틀러는 군사적으로 영국을 굴복시키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7월 16일 영국본토상륙작전인 ”바다사자 작전“의 준비를 명령함과 동시에 8월 13일 괴링의 지휘로 영국 공군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였다. 독일군의 영국 본토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영국 공군은 독일 공군과 잉글랜드 남부 해안의 제공권을 놓고 필사적으로 격돌했다. 하지만 영국의 연안 레이더망이 훌륭하게 정비되어 있었고 공군도 성능이나 장비·훈련에서 뛰어났으므로 독일 공군은 쉽게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기에 히틀러는 공군간의 전투에서 런던등의 도시에 대한 야간 무차별 폭격으로 방침을 바꾸었다고 한다.

 
1940년 7월부터 10월까지 약 3개월의 기간 동안 영국은 1,963대, 독일은 2,550대의 항공기를 이 결전에 투입하였고, 영국은 500여 명의 승무원과 1,500여 대의 항공기를, 독일은 2,500여 명의 승무원과 1,900여 대의 항공기를 잃었다. 이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중전이었다. 항공기는 언제나 당대 최고의 기술력과 자본이 투입되는 병기였으며, 숙련된 조종사는 막대한 시간과 예산을 들여 키워 낸 그 나라 최고의 인재였다. 1940년 여름부터 불과 수개월 동안 두 국가는 자신들 최고의 역량을 아낌없이 소모하면서 국가의 운명을 건 승부를 벌였던 것이다. 영국은 이 전투에서 승리하며 독일군의 영국 상륙 계획을 좌절시켰고, 1년 후 미국이 본격적으로 참전할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었고, 4년 후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도 이 승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영국 전투는 공중전에 있어서만큼은 당시의 모든 지배적인 사고방식과 교리를 완전히 구시대의 것으로 전락시키는 전환점이었다. “폭격기는 어디라도 갈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로 대표되는 폭격기 중심의 공군 교리는 1920년대를 거쳐 193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공군 운영에 있어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었다. 폭격기는 전투기에 비해 덩치가 크고 느리지만, 전투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거리를 한 번에 날아갔고, 훨씬 강력한 무장을 자유롭게 장착할 수 있었다. 대 편대를 지어 날아가는 폭격기는 적국의 전투기들로부터 스스로를 충분히 방어하면서 적국의 영토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릴 승리의 보증 수표라는 이론이었다. 그러나 영국 전투 기간 동안 호위 전투기를 대동하지 못한 폭격기 편대들이 고성능 전투기에 무력하게 괴멸당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폭격기의 신화는 무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당시 영국 전투기 조종사들의 필사적인 분투는 경이롭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요인은 영국 공군 전투기사령부의 철저한 전쟁 대비에 있었다. 영국의 전쟁 대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공군 대장 휴 다우딩이며, 다우딩은 자신의 방공 체계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예산을 쥐고 있는 영국 항공협의회와 그의 급진적인 생각에 공감하지 못하는 동료 공군 장성들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때로는 서로 심하게 반목하면서 내부의 적을 키우기도 했지만, 다우딩은 노력은 결실을 거두었다. 그는 기적적으로 1940년, 방공 체계가 실제로 필요한 시기가 올 때까지 자신이 구상했던 대부분을 확보하였고, 마침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2014.6. 동아일보 서평 “제2차 세계 대전 최대의 공중전”, 마이클 코다著, 이동훈譯 2014, 열린책들)

(2차 대전당시의 독일 전투기)

유럽에서의 전쟁은 1945년 4월 30일, 히틀러가 지하벙커에서 애인과 동반 자살하고, 5월 7일 독일 국회의사당을 방어하던 독일군이 항복하고 독일 3제국은 멸망함으로서 종료되었고, 태평양전쟁은 1945년 8월 일본에 원자폭탄이 투하한 이후 8월 15일 일본 제국이 무조건 항복하였고, 일본은 9월 2일에 공식적으로 항복문서에 서명하며 끝이 났다.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을 무렵인 1945년 2월에는 추축국 중 하나인 이탈리아가 항복하고 독일이 패전할 기미를 보이자 연합국의 지도자들인 미국의 대통령 루스벨트, 소련의 당 서기장 스탈린, 영국의 총리 처칠이 나치 독일을 패배시키고 그 후를 의논하기 위하여 크림 반도의 얄타에 모였다 (얄타회담 Yalta Conference). 이 회담에서 패전 후 소련·미국·프랑스·영국 4국이 나치 독일을 분할 점령한다는 원칙을 세웠으며, 연합국은 독일인에 대하여 최저 생계를 마련해 주는 것 이외에는 일체의 의무를 지지 않는다고 합의하였다. 또 나치 독일의 군수산업을 폐쇄하거나 몰수하고, 전쟁의 주요 전범들은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릴 국제재판에 회부하고, 전후 배상금에 대한 문제는 논의하기 위한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또한 이 회담에서 폴란드에 대해서는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에서 규정한 폴란드 동부 영토 대부분을 소련 영토에 병합하고, 폴란드에게는 동독의 일부 지역을 대신 주기로 하였다.

 

(1945년 2월 얄타회담에 참석한 처칠, 루즈벨트, 스탈린)

연합국에 전황이 유리하게 전개되어가던 1944년 이후, 영국은 자국의 영토에서 격추된 수 많은 독일 전투기들의 잔해를 수거한 후, 용해시켜 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축하하는 “승리의 종(Victory Bell)”을 만들었다. 높이 22cm인 이 종은 비행기 몸체의 성분인 가벼운 알루미늄(두랄루민)으로 만들어졌다. 종의 손잡이에는 승리를 뜻하는 “V(victory)”와, 몸체에는 얄타회담에 참석한 3개 연합국의 지도자였던 처칠, 루즈벨트와 스탈린의 얼굴이 양각으로 조각되어있다. 종은 은색과 금색으로 코팅되었고 종을 제작하였던 공방에 따라 몇 종류의 손잡이 모양이 있으며, 종의 손잡이를 제거하고 받침대를 변형시킨 재털이도 볼 수 있다. 특히 종의 몸체에는 영국 땅에서 격추된 독일 비행기 잔해로 만들었으며, 영국 공군과 공군 가족들을 후원하는 기금(Royal Air Force Benevolent Fund)을 위하여 제조되었다는 명문(銘文, CAST WITH METAL FROM GERMAN AIRCRAFT DESTROYED OVER BRITAIN 1939 – 1945, RAF BENEVOLENT FUND)이 새겨져 있다. 실제 1948년까지 Victory 종이 주조되고 이것을 판매한 기금은 공군 전상자와 유가족들에게 지원이 되었다.

종의 주 성분이 알루미늄이어서 종소리는 둔탁한 편이다. 그러나, 묵직한 종 소리에는 계속되던 독일의 공습에 대비하여 방공호로 대피하라는 경보의 종소리 만을 들어오다가 마침내 길거리로 나올 수 있었던 런던 시민들이 종전과 전쟁의 승리에 환호하던 그 환희의 눈물이 함께 함께 묻어있기에 이 종에 특별히 애착을 더 느낀다.

(RAF Benovelent Victory Bell, 15 x 12 cm)

(항공기 잔해로 만든 종 모양의 재떨이)

※ 이재태의 종 이야기 이전 시리즈

세상을 깨우고 귀신 쫓고…신묘한 종들의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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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메디닷컴 관리자 kormedi@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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