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은 ‘땅 따먹기’… 판을 흔들어라

배지수의 병원 경영

 

“마케팅 불변의 법칙”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MBA 탑스쿨들에서 마케팅 시간에 교재로 사용할 만큼 마케팅 영역에서는 명서로 꼽히는 책입니다. 마케팅에 관심있으신 분들은 꼭 한번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마케팅의 기본 개념을 쉽고 단순하게 설명해 놓았습니다.

이 책에서 한가지 강하게 기억이 남는 부분 중 하나는 우편 배달 회사인 FedEx 와 DHL 의 마케팅 전략 케이스입니다. FedEx 의 마케팅 문구는 “밤새 배송되는 우편 (Overnight Letter )” 입니다. 이 문구를 읽는 소비자들의 머리 속에는 자연스럽게 우편 배달 시장의 지도가 그려집니다.

“아, 세상에는 밤새워 빠르게 배송하는 회사도 있고, 낮에만 배송하는 느린 회사도 있구나. 그중에 FedEx 는 빠르게 배송하는 회사구나.”

[그림 1]

한편 후발 주자인 DHL 은 마케팅 문구를 “세계 곳곳으로 배달되는 우편 (Worldwide Express)”로 홍보했습니다.

기존에 소비자들의 머리 속에 형성된 인지적 지도 (Cognitive Map)는 후발주자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좀처럼 바뀌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DHL 은 기존의 “빠른 배송 ↔ 느린 배송” 이라는 축 상에서 1위인 FedEx 와 경쟁하기 보다는 새로운 축을 그렸습니다. 그 것은 “세계 곳곳으로 배달 ↔ 한정된 지역으로 배달” 의 축이었습니다.

DHL 의 “세계 곳곳으로 배달되는” 이라는 문구를 접한 소비자들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우편배달시장과 관련된 인지적 지도를 변경을 하게 됩니다. “아, 배송회사는 빠른 회사와 느린 회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 곳곳으로 배달하는 회사와 그렇지 않은 회사가 있구나. 그리고 DHL 은 세계 곳곳으로 배달하는 회사구나.”

[그림 2]

“마케팅 불변의 법칙”에서 주장하는 바는 한번 소비자의 머리 속에 형성된 인지적 지도는 후발주자가 바꿔 놓기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형성된 축 상에서 1위 자리를 두고 다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니, 차라리 새로운 별개의 축을 개척해서 그 축에서 1위를 하는 것이 오히려 났다는 것입니다.

FedEx 가 소비자의 머리 속에 그려 놓은 “빠른 배송 ↔ 느린 배송” 의 축 위에서 놀지 않고, 새로운 축, 즉 “세계 곳곳 ↔ 한정된 지역” 의 축을 그리고 그 위에서 1위를 한 셈입니다.

이런 식으로 소비자들의 머리 속에 그려 넣는 가상의 지도를 인지적 지도 (Cognitive Map)라고 합니다. 이 지도 상에서 내 제품의 영역을 얼마나 많이 차지하느냐 하는 것이 마케팅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땅 따먹기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제가 요즘 즐겨 찾는 싸이트 하나를 소개합니다. TED.com 라는 곳인데 거기서 본 마케팅 전문가의 강의에서 들은 내용 하나를 소개합니다.

아타투르크 왕은 터어키 근대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던 왕이라고 합니다. 그는 여자들이 베일을 쓰지 않도록 해야 터어키가 근대화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무턱대고 금지하면 이슬람 전통이 강한 국민들이 반발을 하게 되어 정치적 지지를 잃을 것을 걱정했습니다. 고민 끝에 나온 아타투르크의 해결책은 “창녀들은 반드시 베일을 써야 한다.”는 법을 제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여자들이 베일을 벗게 되는 결과를 자연스럽게 가져왔다고 합니다.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대제는 국민들의 기아를 해결하고 빵 가격의 폭등을 막기 위해 감자를 보급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국민들은 감자가 “흙 속에서 나는 지저분한 음식이자 개한테 줘도 안 먹을 음식”으로 인식하였습니다. 프리드리히 대제가 고안한 것은 “감자는 왕실 야채이고 왕족만 먹을 수 있다.”는 법령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감자를 몰래 재배하기 시작했고 점점 사용량이 늘었다고 합니다.

이 두 사례는 인지적 지도를 잘 활용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지적 지도 상에서 영역을 구획하는 선을 긋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어디에 속할지 선택하게 하는 전략입니다.

의사 출신이자 벤처기업가인 안철수 의원이 하는 행보를 보면 인지적 지도를 활용하는 데에 대단한 일가견이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벤처 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온 경험에서 마케팅 개념을 체득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안철수 의원이 들고나온 화두는 “새 정치” 입니다. 이 단어는 인지적 지도의 영역 싸움에 엄청난 선을 긋는 단어입니다. 기존에는 유권자들은 정치에 관한 인지적 지도 상에서 “보수 ↔ 진보”, “좌 ↔ 우”, “권위주의 ↔ 자유주의” 등의 축을 그리고 그 위에 정치인들을 배치하곤 했습니다. 유력 일간지에도 대통령 후보가 될 만한 유력 정치인은 좌와 우 축을 그려두고 각 정치인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분석하는 내용의 기사를 내 보내기도 합니다. 일례로 아래 그림은 한겨레 21에 2010년 3월에 실린 지도입니다.

