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배 아플 땐 왜 산부인과가 먼저?

여성은 임신이라는 대단히 중요한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 남성과 비교해서 비뇨생식기 부분에 해부학적인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래 뱃속(골반강)이 외부와 연결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구조입니다. 골반강 내에 존재하는 난소에서 배란된 알이 난관으로 빨려 들어간 뒤에 난관의 팽대부에서 정자와 만나 수정이 이루어집니다. 이후 3~4일에 걸쳐서 서서히 자궁 강 내로 이동해 자궁내막에 정상적으로 착상이 이루어져야 성공적인 임신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임신이라는 대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존재할 수밖에 없는 통로가 불행하게도 질속으로 들어온 외부 병원성 세균들이 자궁강과 나팔관을 거쳐서 여성의 골반강으로 침투할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해부학적 구조 때문에 흔히 일어나는 사례를 한 가지 소개합니다.

여성이 아랫배가 아파서 병원 응급실을 찾는다면 응급실 당직의사는 거의 어김없이 산부인과 의사를 불러냅니다. 물론 자궁 난소 나팔관 등에 생기는 종양이나 자궁외 임신과 관련된 응급 질환도 있겠지만 아무튼 급·만성 골반 내 염증(acute or chronic pelvic inflammatory disease) 여부를 가려달라는 요구입니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이지만 저도 전북대학교병원 산부인과 전공의 시절 야간 당직을 서면서 수없이 응급실에 불려간 것도 대부분 이러한 경우였습니다.

병실 담당 주치의를 하면서 낮에는 외래와 병실, 수술실을 오가며 온갖 궂은일을 다 하고 다니다가 저녁에는 입원하고 있는 환자들에 대한 투약 및 처치를 위한 처방을 챠트에 기록하다 보면 밤 12시가 다 됩니다. 그때서야 아주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당직실에 들어가 잠시 눈을 붙이려면 응급실에서 전화가 옵니다. 여성이 아랫배가 아파서 왔는데 골반 내 염증이 있는지 확인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2번만 불려 나가면 그사이 창문 밖에서는 먼동이 틉니다. 꼬박 날을 샌 것이지요. 그럼 이렇게 날을 샜다고 산부인과 전공의 1년차 주치의를 다음 날 쉬게 해주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면 분만실 담당 주치의는 어떠한가요. 여기도 꼬박 날을 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우스갯소리로 왜 아기들은 밤에만 나오느냐고 하길래 다 이유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만든 시간에 맞추어서 나오는 것이라고요. ㅎ ㅎ

이런 고생 속에서 산부인과 전문의가 만들어 집니다. 여기에 연일 계속되는 응급 환자와 의료사고의 위험성에 가장 많이 노출되는 전문 과목중의 하나가 산부인과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누가 이런 저런 고생하면서 전문의 과정을 밟으려고 하겠습니까. 지금 전국적으로 산부인과를 전문 과정으로 전공하겠다는 의사들이 없어서 해마다 배출되는 산부인과 전문의 숫자는 크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큰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발견됩니다. 왜 남성들이 아랫배가 아파서 병원 응급실에 왔을 때 골반 내 염증이라는 병명을 응급실 당직의사는 떠 올리지 않을까요? 여기에는 이러한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남자들은 해부학적으로 여성들처럼 골반강과 바깥세상이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성들은 질 입구에서 펌프로 공기를 주입하면 뱃속으로 공기가 들어가지만 남성들은 요도 입구에 공기를 넣으면 방광이 터졌으면 터졌지 절대로 뱃속으로는 공기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여성들처럼 외부 세균이 골반 강 내로 침입할 수 있는 경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성들에게는 골반 내 염증이라는 질환 명을 찾기가 어렵고 여성에게만 유독 골반 내 염증이라는 질환이 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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