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지니스 보다 중요한 건 환자와 그 가족”

“세브란스병원은 톱니바퀴처럼 자율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누가 시켜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합니다. 모두들 업무에 대한 자긍심과 긍지를 가지고 서로 협력하기 때문에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정남식 세브란스 병원장이 7월말로 병원장으로서의 임기를 마무리 짓는다. 지난 2012년 8월 취임했던 정남식 원장은 재임 기간 암병원 개원을 비롯해 국가고객만족도조사(NCSI) 전체 3위, 융합진료 등을 위한 공간재배치 등 눈에 띄는 성과를 일궈냈다. 하지만 그는 2년 동안 병원장으로 일하면서 거둔 성과를 병원 곳곳에서 묵묵히 일해 온 직원들의 공으로 돌렸다.

“병원장으로 일하면서 우리 세브란스 가족의 저력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병원은 임상을 하는 의사를 비롯해 주차관리, 하수구 클리닝에 이르기까지 눈에 안 보이는 수많은 구성원들이 일하는 조직입니다. 모든 직원들이 서로 협력해서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것을 보고 ‘우리 병원은 참 위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계 내부의 톱니바퀴처럼 묵묵히 자리를 지키면서 소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직원들 덕분에 우리 병원의 발전이 이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직원들의 노력과 정남식 병원장의 리더십이 만나 지난해에는 국가고객만족도조사(NCSI)에서 세브란스병원이 전체 기업 중 3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병원 가운데는 3년연속 1위. 세브란스병원 다음으로 삼성서울병원이 4위, 서울성모병원이 8위에 올랐다. 전체 1위는 삼성물산 아파트, 2위는 롯데호텔이었다.

조사결과를 발표한 한국생산성본부는 세브란스병원이 환자중심 경영을 펼친 것에 대해 높은 점수를 줬다. 정남식 병원장은 “언젠가부터 병원들이 환자가 아닌 고객중심의 비즈니스 마인드를 중시하게 됐다. 물론 병원경영도 비즈니스지만 비즈니스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환자와 그 가족”이라며 “환자는 근심이 많은 사람이다. 또 혼자서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 할머니, 할아버지까지도 아픈 손자를 쫓아 병원에 온다.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고객으로만 보겠는가. 그들은 환자를 떠나 우리 가족”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병원의 인력과 재정부족 문제도 해결해야할 과제이지만 이에 앞서 환자들에게 훈훈한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의사의 근본은 아픈 사람을 돌보는 마음가짐”이라면서 병원 업무는 공급자가 아닌 환자 중심에서 생각하고 결정할 때 더욱 수월하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어느 날 암병원 채혈실이 사람들로 붐비면서 상대적으로 한산한 본관 채혈실로 환자들을 유도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암병원이 버스 정류장과 가까워서 환자들이 편한 동선을 따라 암병원에서 피검사를 받습니다. 환자 입장에서 그게 편하다면 암병원 채혈실에 인력을 충원하는 것이 맞는 것입니다.”

정남식 원장 재임 기간 동안 세브란스병원은 단일 의료기관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다빈치로봇수술 1만례를 달성하는 성과를 얻기도 했다.

정 병원장은 “세브란스는 우수한 교수들의 인적 구성과 새로운 기술 개발로 로봇수술에 있어 세계적인 센터로 발돋움했다”며 “음악과 날씨정보를 제공하는 아이팟에 전화기능을 더한 아이폰의 필요성에 처음에는 의구심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결국 성공했다. 이처럼 로봇수술도 활용할 수 있는 분야가 많다. 세브란스병원은 로봇수술의 정교함 등 장점을 재빨리 파악해 개발하면서 이 분야의 선두주자로 우뚝 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남식 병원장은 서울시병원회가 마련한 지멘스 창조병원경영대상 1회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 병원장은 “환자와 그 가족을 이해하고 거기에서 해결 방법을 찾겠다며 마인드를 바꾼 것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며 “환자가 편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면서 고정관념과 관습에서 벗어나려고 하다보면 새로운 콘셉트가 생긴다. 내 입장이 아닌 환자 입장에서 거꾸로 생각한 것”이라며 겸손해 했다.

병원장의 임기가 마무리되는 시점, 남는 아쉬움 역시 환자들과 ‘톱니바퀴’ 직원들에 대한 걱정이다. 정 병원장은 “환자와 가족 중심 병원인 만큼 그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수술을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등에 대한 많은 고민을 했다. 직원들을 위한 공간도 부족하다. 좀 더 쾌적한 환경을 제공해야 하는데, 그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했다.

정 병원장은 의료수가 문제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개원의 선후배들에 대한 걱정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내과에서 수익을 올리는 과도 있고 의료보험의 허점과 수가문제로 수익을 올리지 못하는 과도 있다”며 “병원 입장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사들이지만 한정된 예산과 인력으로 엄청난 고생을 하고 있다. 이들을 위한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고의 심장전문의로 고 김대중 대통령 주치의를 지냈던 정 병원장은 내과 후배들에게 의사로서 갖춰야 할 덕목에 대한 조언도 잊지않았다. 그는 “환자를 보는 의사는 항상 환자에 대한 애정을 갖고 가족처럼 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의사는 목숨을 다루는 직업이다. 내 목숨이 소중하면 다른 사람의 목숨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병원장은 은퇴 이후에도 환자를 돌보는 일을 지속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꾸준한 운동과 절제있는 식사를 통해 체력관리를 해오고 있다.

정남식 원장은 “시간날 때 65~85세까지의 활동 계획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75세 이후로는 활발하게 활동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제 하에 75세까지 환자를 돌볼 계획”이라며 “환자들을 잘 돌보기 위해서는 우선 내 몸이 건강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특히 근골격이 튼튼해야 하는데, 최근 다리, 관절, 허리 건강을 강조하는 신체 리모델링을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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