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명문 메디치家, 햇빛 때문에 몰락”

 

저택에서 햇볕 거의 쬐지 못해…

2004년 고생물병리학자 등으로 구성된 연구팀은 이탈리아 피렌체 산 로렌초 성당 마룻바닥에서 지하실로 통하는 비밀 통로를 발견했다.

산 로렌초 성당은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주도한 최고의 명문가인 메디치가(家)의 가족무덤이 있는 곳. 연구팀은 지하실에서 신생아부터 5살 어린이까지 유골 9개를 발견했다. 분석 결과, 이중 6개의 유골에서 구루병을 확증시키는 징후가 발견됐다.

이 유골들은 팔다리뼈가 휘어져 있었는데, 이는 약해진 뼈로 걷거나 바닥을 기어 다니게 돼 발생하는 현상으로 구루병에 걸렸다는 것을 나타낸다. 구루병은 생후 4개월~2세 사이의 아기에게서 잘 발생하는 비타민 D 결핍증으로 머리, 가슴, 팔 다리 뼈의 변형과 성장 장애를 일으킨다.

구루병은 비타민 D가 많이 들어있는 치즈나 달걀 같은 음식을 섭취하고, 햇볕을 쬐면 체내에서 비타민 D가 합성돼 쉽게 예방할 수 있는 질병이다. 따라서 보통 심각한 대기오염 및 과밀화로 인해 햇빛 노출이 제한되는 도시 빈민들과 관련된 질병으로만 여겨져 왔다.

그런데 어마어마한 부와 권력을 소유한 세계적 명문가인 메디치가의 어린이들이 이 병에 걸린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이 태어난 16세기 이탈리아 사회의 사고방식과 연관이 있다. 당시 귀족들은 자기 아이들이 햇볕에 그을리는 것을 싫어했다.

살갗이 그을었다는 것은 곧 자기 집이 좁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또 아기를 돌볼 때 포대기 등으로 단단히 싸매는 풍습이 있었다. 메디치가의 어린이들은 궁전 같은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고치에 싸인 누에’처럼 여러 겹의 포대기에 쌓여 햇볕을 충분히 쪼이지 못한 채 생활했던 것이다.

여기에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 신생아들은 출생 전에 어머니를 통해 필요한 비타민 D를 모두 공급받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구루병에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메디치가의 여성들도 높은 신분을 상징하는 과도한 메이크업으로 햇볕을 충분히 받지 못했고, 빈번한 출산으로 만성적인 비타민 D 결핍증에 시달린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메디치가는 엄청난 부와 권력으로도 어린 자손들의 건강만은 살 수 없던 것이다. 이 내용은 과학저널 ‘네이처(Nature)’가 지난 7일 보도했다.

    권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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