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레놀 사태’와 ‘제2의 약치일’

국민 편의를 위해 편의점에서의 안전상비의약품 판매가 시작된 지 5개월이 지났다.

편의점에서의 안전상비의약품 판매를 놓고 가장 크게 반대했던 것은 약사 사회였다. 특히, 현재 대한약사회 수장인 조찬휘 회장은 대한약사회 후보 시절 편의점에 빼앗긴 약을 되찾아오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으며, 편의점에서 안전상비의약품을 판매하기 시작한 날을 ‘약치일’로 지정하자고 주장했다.

편의점 약 판매가 시작된 지난해 11월 15일 보건복지부 앞에서 시위를 펼친 조 회장은 성명을 통해 “의약품은 약국을 벗어나는 순간 안전성은 무시되고 청소년 오남용에 무방비로 노출된다”면서 “관리의 사각지대에서 타이레놀과 같이 간독성이 강한 의약품이 판매가 되면서 얼마나 많은 국민이 피해를 입을지 참으로 우려스럽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약사들이 편의점에서의 약 판매를 반대하면서 줄기차게 강조한 것은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에 의한 약 판매 부작용이었다. 약국에서 전문가인 약사의 복약지도 등 상담을 통해 안전하게 전달돼야 할 의약품을 의약품 지식이 없는 일반인이 판매하게 되면 약물 오·남용에 따른 피해가 커지리라는 것이 약사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지난 4월 23일, 약사들의 이러한 주장이 무색해지는 사례가 발생했다. 편의점에 안전상비의약품 판매권을 넘겨준 지난해 11월 15일 이후, 제2의 ‘약치일’이라 할 수 있는 수모가 벌어진 것이다.

23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한국얀센의 해열진통제인 ‘어린이타이레놀현탁액’에 대한 판매 금지 처분을 내렸다. 판매 금지 이유는 해당 제품에 들어간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이 일부 제품에서 초과 함유됐을 우려 때문이었다.

특히, 해당 제품은 지난해 11월 15일부터 편의점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정해진 안전상비의약품 중 하나여서 의약품 안전관리와 관련한 약국과 편의점의 대응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사례로 더욱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과 달리 약국의 ‘완패’였다. 판매 금지 조치 후에 ‘약업계 젊은 기자단’이 서울시 서초구 소재 약국과 편의점을 방문해보니 편의점에서는 판매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5곳의 약국 중 2곳에서 여전히 어린이 타이레놀 현탁액을 구입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한약사회 조찬휘 회장이 지난해 11월 15일을 ‘약치일’로 정하자며, 의약품 안전 관리 중요성의 예로 들었던 약품도 타이레놀이었다.

편의점들은 점포마다 중앙 본사를 통한 포스(Point Of Sales, 판매시점관리) 시스템을 갖춰, 해당 시스템에서 판매 금지 조치를 알리고 바코드를 막아 결제가 이뤄지지 않도록 했다. 이에 따라 의약품 지식이 없는 일반 판매원에 의해 해당 판매 금지 약품이 판매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반면, 약국은 중앙의 대한약사회와 각 시·도지부를 통한 공문 전달 및 전산 공지에도 일부 약국에서 판매 금지 약품을 판매하는 일이 발생했다.

 

조사 대상 약국과 편의점이 많은 수가 아닌 데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편의점과 소규모나 자영업자가 운영하는 편의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약에 대해 전문적인 관리가 이뤄져야 할 약국에서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온 것은 명백하다. 

이와 관련 약사회 측은 해당 사태는 중앙에서 통제가 이뤄지는 편의점업계와 개인사업자인 약국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라고 해명했다. 중앙 본사에서 포스 시스템을 통해 판매를 막을 수 있는 편의점과 개인사업자인 약사들이 운영하는 약국이 똑같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약국은 역시 개인사업자들이 운영하다 보니 정산 문제 등도 걸려 있어, 편의점과 같이 일괄적인 판매 금지 조치가 어렵다고 약사회 측은 덧붙였다.

그러나 약사회의 이러한 궁색한 해명은 국민이 기대한 답변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국민 편의를 위해 편의점 안전상비의약품 판매를 추진했던 정부에, 전문가 손을 떠난 의약품은 ‘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던 약사 사회가 아닌가.

물론 이번 사례는 약물 전문가로서의 약사 직능을 의심할 사안이 아니라 시스템의 보완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약사회의 분발이 요구될 만큼 중요한 일인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약사회는 이를 위해 편의점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와 관련해 약사 사회가 강조했던 부작용 모니터링과 약물 오·남용 방지 캠페인, 편의점 및 슈퍼에서의 의약품 불법 유통 상시 감시 체계 구축 등에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동안 약사들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전문 직능으로서의 위상과 공헌을 증명해 왔다. 특히, 지난 1992년 대한약사회를 모태로 설립한 마약퇴치운동본부는 20년 세월 동안 전문적이고 대중적인 활동을 통해 마약퇴치활동에 앞장서 우리나라가 마약류 청정국가라는 지위를 누리는 데 큰 공헌을 한 것도 사실이다.

이처럼 약사 직능의 전문가로서의 공헌과 헌신을 기억하는 국민의 신뢰를 더욱 굳건하게 하기 위해 약사 사회의 노력이 절실하다. 약사회 차원에서 이번 사태가 발생한 4월 23일을 제2의 ‘약치일’로 삼아 심기일전하고, 약물 전문가로서의 약사 직능 위상을 국민에게 다시 확인시키는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기를 기대해 본다. 

    박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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