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선 이야기 21 <스태포드 병원-과연 남의 이야기일까?>

 

지혜씨는 30대 중반의 지적인 여성이었다. 영국에서 대학교 공부를 마쳤고 경제 위기다, 실업률 높다 해도 곧바로 취업이 되어서 한국에 있는 부모의 자랑거리였다. 그녀가 부모와 함께 진료실로 들어섰을 때는 일견 보아도 상태가 가볍지 않음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허약하였고, 황달로 피부와 눈에 노란색이 완연했다.

그녀가 몸에 이상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1년이 넘었다. 그러나 관할 구역에 배정된 일반의사에게 진료 예약 잡는 것부터가 만만치 않았다. 6주 후에 오라고 하였는데, 하필이면 그 때가 진행하던 프로젝트에 관련하여 출장을 가는 시기였다. 예약을 다시 연기 했다. 이번에는 2개월. 초진을 마친 후 간단한 혈액 검사 등을 하고 다시 예약을 하여 검사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전문의의 진료가 필요하단다. 종합병원으로 진료 의뢰가 되었다. 또 3개월. 이제는 몸에 병색이 완연했다. 그래도 부모에게 염려 끼칠까 봐서 이따금 통화할 때는 그냥 업무가 과다해서 피곤하다고만 했다. 연말 연휴를 이용하여 영국을 방문한 부모는 딸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서 그 길로 함께 귀국하여 병원에 데려온 것이었다.

종합적인 검사 결과 간암이 진행되어 혈관까지 침범한 것으로 나타났다. 황달이 생긴 것은 간 기능이 악화되어서 생긴 결과였다. 사실 간암에서 항암 치료를 제대로 하려면 기본적으로 간 기능이 적정 수준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수술, 항암 화학 요법, 방사선 치료 등 그 어떤 치료도 간 기능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그녀를 도와줄 수가 없었다.

영국의 스태포드 병원에서 환자가 대량으로 사망하였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영국의 의료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국민 세금에서 운영하는 무상 의료이다. 국민들은 무상으로 진료를 받고, 사립 병원을 제외한 병원들은 모두 정부에서 지원한 예산에 준하여 병원을 운영한다. 이번 참사의 이유로는 예산이 삭감되면서 간호사 등 의료 전문 인력이 대량 감원되고 결국 의료의 질 저하로 이어졌다는 것을 들고 있다. 마실 물이 제 때 공급되지 못하여 화병의 물까지 따라 마셨다니, 기본적인 환자 돌봄의 수준이 이렇게까지 떨어질 수도 있나 싶을 정도이다.

한 나라의 의료 시스템에 관하여 거창하게 토론까지 가지 않아도 무상의료가 떨쳐낼 수 없는 기본적인 문제는 실제 질병을 가진 환자보다 더 많은 수가 진료를 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치과 질환이나 가벼운 염증 질환은 그렇다 치고 암이 의심되는 환자가 병원에 가서 제대로 진단받는데 수주에서 수개월 시간이 걸린다. 본격적인 치료를 받기 까지는 그 이상의 시간이 더 걸려서, 대개 암 진단을 받고 3~6개월 후에 수술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후 항암 약물 치료나 방사선 치료가 필요하게 되어도 또 다시 대기 명단에 올려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물론 수술을 받으려고 대기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명의를 찾느라고 특정 병원 특정의사에게 몰리는 탓이지 영국의 경우와는 다르다.

두 번째 마주치는 문제는 의료인들의 질 저하이다. 영국의 무상 의료 시스템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헌신적으로 일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의료진들은 의사나 간호사 할 것 없이 국가 공무원답게 근무시간에 정확하게 맞추어서 일한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일은 심적인 스트레스가 엄청나게 큰 직업이다. 그러나 의료진들이 공무원 급여를 받으면서 ‘직업’으로 환자를 돌보게 되면 굳이 이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받고자 하지 않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예산 절감이라는 명제 하에 인사관리가 시행되면 대개 직접 진료에 참여하지 않는 부분부터 손을 대기 마련이다. 인원 감축 뿐 만 아니라 신규 채용에도 적용이 된다. 방사선 암 치료 분야를 보자. 방사선 치료기는 몇 백만 볼트의 고에너지 방사선을 방출하며 이를 정확하게 암 부위에만 집중적으로 조사하는 것이 핵심 기술이다. 그런데 방사선은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는 있지만 우리의 오감으로 느껴지지 않는 무색, 무취의 보이지 않는 빛이다. 따라서 방사선 치료기가 이를 제대로 방출하고 있는지 엄격한 품질 관리가 필요하다. 더구나 새로이 방사선 치료기를 도입하여 설치하였을 때, 환자에게 바로 적용하기에 앞서서 모든 안전성과 정확성을 점검하여 품질 보증 검사를 완료하여야 한다. 의학 물리사들이 이 업무를 담당하는데, 이들은 진료에 직접 참여를 하지 않으므로 경제 논리로 인사 관리를 하게 되면 손해를 보기 십상이다. 암의 방사선 치료 과정에서 품질 보증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아서 생기는 의료 사고가 유럽 각국에서 종종 보고되는데, 이러한 영국적 의료 시스템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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