[그림 3] 한겨레21 2010-03-05

그런 정치판에서 안철수 의원은 “새정치”라는 단어를 던짐으로 기존의 모든 정치인을 “구시대 정치인”으로 몰아넣고 자신은 “새시대의 정치인”의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차지하는 엄청난 도전을 했습니다. 이 시도가 성공적일지는 아직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시도가 마케팅에서 얘기하는 인지적 지도를 멋지게 활용한 사례임은 분명합니다.

최근에 의료계에서는 각 치료 과들이 이름을 개명하는 사례가 많은 듯 합니다.

나름 각 과의 선생님들이 많은 고민과 철학이 담겨있는 개명이었겠지만, 저는 “인지적 지도” 라는 개념을 토대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소아과”에서 “소아청소년과”로

최근 “소아과”가 “소아청소년과”로 개명을 했습니다. 이 개념은 의료 시장을 “나이”라는 축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모든 과는 대상 환자를 나이로 구분하는데, 나이가 어린 아이들은 소아과, 나이가 많이 든 사람들은 내과 및 다른 과로 가는 것이다. 그런데 나이가 어정쩡한 청소년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내과를 갈 것인가? 그러지 말고 소아과로 와라.”

인지적 지도상에서 보면 이런 의미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그림 4]

“산부인과”에서 “여성의학과”로

최근 산부인과는 여성의학과로 개명하려 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소극적으로 해석하면,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이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산부인과에 방문하도록 배려한 흔적이 보입니다.

좀 더 공격적으로 해석하면, 세상의 환자들을 남자 환자와 여자 환자로 나눈 것입니다. 기존에는 “임신/출산과 관련 있는 여성”만 진료하다가, “세상의 환자들 중 50% 가 되는 여자들”을 다 진료할 수 있다는 의미가 들어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림 5]

“진단방사선과”에서 “영상의학과”로

진단방사선과가 영상의학과로 바뀐 사례도 이런 구획 나누기의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단방사선과라는 이름을 두고 생각해 보면, 세상의 모든 과는 “진단과”와 “치료과” 두 가지로 나뉩니다. 그리고 “진단과”는 다시 “방사선을 이용한 진단과”와 “방사선과 관련 없는 진단과” 로 나뉩니다. 진단방사선과라는 이름은 이 중에서 “방사선을 이용한 진단과” 라는 영역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영상의학과”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한다는 것은 기존의 진단과에 머물지 않고 치료과로 확장하며, 방사선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영상을 다 다루겠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그림 6]

“정신과”에서 “정신건강의학과”로

최근에 정신과 역시 정신건강의학과로 개명을 했습니다.

기존의 정신과라는 이름 속에는 “정신병을 치료하는 과”라는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정신병이라 함은 정신분열병, 우울증 등 심각해 보이는 질환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여기에 “정신건강”이라는 이름을 넣음으로써, “상대적으로 건강한 사람들, 스트레스, 부부갈등, 학업문제 등의 문제를 앓고 있는 사람들”을 포함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는 듯 합니다.

[그림 7]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인지 지도 상에 새로운 축을 그려놓고, 선긋기를 해서 내 영역을 차지하는 과정이 마케팅의 핵심입니다. 이를 인지적 지도 (Cognitive Map) 상에서의 땅따먹기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듯 합니다.

끝으로 요양병원을 운영하면서 했던 저의 고민을 소개합니다.

저는 요양병원을 준비하면서 한 일년 정도 기존의 요양병원들을 돌아다니면서 탐방을 했습니다. 기존의 병원들을 구경하면서 공부를 한 셈이지요.

그 때 얻은 결론은 기존의 요양병원 시장에는 인지적 지도상 두 가지 축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소비자인 환자들은 요양병원을 선택할 때 가격을 보고 결정하는 면이 강했습니다. 즉 소비자들은 인지적 지도 상 요양병원을 “싼 병원 ↔ 비싼 병원” 이라는 축을 그려두고 그 축 상에서 병원들을 매핑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공급자인 요양병원 원장님들의 머리 속에 그려진 축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많은 요양병원들의 웹싸이트를 들어가 보면 많은 병원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문구는 “어르신들을 부모님과 같이 잘 모시겠다.”는 문구 즉 “효심” 이었습니다. 또 요양병원의 이름도 “서울 효 병원” 이라는 식의 “효” 라는 단어를 많이들 넣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원장님들의 머리 속에는 요양병원 시장을 “효심이 큰 병원 ↔ 효심이 적은 병원” 이라는 축을 그려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이 “효””이라는 단어는 “서비스의 친절함”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겠지요.

기존에 존재하던 “가격” 축과 “효심” 축 말고 다른 새로운 축을 하나 멋지게 그려 놓고 거기서 1등을 차지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제가 생각해 낸 문구는 “젊고 열정 있는 의사들” 이었습니다. 이 문구를 통해서 소비자들의 머리 속에 “젊은 의사들이 진료하는 병원 ↔ 나이 많은 의사들이 진료하는 병원” 이라는 새로운 축을 그려 넣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축 상에서 우리병원은 “젊은 의사들이 열정을 가지고 진료한다.”라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모든 마케팅의 메시지를 집중했습니다.

[그림 8]

이 마케팅이 효과적이었는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이 글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소비자들의 머리 속에 그려져 있는 인지적 지도를 이해하고, 그 지도 상에서 내 영역을 어떻게 넓혀갈 수 있을지 고민할 때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이 나올 수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코메디닷컴 관리자 kormedi@kormedi.com

저작권ⓒ '건강을 위한 정직한 지식' 코메디닷컴(http://kormedi.com)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Share with Kakao

댓글을 달아주세요.

귀하의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